세월호 참사 100

 

오늘(724)은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는 날이다. 476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지난 416일 오전에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해서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174명이 구조되었다. 사망자와 실종자 대부분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그들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이 세상에는 천재지변도 많고 인사사고도 많다. 비행기도 떨어지고, 배도 침몰하고, 큰 건물도 무너지고, 태풍이 몰아치고 화산도 폭발한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군대에 가서 죽는 청년들도 있고, 대학교 엠티에 갔다가 죽기도 한다. 불치병에 걸려 죽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월호 참사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로 본다면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세월호의 과적 문제, 해양 관제탑 직원들의 무책임한 근무태도, 선박 관계자들의 관료주의, 그리고 사회 전반에 깔린 안전 불감증과 생명 경시풍조를 반성하고 대책들을 강구하고 실천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는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고 당시 선실에 남아 있던 304명의 승객 중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것도 망망대해에서 일어났다거나 태풍으로 전혀 손을 쓸 수 없다거나 어뢰 공격으로 인해 배가 두 동강 난 상황도 아닌 데서 그런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세월호 안에서 그대로 있으라.’는 말만 듣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단원고 사망자 학생들의 핸드폰에 저장된 문자기록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심지어 동영상도 나온다. 그걸 통해서 당시 상황과 학생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를 충분하게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자신들보다 판단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이 곁에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이 , 살고 싶다.’는 문자를 남긴 순간은 이미 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때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까지 막연하게나마 설마 죽기야 하겠나.’ 하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뛰쳐나왔을 것이다. 나도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이 침몰되고 있다는 사고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인명 피해는 약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구조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끔찍했다. 4월16일에 벌어진 일이 나에게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이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일단 두 가지다. 하나는 승객을 버려두고 먼저 배를 떠난 선장을 비롯한 선박 승무원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이다. 배가 침몰의 위기에 이른 걸 알았다면 퇴선 안내를 즉시 내렸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고 이후 해양 경찰이 구조 활동을 왜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엄정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와대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다. 재난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자신들이 아니라 안정행정부 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중대본(중앙재난대책본부)이라고 말한다. 정부 편제만 놓고 볼 때는 그 말도 맞을 것이다. 맞다 하더라도 청와대가 스스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무책임한 태도다. 중대본의 잘못은 곧 대통령의 잘못이고, 그것은 곧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잘못이다. 대통령 책임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전례가 없이 큰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대통령은 문서와 전화로만 보고를 받았지 오랫동안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긴박한 시간 첫 서면보고를 받은 오전 10시로부터 중대본에 들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비서실장도 모른다고 했다. 중대본에 들린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는데도 그렇게 찾기 힘드냐, 하는 말을 했다. 학생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떠 있는 거로 여겼다는 말인데, 이는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당시 학생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렇게 해서 구조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 이후의 구조 활동도 웃기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티브이에서는 해경과 해군이 대대적으로 구조 활동을 펼치는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게 실체적 사실이다. 간단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3백 명 이상의 승객이 타고 있는 배가 45도 이상 기울어지고 있다. 유리창문을 통해서 구조해달라는 승객들의 모습도 비쳤다. 그 상황에서 해양경찰은 모조건 유리창을 깨고 승객들을 구조하려는 시도를 했었어야만 했다. 선체가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에 구조 전문 잠수부대가 그곳에 와 있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에어포켓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했었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삼백 명이 갇혀 있는 고층빌딩에 불에 휩싸였다고 하자. 소방대원들은 생명을 담보하고 불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문 구조대원들이다. 이번에 해경이 한 일이라고는 스스로 탈출에 성공한 승객들을 건져 올리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대다수는 부근의 민간 어선들이 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청와대는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는 말인지. 그들도 나름으로 대책을 세우긴 했겠지만 결과물이 전혀 없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금 선원들을 비롯해서 해양 업무 관계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책임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솔선해서 져야 하는 게 아닐는지.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 사태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진작 사표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사표가 반려되고 다시 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참으로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대통령이 국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특히 17세 아들과 딸을 졸지에 잃은 부모와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일정 기간 대통령 업무를 총리에게 위임하고 자숙하면서 지내야 옳을 것이다. 대통령이 없어도, 또는 잠시 쉰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 그게 아니라면 내각 총사퇴가 답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가개조, 적폐일소를 외쳤다.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바로 적폐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속되 표현으로 국민을 졸로 본다는 거다.

 

지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소위 특별법국회통과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대통령도 원칙적으로 특별법 제정에 찬성했고, 여당과 야당도 합의했다. 처음 약속한 날짜가 지났다. 오늘 참사 100일 되는 날까지 소식이 없다. 특별법에는 여러 가지 항목이 포함된다. 여기서 관건은 특별법에 의해서 구성될 조사위원들에게 현재 검찰과 같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여당은 이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그 알량한 법, 예수님 당시에도 ()법이 사람을 죽였다. 야당은 수사권은 주되 기소권은 검찰을 통해서 행사하자고 주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잘 모르니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유가족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 없이는 실제적인 조사도, 책임자 처벌도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앞으로 여야가 좀더 머리를 맞대고 유족들의 기대를 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잘 해결했으면 한다.

 

세월호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을 당한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대한민국이 그분들만을 위한 나라도 아니고, 경제 문제를 비롯해서 나라의 중요한 일들이 세월호 건으로 인해서 동력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다. 가족이 죽어도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유가족은 단순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 참사를 당해서 죽었다는 슬픔만으로 이런 특별법 운운하는 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도,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게도 그들은 그런 끔찍한 사건을 개인의 불행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개혁의 단초로 삼아보려고 노력한다. 그 단초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는지의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것이다. 현재의 검찰 조직으로는 이게 불가능하다. 현재의 국회 수준으로는 다시 정쟁으로 떨어질게 뻔하다. 청와대까지 눈치 안 보고 수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기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건 대한민국으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유가족들이 검찰도, 국회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의 이런 생각이 나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무자 몇몇을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끝낸다면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 다른 건 접어두고,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유병언 체포에 올인한 것만 봐도 그게 드러난다. 유병언에게도 큰 책임이 있지만 그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다. 이상한 일이다. 유병언이 마녀가 되어버렸다. 그 마녀만 잡으면 세상에 악이 없어지고, 백성들의 분이 풀릴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는지. 요즘 이미 40일 전에 발견되었으나 이제야 유병언으로 확인된 유병언 변사체에 관한 유언비어가, 이것처럼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소재도 없는데, 난무하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마음이 불편하다. 유족들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 그런 일에 대한 나의 열정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다. 역시 내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니 말만 많은가 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하는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지난 71일 대구경북 지역 장기수 어른들을 모시고 삼계탕을 대접하는 모임에 참석했다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천만인 서명서에 서명했다. 그 외에 여러 모임에서 연락이 오지만 대구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잘 참석하지 못한다. 나는 남을 판단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평생 떨쳐낼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 꿈에도 잊지 못할 416일 이후 100일을 버텨온 이들과 마음으로나마 연대한다는 심정으로 꼼짝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2014724, 세월호 참사 100)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