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산불 때문에 야단들이다. 지난 주일에는 등산객의 실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나서 팔공산 산자락을 7,8만평이나 태웠다. 거의 매일처럼 산불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식목일과 한식날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수십만 평의 산이 잿더미로 변했다. 매년 이맘때면 산불 예방과 진화 준비 때문에 농촌 공무원들은 휴일도 없이 바쁘건만, 웬일인지 해가 갈수록 산불 발생 숫자가 늘어나는 것 같다. 사람들을 아예 산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든지, 아니면 산불진화를 위한 첨단 장비를 특급으로 준비하든지 해야지 잘못하다가는 모든 산이 불바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산불은 수십 년생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나무들을 순식간에 한줌의 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정도의 숲을 가꾸려면 최소한 30년, 많게는 5,60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몽땅 날려버린다는 건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나무나 풀만이 아니다. 그 산에 살고 있는 각종 동물과 곤충들도 모두 죽거나 쫓겨날 수밖에 없다. 산을 기초로 한 생명계가 완전히 파괴된다는 점에서 산불은 인간이 자초하는 참혹한 <카타스트로프>(재앙)이다. 불타버린 산자락의 모습 또한 얼마나 흉물스러운지 모른다. 몇 년 전에 구마고속도로 변(달성공단) 산에 불이 발생했는데, 수년이 지나도 시커먼 나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금도 고만고만한 잡목들만이 겨우 자라날 뿐이어서 산이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선진국에서도 간혹 산불이 대재난을 불러오기도 한다. 캐나다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산불예방과 진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보름이나 한 달간이나 계속되기도 한다는데, 그만큼 울창한 숲이 광활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사이 산불이 발생하는 이유는 건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의 모든 경우에 사람들의 실화에 의한 것이다. 농부들이 전답의 둑을 태우거나 아니면 성묘객들과 등산객들의 부주의로 발생한다. 때로는 산에 가서 불공을 드리거나 기도를 한답시고 촛불을 켜 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가 산불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는 차를 타고 가다가 무심코 차창 밖으로 던진 담뱃불이 번져 산불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딱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한 사람의 작은 실수가, 사실은 아주 큰 실수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시대구분으로 말하자면 대충 신석기 시대 쯤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인간은 불 없이 살았다는 말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후로 인류의 모든 생활패턴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우선 음식을 불로 조리할 수 있게 되니까 훨씬 영양공급을 잘 할 수 있게 되어서 건강상태가 급신장하게 되었고, 이렇게 강해진 신체 때문에 인류가 지구의 모든 동물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불은 인간에게 철기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였다. 불을 사용해서 철광석에서 철을 제련해 낼 수 있었다. 이전에 돌을 사용하던 생활에서 철을 사용하는 생활로 바뀌었다는 건 말을 타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게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약적 발전이다. 돌도끼와 철 도끼의 차이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철기문화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런 게 사실은 불의 사용으로 인한 결과다. 다른 한편 철로 만든 농기구나 수렵 기구를 사용한 결과로 찾아오게 된 생산성의 제고가 인간들의 복지를 향상시킨 건 분명하지만 이로 인해 소유의 사유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지 불은 인간문명의 확실한 밑거름이었다는 것 분명하다.
헬라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추어 놓은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여성을 보냈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가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가 결국 <판도라 상자>건으로 인해 인간에게 많은 재앙이 다가오게 되었다. 그 후에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장을 쪼였지만, 밤에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불이 하늘에서도 각별히 다루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으며, 불을 가진 인간 세상도 이제는 하늘과 동등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은 인간에게 생존의 첫째 조건이며 동시에 인간이 문명을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거이기도 하다. 불은 우주를 가능하게도 하며, 동시에 우주를 없애기도 하는 일종의 능력이다. 본질적으로 불덩어리인 태양은 생명이며 동시에 죽음이다. 태양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지구처럼 생명의 별이 될 수 있지만 너무 가깝게 가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 이런 불덩어리는 생명의 에너지이며 동시에 생명의 파괴자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중심은 온통 불이다. 바위가 끓을 정도로 높은 온도의 불이다. 불덩이었던 지구의 표면이 식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이 지구에 생명체가 싹트지 못했을 것이다. 불은 물질의 화학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불은 물을 수증기로 만들고, 전기를 일구어내며, 거의 모든 사물을 원소 단위로 쪼개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불은 우리가 쉽게 이용해 버리고 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근거인데, 불이 있었기에 생명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불 앞에서 인간이 겸손하지 못하다면 자기를 상실하는 것과 진배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모세 앞에 임재할 때 불로 자신을 드러냈으며, 신약성서는 성령을 불에 비유하고 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은 불의 혀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이 생명의 능력이며 근거이듯이 불도 그렇다. 불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9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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