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

금년 들어 온 세계 곳곳에서 난폭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 도쿄에서 독가스가 살포되어 12명이 죽고 5천여 명이 상해를 입었다. 지하철을 타고 있던 많은 행인들이 ‘사린’이라 불리는 독가스에 질식되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악취소동이 일어났으며, 이를 수사하던 경찰청장관이 피습 당했고, 지난 4월 23일에는 독가스 범행 집단으로 지목받고 있는 옴敎 제 2인자라 할, 교단 과학기술성 책임자인 무라이 히데로가 한국 국적을 가진 한 청년에게 과도로 찔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참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만이 아니다. 지난 4월19일에는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건물에 9층짜리 그 건물의 반 정도가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탁아소 어린이를 비롯하여 백여 명 아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연방정부에 적대감을 가진 무장단체 <미시간 민병대>에 속한 이들의 소행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의 테러에 비해 제 3세계에서의 테러는 보다 과격하고, 충동적이다. 지난 4월22일 르완다 남서부 키베호 난민촌에서 정부군인 르완다 애국군이 후투족 난민들을 무차별 난사하여 어린이와 부녀자 등을 포함, 8천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보도됐다. 르완다는 이미 몇 년 전 부터 내전으로 인한 난민과 기아와 질병으로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나라다. 르완다는 소수족인 투치족과 다수족인 후투족(85%)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난해에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학살극이 벌어져 1백만 명이 사망하고 2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현재 소수족인 투치족이 정권과 군을 장악하여 다수족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 르완다 문제는 유엔에서도 효과적으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약간 다르지만 또 하나의 제 3세계 테러는 이렇다. 파키스탄의 12세 이크발 마시가 지난 4월16일 암살당했다. 그 소년은 지난해 11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동문제 회의에서 수백만 파키스탄 어린이들의 강제노역 실상을 증언하여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그 소년이 부활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두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기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암살자들이 나타나 총탄을 쏟아 부었다. 암살자들은 마시에 의해 어린이 노동착취가 곤란하게 된 카펫 업자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가? 제 3세계의 테러야 늘상 보아왔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과 일본 같이 온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나라에서 조차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지금은 냉전이 끝나고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때인데 말이다. 구소련과 동구라파의 몰락 이후 이들과의 대결 구조에서 일방적 승리를 쟁취하므로 써 장밋빛 역사의 미래를 그리고 있던 자본주의의 대표적 두 나라 안에서 이런 처참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건 예상 밖이다. 인간은 복지생활의 향상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는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테러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파괴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테러는 상대적으로 힘이 모자란 이들이 극단적 방법으로 자기의 의사를 알리고자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대로 여객기 탈취 사건들이 단적인 예다. 대개 아랍 계통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하는 방식처럼, 이스라엘이나 구라파 여객기를 피랍 하여 구금되어 있는 자기들 동료를 구하려고 테러를 감행한다. 그런 시도가 그들의 의도대로 성공한 적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 또한 소위 적군파라고 불리는 극단적 좌파에서 벌이는 테러도 있다. 그들은 군수 공장 책임자나 군수 무역업자를 선정하여 암살한다. 그 목적은 이 세계에 평화를 실현코자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폭력을 통한 평화구현>이라는 모순된 이념을 저들은 갖고 있는 셈이다.
모든 테러가 악한 것만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전쟁 중 게릴라로 적국 깊숙히 잠입하여 주요 군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주요인물을 살해하는 행위는 오히려 애국적 행위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고위 인사를 암살했던 우리의 애국지사를 생각하면 간단한다. 혹은 강도가 침입했을 경우에 그 강도를 폭력으로 제압했다면 그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가? 일종의 <反暴力>의 정당성 여부는 윤리나 실정법에서도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폭력 내지 테러는 악이다. 나름대로의 합법성을, 혹은 이념을 그들이 들고 있지만 그건 자기의 변명에 불과하다. 이번 일본의 독가스 사건이나 미국의 건물파괴 사건을 일으킨 이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종교적인, 혹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완벽하게 평가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긴 하지만 우리는 테러리즘이 안고 있는 그 반인간성과 반사회성과 반평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새디즘>의 심리를 갖고 있다. 상대방을 파괴시킴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전쟁이란 게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 안에 있는 새디즘적인 심리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권투는 그걸 가장 리얼하게 보여준다. 서로 치고 받는 걸 통해서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컴퓨터 게임 중에도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 모든 부분에서 <테러리즘>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 <9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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