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의 허와 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중학입시가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 당시로서는 변방이라 할 천호동에 있었던 천호국민학교였다. 내 성적이 그런대로 괜찮았던지 담임선생님이 왕십리에 있던 성동 중학교에 응시원서를 써주셨다. 그 추운 겨울철 난방도 시원치 않은 성동중학교에서 곱은 손을 입김으로 불어대며 입시를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떨어졌다. 그 해의 중학입시에 <무즙> 파동이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즙을 만들 수 있는 채소 중에 무가 해당되는가 아닌가, 라는 문제 때문에 학부모들이 문교부 장관실에 가서 크게 항의소동을 벌인 사건이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당시 학부모들은 정말 극성스러웠다. 소위 치맛바람이 드샜다. 일류 중학교인 경기, 서울, 경복 중학교에 들여보내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런 중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도 좋은 곳에 갈 수 있고, 대학교도 그렇고, 그 뒤의 출셋길도 보장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사실이기도 했지만, 사생결단으로 자기 아이들을 몰아쳤다.
이게 우리의 비극적인,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평생 동안의 운명이 결정되던 우리 시대였다.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알고 모르면 얼마나 모르겠는가. 집에서 관심을 갖고 돌보아 주는 아이들은 당연히 높은 성적을 올릴 수 있고, 자기 부모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아예 천재로 태어나지 않는 한 두각을 드러낼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걸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2-3년 후에 중 입시 제도가 없어지고 지역별로 은행 알을 돌리는 추첨제가 실시됐다. 말하자면 중학교 평준화였다. 이어서 고등학교도 평준화되었다. 그 이후 약간 씩 교육제도가 바뀌긴 했지만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하향평준화라는 비판을 계속 제기한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학생들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빚어지는 반사회적 결과들 때문에 중고교 평준화 시책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5월31일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발표한 <신교육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을 보면 자칫 개혁이란 명분으로 흠집만 만들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이번 개혁안의 골자는 본고사 폐지와 사립대학의 자율화다. 그 이외에도 만5세 취학이 가능하다든가, 사립 고교 중에서 일부 평준화 해제 같은 부수적인 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고사가 폐지되고 대신 내신 성적을 포함한 종합생활기록부가 대입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 각론적인 지침이 마련되겠지만, 전체적인 개혁방안의 방향은 교육개방화를 앞둔 경쟁력 강화와 망국병이라 할 과외근절을 위한 개성중심의 교육 실현이다. 참으로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학력 중심사회는 더 이상 미래 사회의 모형이 될 수 없으며 개개인의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종합적 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중고등 학창 시절 부터 사회봉사활동을 시켜 그걸 대입에 반영시킨다는 말인데 일단 시도 자체는 괜찮은 것 같다.
전문가들의 문제점 제기, 예컨대 종합생활기록부가 과연 현실성이 있겠는가, 그게 오히려 치마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일부 귀족 고등학교가 설립되지 않겠는가, 이런 교육정책을 실시할 만큼의 재정 확보가 분명하지 않다든가, 혹은 한편으로 대학의 자율화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본고사 폐지나 생활기록부 반영이라는 지침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율성의 제한을 가져오게 된다는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무엇보다도 앞으로 대학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될 걸 생각하면 염려스럽다. 이러한 무한경쟁으로 우리의 대학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선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벌써 부터 지방 대학에서는 우수 학생들을 서울로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젖어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마음대로 정원을 조정할 수 있다면 일류대학 인기학과의 정원을 늘리게 될 것이고 당연히 우수재원이 그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대학 간의 격차가 심한데 앞으로는 대학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혁안이 겉으로 보기에 매우 이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왜 그럴까? 보다 확실한 한민족의 미래를 향한 교육철학에 근거하지 못하고, 그저 이 나라 저 나라의 좋은 제도를 얼버무려 놓은 것 같은 인상이다. 일례로 미국에서처럼 중고등 학생들의 사회봉사를 대학입시에 반영한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 과연 그런 봉사기관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어디에 가서 봉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현재 중고등 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의 이런 문제 까지 파악하고 지도할 만한 준비를 갖추었을까? 교사들에 대한 지원도 충분하지 않고, 더구나 지금도 촌지다 뭐다 해서 비교육적 문제가 심각한 형편에서 교사의 평가 재량권이 강화된다면 교육 비리의 장이 넓어질 뿐이다. 또한 본고사를 폐지하면 과외가 없어지리란 기대도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안이한 착상이다. 오히려 앞으로는 과외가 초등학교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아무리 이상적인 교육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지만, 사회구조와 연계되지 않는 한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 어떤 인간을 키워낼 것인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만 교육 정책의 정당성이 담보될 수 있다. 21세기에 세계의 주역으로 고소득을 올리며 톡톡 튀는 사람들을 생산해 낼 것인가, 아니면 경쟁력이 모자라드라도 정의로운 공동체에 속하기를 원하는 인간을 키워낼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개혁안을 비롯하여 우리는 항상 앞에 속한 유형의 인간, 즉 엘리트만을 위한 교육에 치중했다. 여기에 바로 우리 교육의 허와 실이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9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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