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석 군과 유지환 양

시체 발굴작업이 모두 끝나봐야 알겠지만 이번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육백 여명의 사망자를 포함해서 천 수백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인다. 천하 보다 귀한 하나하나의 생명이 무자비한 콩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침통하다 못해 붕괴사고에 연관된 장본인들과 감독관청 공무원들의 그 무감각에 분통이 터질 것 같다.
그 아비규환이었을 사고당시의 백화점 안에 들어 있다가, 순간적으로 몰아친 태풍에 튕겨 나왔든, 매몰되었다가 구조 받았든 간에 살아났다는 건 순전히 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최명석 군과 유지환 양의 그것이었다. 그 두 젊은이의 구출과 관련된 이야기는 단순히 기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보다 큰 인간 승리였다.
최명석 군은 사고 이후 230시간 여 만인 지난 7월 9일 아침에 구조되었다. 21살인 최 군은 거의 열흘 동안 한 평 남짓한 콘크리트 더미의 틈바구니에서 죽음과 직면해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또한 여상고를 갓 졸업한 18세의 유지환 양은 최 군보다 이틀 이상 더 매몰되어 있다가 285시간 여 만에 바깥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열이틀 동안 아주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꼼짝하지 않고, 본인의 말에 따르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냥 누워 있었다고 한다. 최군의 열흘, 유양의 열이틀은 삶과 죽음이 혼재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백화점이 무너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어둠의 폐쇄공간에 갇혀 있는 걸 알았다.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 보다는 죽어나갈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런 곳에서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났다.
이 두 젊은이의 구조 장면과 그 이후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지나칠 정도로 침착했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입구에서 되돌아 나온 아주 극적인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순간을 일상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들 보다 앞서 구조된 이들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있거나 혹은 흥분된 상태였는데, 이들은 흡사 맹장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처럼 편안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감격으로 ‘만세’를 외치거나 아니면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쏟지도 않았다. 특히 유지환 양은 구조 순간에 구조대원이 그녀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자 즉시로 교정하였고, ‘이곳에 며칠 더 있겠다.’는 농담도 던지는 등,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건짐을 받은 어린 아가씨의 태로서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은 태도를 보여줬다. 죽음과 삶의 문턱을 아주 담담하게 넘나드는 것 같은 이런 태도는 아무에게나 가능하지 않은 건 데, 이런 정신적 위대성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들은 일단 자신에게 죽음의 가능성이 10%, 1%만 된다고 하더라도 견뎌내지 못한다. 예컨대 최 군과 유 양의 구조가 있기 며칠 전에 대구 시의원으로 당선된 52세의 박철웅 씨가 납치범들에게 납치되었다가 2,3일 만에 경찰에 의해 구조되었다. 박 씨는 유양에 비해 거의 세배나 더 오래 살아온,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었는데 풀려나온 후,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벅차하는 모습은, 본인에게는 실례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마치 어린 아이 같았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그게 사실은 정상적이었을 지 모른다. 그런데 의존적이고 감각적이고 조급하여 시련을 견뎌내는 힘이 없다고 생각되어 온, 소위 X세대라 불리우는 이 두 젊은이들이 구조순간에 보여준 여유로움은 흡사 생사를 초월한 도인(道人)의 모습을 방불케 했는데, 이건 경이로움이며, 인간 신비이며, 위대한 인간 존엄성이었다.
최 군과 유양이 좁은 공간에서 십 여 일 동안 취한 행동은 비슷했다고 한다. 그저 그 상태에서 별 움직임 없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최 군은 빗물을 받아먹었고, 유양은 그것마저 먹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두려움 때문에 발버둥을 쳤다면 일찌감치 탈진하여 죽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태연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언젠가 밖에서 구조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을 텐데, 누가 보아도 거의 절망적인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제 정신으로 십 여 일 동안 버텨낼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어린 탓에 죽음의 공포를 아예 느끼지 못했다거나, 체질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우리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그런 절대 위기 가운데서 그럴 수 있었던 힘은 그 두 인격체가 갖고 있었던 특별한 정신적 힘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것은 현실 적응력이 아닐까? 최 군이나 유양 모두 고등학교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최 군은 전문대학 2학년생으로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고, 유양은 상업계 여고를 졸업하고 유리회사에 취업하여 그 백화점에 파견근무 중에 있었다. 자신들의 약간 낮은 사회적 위치를 못마땅해 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삶의 자세가 죽음의 상황을 거칠게 항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인간승리를 일궈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벌써 최 군과 유양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 출연이나 CF 출연 제의가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건을 돈벌이와 연결시키는 오늘의 상업주의의 추한 모습이다. 최 군과 유양의 영웅적 행동이 이 시대의 상업주의 정신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젊은이의 인내와 용기와 행운에 쌍수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9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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