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종말론

인간의 문명은 불의 역사와 같다. 음식을 가열처리함으로써 영양공급이 원활하게 되었고, 철광산업도 뒤따르게 되었다. 고대인들이 우연하게 불을 발견한 이후로 불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주로 나무를 연료로 사용했고, 이어서 석탄이라는 아주 효율성이 높은 에너지원을 발견하게 되었었다. 그 석탄은 아직도 산업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긴 하지만 석유의 개발로 인해 그 가중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산업의 중추로 기능했던 석유도 그 저장량의 한계 때문에, 그리고 환경 파괴적 요인 때문에 원자력, 혹은 언젠가 발견될 대체에너지에 의해 지금의 자리를 물러나야 하겠지만, 그러나 석유는 단순히 에너지원이라는 부분만이 아니라 산업전반의 기초 원료를 공급해 준다는 점에서 석탄과 같이 그 효용가치가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이 석유산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 부터 석유를 부분적으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같은 고대문명의 문헌에 보면 자연적으로 지표에 스며 나온 원유나 아스팔트가 의약, 종교상의 의식, 접착제, 방수제로서 약간 씩 사용되었지만, 정작 인류사회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석유가 이용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후반에 등화용으로 사용되다가, 석유를 연료로 하는 기차와 자동차의 내연기관이 발명됨으로써 석유의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디젤이 발명한 디젤기관은 해상교통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 선박의 80%가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세계 1,2차 전쟁은 항공기나 고옥탄가 휘발유의 제조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석유의 가치를 훨씬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석유는 난방용으로도 석탄 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전 세계는 중유로 전환된 석유를 난방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석유는 이러한 연료로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화학물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합성섬유, 합성수지, 합성고무, 도료원료, 합성세제, 계면활성제, 용제, 염료, 가소제, 비료, 공업약품, 농업약품, 의약품 등이 산업현장에서 실용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동아세계 대백과사전 참조).
앞으로 석유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가 발견될 지 확실하지 않다. 지금 어느 정도 일반화 되고 있는 핵원료는 그것이 주는 산업적 이점에 비해 인류 전체의 생존을 담보해야 한다는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일 수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여러 기의 핵발전소가 있고, 현재도 건설 중이며, 북한에도 우리 기술진이 핵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으로 있는데, 문제는 원자핵이 쏟아내는 방사능 유출의 위험성만이 아니라 핵 쓰레기의 완전한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하 벙커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수밖에 없는데, 관리 기술적인 문제나 자연재해로 인하여 그것들이 노출될 때 벌어지게 될 끔찍한 결과를 생각하게 된다면 현재 우리가 좀 불편하게 사는 게 나을지 모른다.
결국 현대 인간 문명은 좋으나 싫으나 땅 속의 석유가 바닥날 때 까지 그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석유 발굴 초창기에는 검은 황금으로 불릴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지금도 역시 우리 인간의 형편에서 석유만큼 유익한 물질도 없다. 석유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 이처럼 더운 날 선풍기나 에어컨 작동도 석유 에너지 덕이다. 세계 도로 마다 달리고 있는 자동차, 하늘의 비행기, 바다의 선박이 모두 석유를 마시고 있다. 석유 생산이 1년만 정지된다면 거의 전 세계 산업이 마비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까지 너무나 깊이 석유 맛에 길들여져 온 것 같다. 알코올중독자처럼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실정이다. 알콜 중독자의 종말이 뻔 하듯이 석유중독의 현대문명도 그런 종말에 이를 지 모른다. 이미 그런 증상들은 여러 곳에 드러나고 있다. 지구를 독성 햇살로 부터 지켜주는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생태학자들의 경고가 오래 전 부터 있어왔는데, 이 원인도 결국 석유와 관련되며, 석유에서 추출된 합성수지와 세제들은 산과 강을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제품들이 생태계에 어떤 치명적인 작용을 하게될지 확실하게 알지도 못한 채, 사실은 모르는 채 하면서 마냥 사용하고 있다.
지난 페리 태풍으로 인해 전남 여천군 남면 소리도에 좌초된 대형 유조선 시프린스호에서 기름이 유출돼 남해안 일대가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있다. 천만 다행으로 8만 여 톤에 이르는 원유는 유출되지 않고 시프린스호 연료로 쓰이는 벙커C유만 유출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안 거의 전 지역으로 기름띠가 확산되어, 가두리 양식장과 연안어장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있으며, 많은 해수욕장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 유출된 기름은 며칠 내로 뒤엉켜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예정이고, 방제를 위해 뿌려댄 유화제도 결국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제2의 해양오염의 원인이 될 것이라 한다. 기름띠를 제거하는 데만도 2개월 이상이 걸리며, 모든 해양상태가 원상회복되는 데는 30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인간은 자연을 있는 대로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결과를 예측하거나 후손들을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으로 이용했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건 아닐까? 콜라 병속에 스트로를 꽂고 홀짝 홀짝 빨아마시듯, 우리는 땅 속에 묻혀 있는 석유를 야금야금, 때로는 엄청나게 빨아 마시며 흡족하게 살아왔다.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일까? 어쩌면 석유빨대를 입에 물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석유에 의해 종말을 고하게 될 날이 다가올지 모른다. <9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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