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549돌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은 그 시작부터 유별나다고 볼 수 있다. 자료를 조사해 보지 않아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리 한글처럼 어느 특별한 인물이 특정 시점에서 소설을 쓰거나 시를 짓듯 창작해 낸 글자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으리라고 본다. 한자나 영문자를 누가 만들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그런 글들은 언어가 유구한 세월 속에서 일정 형식으로 형성되어 왔듯이 그런 과정을 거친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549년 전에 만든 글자다. 그 이전 까지 우리는 한자만을 사용했고, 따라서 서당공부를 할 수 없었던 서민들은 말만 할 줄 알았지 그걸 글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세종대왕은 모든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한글이 창제되었다고 해서 모든 백성이 이 글을 사용하게 된 건 아니었다. 일반 서민들이야 글자가 없어도 별로 살아가는데 불편한 게 없으니까 구태여 새로운 글자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양반층들이야 한자만을 배울만한 가치 있는 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뜻한 바대로 한글이 사용되지는 않았다. 그 시대 사람들은 한글을 언문이라고 해서 무식한 사람들이나 부녀자들이 배우는 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남북한 모든 한민족이 한글을 자기 문자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문맹률이 낮은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글은 우리의 중심 문자가 되었으며, 고도의 문자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학자나 문학가들로 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한글을 사용한다. 이정도로 한글이 한민족의 문자로 자리를 잡게 된 건 알게 모르게 한글을 소중히 생각하고 발전시켜 보려했던 많은 이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앞으로 계속 우리의 한글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자로 발전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모두 한결같이 동감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못한 상태다. 그저 단순하게 한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게 바로 우리의 글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논쟁이지만 한자사용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글 옹호론자들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한글로 어떤 사실이나 사상이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글전용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자 사용의 병행을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의 말이 근본적으로 중국의 한자로 부터 영향을 받아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모든 표현을 우리말로만 한다면 일상에서는 몰라도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아직도 분명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지만, 우리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우리말 전용에는 문제가 있다. 단순히 모음 10자, 자음 14자를 사용하여 썼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우리말은 아니다. 아주 많은 용어들이 한자다. 예컨대 <용기>도 <勇氣>라는 한자다. 교회(敎會)도 그렇다. 한자를 우리 글로 썼다고 해서 그게 곧 우리말은 아니다. 만약 모든 걸 우리말로 바꾸어 써야 한다면 이런 한자를 모두 풀어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한글 옹호론자들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한글을 사용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의 삶에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들은 그게 한자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절충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한글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자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보다 폭넓은 전문가들의 논의가 진행되겠거니와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그건 문장 구성에 있다. 한자 단어를 사용해서 의미가 명료해 진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문장 자체가 일본식, 중국식, 영국식으로 변한다면 그건 정말 심각하다.
이 문제에 좀더 명확하게 접근하기 위해선 말과 글자의 관계를 짤막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글자는 문자며, 말은 소리다. 문자는 눈으로 인식되고 소리는 귀로 인식된다. 인간은 소리를 통해 먼저 인식 방법을 배웠다. 어머니 품속에 안겨서, 혹은 친구들과 사귀면서 배우는 소리다. 그 말, 그 소리를 문자로 표현하는 게 글자다. 글자를 위해 말이 있는 게 아니라 말을 위해 글자가 있는 거다. 따라서 우리는 말하듯이 문장을 쓰도록 해야지 반대로 사용하면 잘못된 방법이다.
오늘 젊은이들의 글을 보면 말을 글로 기록하는 게 아니라 글을 위한 글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글은 우리 한민족의 말이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글이 되어버렸다. 겉으로는 한글로 썼지만 그 글의 문장구성은 일본식, 혹은 영국식으로 되어 버렸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두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한 가지는 기본적으로 논리력의 부족이다. 어떤 대상이나 사상을 말이나 글로 구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의 결핍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나누던 짧은 대화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한국말과 외국말과의 혼동이다. 한국말을 쓰면서도 흡사 영어를 쓰듯이 한다. 그들이 쓰는 한글은 한국인의 말이 아니라 영어를 번역해서 한글로 적어놓았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국민학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더욱이 영어 조기 교육은 이런 문장력 부족의 문제를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민족의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공부가 완성되기도 전에 구문이 전혀 다른 영어를 가르친다는 건 엄청난 난센스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한국말 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걸 바란다면 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다 확실하게 한민족의 말과 글을 가르쳐야 한다. 언어구사력은 단순히 의사표현의 차원만이 아니라 바로 민족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9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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