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이야기
지난 한 달간 법무부 장관 후보 조국과 그의 가족 이야기로
대한민국 전체가 야단법석, 말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들리기로는 몇십만 건의 뉴스가 반복 재생산되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어제 청문회가 열렸다.
며칠 전에 있었던 조국의 기자 간담회 때 질문하던 기자들이나
이번 청문회에서 질문하던 야당 국회의원이나 수준이 비슷했다.
국민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을 지루하게 반복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도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청문회 대상자를 당혹스럽게 할만한 논리나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야말로 맹탕이었다.
청문회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어제 청문회에서 나온 가장 큰 이슈는 동양대학교 총장 표창장 건이었다.
조국 부인이 사문서를 위조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이 어제 심야에 기소했으니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동양대학교 최 총장은 조국 부인인 정 교수가 위조했다는 뜻으로 언론에 말했다.
표창장 건으로 총장이 대학교 총장실이 아니라 검찰청(?)에 불려가서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도 코메디다.
대학교에서 발부하는 (봉사)표창장에 대해서 총장이 다 아는 것처럼 말했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방학 중에 시골에 내려와 영어 지도해 준 대학생에게 주는 그런 표창장은
전결 처리로 발부된다는 사실을 다 안다.
일련번호도 당연히 다를 수 있다.
딸이 봉사하지 않았는데도 어머니인 정 교수가 담당 사무직원을 통해서
봉사 표창장을 손에 넣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내가 보기에는 없다.
물론 사람의 속을 내가 아는 게 아니기에 정 교수가 딸의 스펙을 늘리기 위해서
무리했을 수도 있다. 검찰이 잘 밝혀보기 바란다.
어제 청문회를 보느라고, 물론 부분적으로만 봤지만
설교 준비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 이유를 미주알고주알(?)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람에게는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일단 느낌으로 그에게 신뢰가 갔다.
지난 삶의 과정도 우리가 대충 안다.
가족에 관계된 일들에 관해서는 사과할 건 사과했고
해명할 건 해명했다. 대부분이 클리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내의 기소 건은 문제가 안 된다.
누가 말했다는 조국의 언행불일치(?)도 큰 문제가 안 된다.
언행불일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민주당 금 아무개 의원이 조국을 그렇게 비판하면서
장관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데,
좀 웃기는 시츄에이션이다.
우리는 지금 수도원 원장을 뽑는 게 아니다.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법무부의 수장을 뽑는 것이다.
그 일을 감당할 만한 자질이 있는지만 보면 된다.
도덕성도 결정적인 흠결이 아니면 문제가 안 된다.
나는 청문회를 보면서 조국 씨가 도덕적인 면이나
언행일치 면에서 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윤 검찰총장과의 관계도 쿨하게 생각하면 된다.
조국이 누누이 말했듯이 총장이 할 일이 있고
장관이 할 일이 있다. 자기들 일에 충실하면 된다.
검찰이 왜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권력을 이용해서 크게 부정한 일을 행한 범죄자를 수사하는 듯한 태도로
압수수색을 벌였는지, 반복적으로 벌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고 판단한 것일까?
기자들은 조국 딸의 자소서까지 탈탈 터는 방식으로 취재하고
확인 과정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보도했다.
대중들의 관음증을 자극한 건가?
앞으로 청문회 대상이 되려는 사람은 자녀의 자소서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미친 세상 아닌가?
탈탈 털어서 먼지 하나라도 나오면 장관 하지 말라는 건가?
조국이 장관에 임명될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어느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나라를 위해서 일하다가 결과가 좋으면 기분이 좋은 거고
결과가 나쁘면 그것을 감수하면 된다.
문 대통령은 이미 마음을 비우고 대통령직을 시작했고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목사보다 소명의식이 더 투철하다.
어려움을 뚫고 나갈 것이며, 나가지 못해도 누구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청문회를 보고 든 생각 두 가지만 짧게 말한다.
1) 조국은 왜 그리 당당한가?
전날 밤에 한숨도 못 자서 피곤했겠지만, 전체적으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뻔뻔한 게 아니라 당당했다. 그리고 겸손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2) 어느 신문은 지난 기자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조국이 ‘모른다’라는 말로 일관했다고 비판한다.
모른다는 발언의 숫자까지 나열했다.
삐딱한 눈에는 모든 게 삐딱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10시간 이상 진행되기에 아는 건 안다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끝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비롯한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
조국 씨, 힘내세요.


앗 저도 수도원 원장 뽑는줄 알고 이런 글을 썻는데....
수도원 원장을 뽑
일주일 새에 각종 언론과 인터넷에 110만건의 엄청난 기사가 쏟아진 사건이 발생했다. 일주일 기사의 양만 보면 세월호 기사보다도 더 많다고 하니 분명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기사이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임명하기 전에 이 사람이 장관으로서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국회에서 청문회 형식으로 검증을 한다. 그런데 나는 ‘장관의 자격’이 수도원 원장보다도 더 경건하고 도덕적이며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리인지 처음 알았다.
후보자를 검증하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지 그 가족들 신상털기를 한다. 장관이 되려면 이제부터 가족들도 모두 수도생활을 해야 할 판이다. 내 생각에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크게 불안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 자격이 충분하다.
후보자의 입술을 보니 이를 악물고 이 순간을 참고 또 참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고비를 넘기고 장관에 임명되면 진짜 뒤질 사람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도 안 나오는 코미디이다. ⓒ최용우
부인을 기소까지 했더군요
대한민국 청문회 역사상 이보다 더 많은 의혹이 있었던 장관 후보자가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안대희나 문창극은 왜 낙마했나요? 조국이 깨끗한 사람이면 저 사람들은 예수님이상이겠네요.
전 외교관 신상목씨의 의견 입니다
'586 담론은 세대론이 아니라 계급론이(라 생각한)다.
나이를 기준으로만 586 담론을 보는 것은 일차원적인 이해이다.
586은 (물적 자본을 소유한 자산가 계급이 아니라) 도덕 자본을 독점하여 사회를 지배하려는 도덕 독점자본주의자의 상징이다.
그 도덕 자본은 희한하게 장래에 대한 물적, 지적 투자가 아니라 유령의 무덤을 파헤치고 묘비를 때려부시는 굿판을 벌려 자본을 증식한다. 친일의 무덤과 독재의 무덤은 그들의 화수분이다. 거기를 파기만 하면 자본이 마구 늘어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도덕적 우위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획득하여 자기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마에 적폐니 이적이니 자청(刺青)을 새겨 놓고 멋대로 그들의 지적 자본을 몰수하고 봉인하고 폐기 처분한다. 무덤을 파헤쳐 얻은 정당성이 미래를 준비하는데 무슨 그리 큰 실용적 도움이 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뼈까지 갈아 마시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각자의 신념이야 자유니까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관 뚜껑을 열고 보니 그렇게 파헤친 무덤 속 존재나 586이나 도덕적 우열에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 이번 법무장관 임명에 즈음하여 벌어진 일련의 사달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실증 가능한 실체적 결과를 남기지 못하고 사변과 언설로 선과 정의를 독점하고 (그나마 실천도 안되면서) 자기들만이 사회를 유토피아로 이끌 수 있다는 발상의 소유자들은 이제 그만 주도 세력의 자리에서 퇴장되었으면 한다.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져야 그나마 살기 덜 퍽퍽한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 프로 정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자기 실천 우선의 정의감, '애프터 유' 정신의 체화, 타인의 생각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문명과 혁신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비전을 소유한 세력이 사회 요소의 주도적 위치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586 담론은 세대론이 아니다.'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학생들이 시위를 했습니다. 80년대 학생들은 정의롭고 지금 대학생들은 철이 없나요? 저는 그 사회의 가치 기준은 동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한번 획득했던 도덕적 우위를 평생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삼으면서 선과 악을 나누고 자신들은 선 반대하는 사람은 역사의식이 부족한 미개인으로 보는 선민의식을 이제 좀 버리시는게 어떨까요?
“진보 신학자들의 맨 얼굴
1. 예수는 왜 죽음을 당했는가? 물론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교리적(dogmatic)으로 ‘우리의 죄’ 때문이다. 이는 교회에 의해 후향적(retrospective)으로 인정된 사실이지만, 단지 이렇게만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1세기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었던 나사렛 예수에 대한 과소평가이다.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 유대교 사회에서 신성모독이나 더 나아가 사형 언도를 받을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역사적 예수는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선포한 적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확실히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1세기에 예수라는 사람이 살았고,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범들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극형인 십자가형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듯, 당시 로마가 그 통치방식에 있어 고대의 제국답게 잔인한 부분은 있었으나, 사법처리 방식은 그리 허술하지 않아 증거 없는 한 사람을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에 처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죽었는가?
2. 예수는 하느님의 왕국(kingdom of God)을 선포했다. 이 하느님의 왕국은 로마 황제의 제국과 같이 폭력, 결국 죽음의 공포를 그 통치기반으로 하는 로마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통치체계의 전복을 의미하였다. 더 과격(radical)하게는, 혈육에 의한 가족보다 사회에서 소외 받은 경계인과 죄인들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삼고 서로 형제자매를 이루는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것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시대에까지 폭력이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옵션에서 이제는 민주화된 나라들이 그것을 독점하기까지 형태의 변화는 있으나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통치체계의 근본에는 폭력(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화가 없다. 예수는 이 통치체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였던 것이다. 이는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든 간에 결국은 자신을 죽음으로 모는 행위가 되었고, 그것이 당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 처형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1월 30일에 죽지 않았다고 한들, 그가 온전히 자연사하였겠는가? 마틴 루터 킹이 1968년 4월 4일 한 인종차별주의자의 총을 피했다고 한들 그가 평안한 가운데 죽었겠는가? 예수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의 통치체계, 그리고 거기에 속한 엘리트들은 그러한 사람이 살아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3. 예수는 지배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요구한 적이 없다. ‘사두개인들보다 바리새인들이 그래도 더 깨끗하니 우선은 그들이 실권을 잡도록 도와라’라고 제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였다. 그것이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고, 그것은 죽음의 길이었다. 기독교역사에 예수 다음에 중요한 인물이라는 바울, 그 다음 중요한 인물 베드로, 또 그 다음 중요한 인물인 예수의 동생 야고보 모두 통치체계-지배체재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들이 잃은 것은 목숨이었고, 얻은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다.
4. 이번 ‘조국 게이트’에 대한 소위 진보적 신학자들의 논평을 보았다. ‘집단적 히스테리의 광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이명박근혜의 죄에 비하면 조국의 흠결은 먼지와도 같다’, ‘똑같이 더럽더라도 그래도 진보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한다’ 등등. 이번 게이트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그들은 결국 이 지배체제에 속해있는 엘리트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국내 제도권 신학자들의 책은 결코 사지 않을 생각이다. 김규항 선생님의 글이 나에게는 훨씬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다.
5. 이 시대에 예수는 어디에 있는가. 세월호로 300명의 어린 목숨이 스러질 때 그때 같이 죽었다. 사발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던 비정규직 지하철 직원이 지하철에 치여 죽을 때 같이 죽었다. 탈북한 모자가 굶어 죽을 때 그 때 같이 죽었다. 예수는 사법개혁을 위해 작은 흠결을 덮고 민족과 정의를 위해 헌신할 후보자를 응원하는 자리에 결코 있지 않았다.
예레미야 23:21~32 (공동번역)
23:21 내가 보낸 적이 없는데 그 예언자라는 것이 튀어 나갔다. 내가 일러 준 적도 없는데 내 말이라 하면서 전하였다.
23:22 나의 회의에 참석하였더라면 내 말을 내 백성에게 전할 수 있었으리라. 악한 길을 떠나게 할 수 있었으리라. 악한 소행을 고치게 할 수 있었으리라.
23:23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내가 가까운 곳에만 있고 먼 곳에는 없는 신인 줄 아느냐?
23:24 사람이 제 아무리 숨어도 내 눈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똑똑히 들어라. 하늘과 땅 어디를 가나 내가 없는 곳은 없다. 똑똑히 들어라.
23:25 예언자라는 것들이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하는 소리를 나는 다 들었다.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 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것도 나는 들었다.
23:26 제 망상을 내 말이라고 전하는 이 거짓 예언자들이 언제까지 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내 말이라고 전할 것인가?
23:27 이 예언자라는 것들은 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내 백성을 속여 내 이름을 잊게 할 속셈이다. 그 조상들도 바알을 섬기다가 내 이름을 잊지 않았더냐?
23:28 꿈이나 꾸는 예언자는 꿈 이야기나 하여라. 그러나 내 말을 받은 예언자는 내 말을 성실하게 전하여라. 내가 똑똑히 말한다. 검불과 밀알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23:29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순다. 똑똑히 들어라.
23:30 내가 똑똑히 일러 둔다. 이런 예언자들이 서로 내 말을 남의 입에서 훔쳐다가 떠벌이는데, 결코 그냥 두지 않으리라.
23:31 내가 똑똑히 일러 둔다. 이런 예언자들이 내 말을 한답시고 혀를 놀리는데, 결코 그냥 두지 않으리라.
23:32 내가 똑똑히 일러 둔다. 이런 예언자들이 개꿈을 꾸고 거짓말로 허풍을 떨어 가며 해몽을 하여 나의 백성을 속이는데, 결코 그냥 두지 않으리라. 나는 그런 말을 하라고 그것들을 보낸 적이 없다. 그것들은 이 백성에게 백해무익한 자들이다. 똑똑히 들어라.”

"수구"라!...
하긴 하루종일 길을 가다보면 개도 보고, 소도 보는 법이지.ㅋㅋㅋ
근데, 정 목사님께서 어떤 기득권을 누리고 계신지 나만 몰랐네~
자한당에 물어봐야겠넹~
암튼 현재 우리 조국에 조국 씨 만한 법무장관 깜은 없는 것 같소!
사람보는 안목도 아무나 갖추고 있는 건 아니지~^^
"저는 자한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40대 초반 리버럴이지만, 조국 문제를 대의를 위한 동원의 문제로 환원하고 여러 부적격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실드치기와 제도적 꼼수 그리고 민족주의적 파시스트들의 광기에 토악질이 나는 군요. 생각없는 어릿한 기자들이 병신같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삼팔육 지식인들이 아휴 뇌없는 놈들을 이야기할 때, (왜 우리 세대만 생각할 줄 아는 주체적 세대인가의 자부심과 안타까움이 싸하게 퍼지 때) 왜 애초에 기자 회견은 초단시간 공지되고 민주당 출입기자로만 한정되고, 대답은 왜 말도안되는 모릅니다 정도와 맥락없는 진정성의 연출만 돌아다니는지 갑갑하더군요. 그 생각없는 기자들의 멍청한 연극을 설계한 큰그림을 누가 그렸지요? 보는 보통 서민들은 왜 모두에게 답답할까요 물론! 답은 응 그건 네가 사법개혁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와 그 민주적 함의 그리고 동아시아 공동체에서의 민족 통일의 대의를 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미 80년 초반에 고민을 끝낸 문제이거든. 미숙한 사고를 하고 앵알 댈 바에 국으로 닥치고나 있는게 현명한 거다 라는 식의 멘탈이 바로, 삼팔육 헤게모니가 왜 그들의 지배 자체가 조금도 세상을 악화시켰는지를 드러내죠. 왜냐면, 생각할 수 있는 우리와 나머지 병신들의 구도는 그들의 영혼에 핵심이니까요. 그 세대 5프로도 안되는 대학생이 그 세대들 모두를 대변하고, 소시민이었던 그들의 부모를 대변하고, 민중과 민족사 세계사를 대표하던 그 삼팔육 특유의 주체의식의 선민적 태도는 결국 언제나 무오하고 도덕적인 지배의 자의식으로 발현됩니다.
당신들의 세계관에는 주체가 각성된 반성적 소수와 우매한 대중에 대한 대변과 혁명적 세계 형성이라는 망상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 조국을 둘러싼 문프의 대의에 동의하는 나와 생각이 같고 유명한 동지들 그리고 내가 대변할 언제나 내편일 무지렁이들만 있고, 그 밖에서 앵알대는 것은, 논박의 대상이기에는 너무 피곤해지고, 그냥 무반성적 또라이 미성숙한 좀비들로 밀어붙어야 속이 편한거겠죠. 그러니 그 반대 편에서 대깨문 대깨문을 외치며 조롱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논쟁과 쟁론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 간에 나의 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그와 내가 공론장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규범적으로 전제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대화 상대자의 이성능력을 입장이 다르다고 폄훼하는 것에서는 토론과 차이에도 불구한 인정이 생길 수 없죠. 꼰대의 길과 상대에 대한 몰인정은 동의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저는 조국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예.. 제가 무식한거죠.
진보적이고 인기있는 지식인이라는 세간의 평 정도 들어봤습니다.
잘 모르는 양반이지만 온통 세상이 하도 떠들썩하길래
대체 어떻게 엎어지고 되집어질지 청문회를 열~심히 봤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잘 모르는 양반에게 제 마음이 상당히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사람이 더 궁금해져서 8년전 동영상까지 찾아봤습니다.
문재인 전 이사장의 북콘서트에서 조국씨가 사회를 보며 검찰개혁에 관해 토크를 하더군요.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생들이 실망한 그런 차원에서의 언행일치 말고요.
8년전 북콘서트에서 자신이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금 지고 있었습니다.
그 책임을 지느라
아버지 무덤이 밟히고 모욕받고,
언행불일치의 아이콘으로 손가락질 받다가 삶이 모두 소모될지 모르는것도 다 감수하고,
아내와 딸이 어쩌면 앞으로 얼굴 들고 못다니게 될지 모를 것도 받아들이고,
자신이 몰랐던 허물까지 다 까발라질 것까지도 다 각오하고,
물려받은 것과 앞으로 성취하게 될 것까지도 모두 걸고 말입니다.
8년전 동영상을 보고 다시 청문회를 생각해보니
자신의 말에, 이상에 책임을 지기 위해
청문회에서 모욕과 농락을 다 받아내는 그 극단적 언행일치의 모습에
잘 몰랐던 사람이지만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먹고 사느라 당신같은 사람 몰라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한번 더 미안합시다.
잘 버텨주시고 끝까지 해내주세요.
하는거 없이 다 당신이 당해달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어제 청문회를 저도 후반에 간간히 보았습니다.
안 열릴 줄 알았는데
청문회를 하고 있더군요.
수준 이하의 기자 간담회에 이어
청문회에 시달리는
쾽한 얼굴의 조국 후보자가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나라 검찰 개혁이 그렇게도 두려운 걸까요..?
저 정도로 조국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자한당, 언론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검찰의 행동들도 이해가 가지 않네요,
쓰레기통에나 처박을 부류들...! 악의 거대한 실체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법무무 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것 같구요.
조국 후보자가 이 악마구리 같은 상황을 잘 버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