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의 허실

대한민국 군대 역사상 장교의 탈영은 아마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지 모른다. 얼마 전에 발생한 그 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고참 사병이 신참 소대장을 길들이기 위해 위계질서를 허무는 행동을 했고, 그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이의 시정을 강력하게 요청했는데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하사관 몇 명과 함께 군부대를 무단으로 떠났었던 것 같다. 중대장은 고참 병장이 자기 하급자를 시켜 소대장의 군화를 숨기거나, 소대장을 구타하는 등 공개적으로 모욕적인 행위를 저질렀는데도 밖에서 알까 두려워 쉬쉬 하면서 대충 마무리 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병으로 부터 하사관, 그리고 장교에 이르는 군조직 전체가 연루된 것으로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군내외적으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고참 사병이 신참 소대장에 대해 갖는 불만과 냉소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로 인해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군 조직 안에서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거의 2년 동안 소위 군대 용어로 <짬밥>을 먹고 땅바닥을 기며 지내온 병장들이 육군사관학교나 학군단을 갓 졸업한 소위들을, 나이도 때에 따라 자기보다 어린 소위들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들은 순전히 짬밥수로 권위를 측정한다. 예컨대 같은 상병이나 병장이라 하더라도 단 하루 일찍 입대한 사람이 상급자로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이런 위계질서가 군 조직을 지탱하고 있다. 군대생활도 짧을 뿐만 아니라 그 부대 실정도 잘 모르고, 또한 실제적으로 나이도 어린 소대장들이 장교랍시고 특권의식을 갖고 행동할 때 고참 병장들이 가소롭게 여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소대장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비록 자대 사정이 어둡고 나이도 병장들 보다 어리지만 군대 안에서 장교와 병들의 차이라는 것을 하늘과 땅 만큼이나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은근히 자기들을 무시하는 고참 사병들을 볼 때 그냥 보아 넘겨주기가 쉽지 않다. 대개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이번 장교와 하사관 탈영처럼 심각하게 확대되는 경우도 많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일반적인 시각은 대한민국 국군의 군기가 해이해 졌다는 점이다. 가장 존엄해야할 군대의 위계질서가 허물어진 이유가 어디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 여러 모로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사병으로 근무하는 세대가 소위 말하는 <X세대>이기 때문에 자유 분망한 생활철학으로 인하여 경직된 군대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혹자는 1979년 도에 있었던 12.12 사건이 이미 하극상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사건들은 그런 군대 분위기 가운데서 이미 예견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당사자들의 인격적 결함에 있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지 이번의 장교와 하사관 탈영사건은 전대미문의 것으로 군관계자 모두에게 심각한 경종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번 사건이 하나의 드러나 현상으로 표면화 되었다는 것뿐이지 군기의 허(虛)는 늘상 있어왔다. 겉으로만 엄격했을 뿐, 속으로는 몰가치 속으로 빠져든 집단이 우리의 군대였다. 아무리 사병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 시키고, 장교들에게 애국심 운운해 보아도 그들에게 국방이란 일종의 타의에 의한 순응에 불과한 것이지 자발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전에 현풍의 어느 중국집에서 혼자 짬뽕을 먹고 있었는데 한 무더기 사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들어오자 말자 시끄럽게 떠들면서 담배를 뿜어댔다. 급기야는 어느 사병이 식당 바닥에 가래침 까지 뱉었다. 그 청년에게 “식당에서 그렇게 침을 뱉으면 쓰나?”라고 타이르자 미안했던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담배를 빼어 물었다. 이런 군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들은 군대의 조직 안에서만 질서를 찾았지 그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일반인들 보다 훨씬 질서를 허무는 행동을 한다. 왜 그럴까?
필자가 80년부터 83년 까지 전방에서 군목으로 생활하면서 그런 군조직의 허실을 많이 경험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군대는 오직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집단이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고 말한다. 이는 바꾸어 말해 명령이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요사이 흔히 인구에 회자되듯이 <복지부동>이 군대사회의 특징이다. 그들은 그 조직체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상관의 마음에 들도록 만 움직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비생산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도덕한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상급부대에서 검열이 나올 때 밤새도록 보고서를 작성하고 주변을 청결히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까지는 좋지만 내용이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겉만 번지르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문제다. 가장 효율성이 높은 집단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비경제적인 집단이 바로 군대라 할 수 있다. 작년에 국방부 감사에서 드러난 사건이지만 전투기 구입이라든지 폭탄의 구입에 있어서도 거의 형식적인 문서결재로 모든 일이 끝장나며, 자기의 임기에만 문제가 벌어지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보신주의가 직업군인들의 생활태도다.
군기를 잡는 길은 이번 탈영사범들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리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데 달려 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군사문화를 옳다고 여기는 풍토 속에서는 아무리 군의 행형을 강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방편에 불과하다. 우리의 대한민국 군대의 군기와 사기가 살아나려면 그들을 가치론적인(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만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9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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