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합동조사단은 지난 5월20일에 천안함 침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군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한다. 사고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어뢰 추진체가 증거로 제시되었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그 추진체가 북한의 것이며, 또 천안함을 침몰시킨 바로 그 어뢰의 것이라고 했다. 청색 유성 매직펜으로 ‘1번’이라고 쓴 글씨도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46명의 소중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천안함 침몰이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증명해보인 것이다. 이 조사단에는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이 조사 결과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70% 이상이 이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발표를 사실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일까? 다른 건 접어두고 우선 내 상식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답이다. 사고가 일어난 당시는 한국 해군과 미국 해군이 연합 훈련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인근에 십 여척의 군함이 집결해 있었다. 한미군사훈련의 목적은 당연히 북한 해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런 와중에 북한 잠수함이 잠수함을 감시하는 초계정인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모항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은 내 상식에 용납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강도가 아무도 모르게 청와대에 침입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갔다는 말과 비슷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중에 당했다고 말했다. 아마 취침 시간이었다는 말이리라. 대통령이 잔다고 해서 경비병들도 모두 자는 건 아닌 것처럼 천안함이 잠들어 있는 건 아니었다. 합조단은 잠수함 추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 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잠수함 공격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남한 배가 처한 상태는 풍전등화나 마찬가지이다. 북한 잠수함 작전 능력이 세계 최고 군사력을 지닌 미 해군의 눈앞에서 깽판을 치고 귀신처럼 사라질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은 내 상식과 충돌한다. 정황 논리에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정황 논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뢰 추진체라는 실증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추진체 문제는 내가 언급할 수 없는 전문적인 부분이다. 합조단도 전문적인 분석을 통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겠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실정이다. 다른 주장의 핵심은 합조단이 증거물로 내놓은 그 추진체가 천안함을 침몰시킨 어뢰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 아직은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수년전 황우석 박사가 세계 유수의 과학 잡지에 자신의 실험 결과를 게재해서 큰 이목을 끌었지만 그것이 가짜 논문이었다는 사실이 어느 젊은 과학자 동아리에 의해서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물증은 천안함 선체와 어뢰 추진체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조만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그것을 꼼꼼하게 조사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대한 왈가왈부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내 상식에 맞지 않는 대목만 말하겠다. 정부는 왜 그리 조급한가? 사고 조사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배의 한 부분을 조사 발표 하루 전에 건져 올렸다. 그것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발표했다. 조사는 왜 그리 일방적인가? 합조단의 발표와 다른 생각을 하는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북한은 검열단을 파견하겠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살인강도가 검찰의 조사 발표를 검증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그 주장을 거부했다. 거부하는 논리가 옹색하다. 이 문제는 서로 자존심을 다루는 차원이 아니다. 결과에 따라서 한 민족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기분이 상하겠지만 북한의 검열단을 받아들여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논리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억지를 쓸지 모른다는 염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좋다. 그들의 억지는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입지만 줄여줄 뿐이다. 특히 중국의 입장을 북한 우호에서 중립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다.

     국가의 공식 조사단이 발표한 것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이고 문제가 있으면 차츰 보충하면 되지 않느냐, 왜 자꾸 트집을 잡느냐,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합조단의 발표와 어긋나는 사실을 유언비어로 퍼뜨리는 사람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말도 한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현 정권은 툭 하면 법을 들먹인다. 언로를 꽉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그런 시도가 성공하겠는가. 아무리 공식 기관이 발표한 것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북한 체제와 다른 게 무엇인가. 국가 기관, 또는 정권의 조사 발표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하는 이유는 아주 명백하다. 두 가지 예를 들겠다.

     하나는 국내의 예다. 일명 금강산 댐 사건이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금강산에 건설하고 있는 댐이 남한 공격용이라고 하면서, 방류를 시작하면 서울 전체가 물바다가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전문가들을 동원한 과학적 조사 연구 결과를 곁들였다.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성금을 모아서 방어용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금강산 댐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외국의 예다.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를 응징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2003년 3월에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다. 게임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간단히 이라크를 제압한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서 거짓 정보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여러 나라가 이 전쟁을 반대했다. 유엔 사무총장도 반대했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주축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쳤으나 실제로는 제국의 욕망에 불과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런 일을 따지만 어디 한 둘이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핵심은 천안함 침몰에 대한 책임을 북한에 요구한 것이다. 무릎을 꿇지 않으면 모든 관계를 끊겠다는 것이다. 이제 북한 배는 제주도 해역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었다. 북한을 향한 모든 구호물자 공급도 중단된다. 영유아용만 제외라고 한다. 국방부는 휴전선에서 대북 비난 방송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어찌 나올 것인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대북방송 시설을 조준해서 사격하고, 응사가 오면 더 큰 화력으로 타격을 주겠다고 한다. 마치 권투선수들이 탐색전을 벌이는 것과 비슷하다. 만에 하나 확전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너무 끔찍한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조중동 신문은 전쟁을 치룰 각오를 하자고 외친다. 중앙일보 아무개 논객은 3일 만에 한미 군사 공격으로 북한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그러니까 3일 만에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남과 북의 전쟁을 상상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런데도 마치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6월2일 지방선거를 위한 것인가? 믿고 싶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다. 북한을 길들이겠다는 진심에서 나온 조치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는 너무 순진한 분이다. 그분이 장로니까 이런 문제를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탄 집단이니까 박멸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크게 오해한 분이다. 그는 지금 우익적인 반공 이데올로기를 기독교 신앙으로 가르치는 목사들에게 정신적으로 포로가 되어 마녀를 잡듯이 북한과 대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내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북한 정권은 정말 나쁜 집단이 아니냐, 그런데 왜 비호하느냐 하고 묻고 싶으신가? 북한 정권은 불량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조폭 기질이 있다. 문제는 그들이 바로 우리 형제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이다. 내 동생이나 이웃이 조폭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동네에서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기 전에 일단 그를 붙잡아서 혼내 줘야 하는가? 그게 평화의 길인가? 햇볕정책, 퍼주기 정책으로 북한이 망나니짓을 더 하는 거 아니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길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전자를 택한다. 조폭 이웃과 동생을 도와주겠다. 그가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게 나도 살고 그도 사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뻐서가 아니라 상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온건한 분들 중에서도 햇볕정책에 동의하지만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만은 분명히 북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거기에는 일단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객관적 진실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거기에 논란거리가 너무나 많다. 이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한민족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건이니까 시간을 충분히 갖고 가능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되었어야 한다. 그것이 없었다. 뭔가에 쫓기듯이 발표했고, 이어서 연출하듯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전시실에서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 어떤 수렁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다. 내 딸들에게 이런 미래를 살게 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을 100% 확신하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검열단을 받아들이라. 진실에 속한 사람은 어떤 논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둘째, 개성공단을 당장 철수하고, 자위권을 당장 선포하라. 천안함 공격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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