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대회

지난 6월 한달은 온통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로 온 나라가 난리통이었습니다. 1승도 만만한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태극전사들이 16강, 8강, 4강까지 거칠 것 없이 밀고 나갔습니다. 월드컵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이라고 하는군요. 4강에 들어간 날 대통령은 단군 이래 가장 기쁜 날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붉은악마는 아이엠에프, 대통령 아들 구속 등등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4천5백만 남한 국민들의 기(氣)를 한껏 높여주었다고들 합니다. 길거리 응원 7백만이라는 숫자는 우리 국민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느낀 감동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의 이 거대한 흐름에 대한 다른 목소리는 아주 작게 들립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니까 러시아 출생 귀화자인 박노자라는 젊은 교수 한 사람이 광기 운운 했더군요. 작은 교회 곽은득 목사는 고액의 족집게 강사를 데려다가 높은 점수를 받는 일부의 입시 행태와 비교했더군요. 기독교 사상 7월호에서 이현주 목사는 놀이와 노름을 분간해야 한다는 말로 넌즈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일부의 인권운동 하는 분들이 이번 현상의 이면을 제기했다가 네티즌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나도 한때 축구선수가 되려고 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지만 이번 월드컵 현상 앞에서 마음이 별로 상쾌하지 못했습니다. 전국민의 열광에 동참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더불어서 즐거운 일에 굶주려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이웃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락에 불과한 일에 모든 인생을 건다는 건 비극입니다. 월드컵은 함께 모여 공을 차면서 즐겁게 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긴 팀은 진 팀을 격려하고 진 팀은 이긴 팀을 축하해 주면 그만입니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함께 "놀이"에 참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구경하는 사람도 승부보다는 그 놀이가 제공해 주는 즐거움에 참여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놀이가 철저하게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승리의 의미를 여러 계기로 과대포장합니다. 무언가 헛것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4강 아니라 우승 트로피를 검어쥐었다고 해도 정작 중요한 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변하지도 않습니다.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도 역시 그대로입니다. 밤 10시, 11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공부해야만 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상황도 변하지 않습니다. 문화방송국에서는 이번 기회에 지역별 유소년 축구단을 창단하기로 했다면서 국민성금을 모을 작정인가 본데, 메스콤은 늘 이런 식입니다. 포퓰러리즘이란 대중의 뜻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조작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유소년 축구단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전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정착이 우선합니다. 또한 그것의 토대라 할 수 있는 학력간의 소득 격차를 실질적으로 줄여나가는 일들이 우선합니다.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 내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축구를 하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일단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취미와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겠지요. 이제는 더 이상 이벤트성 행사 보다는 삶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나가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기성세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책임이고, 이번 우리 축구 대표선수들은 장한 일을 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200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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