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끝날의 단상

선거권을 갖게 된 이후로 몇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기가 어렵군요. 내가 신학대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는 장충체육관에 모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유신헌법에 따라서 박정희씨를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뽑았으니까요. 오랫동안 선거 없이 지내다가 1987년 민주화 항쟁에 의한 직접선거에서는 양김의 분열로 인해서 노태우씨가 어부지리를 얻었습니다. 92년과 97년에는 차악을 잣대로 삼았습니다. 2002년12월19일, 생전 처음으로 최선을 선택하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는데,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서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저녁 6시 티브이에서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순간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옆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보고있던 두 딸이 이렇게 비꼬듯 말하더군요. "월드컵 때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더니 이번에는 웬일이세요?" 그날 나는 작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선자 확정 발표가 날 때까지 아내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며 설레임으로 티브이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오늘은 2002년 마지막 날입니다. 금년 6월에는 월드컵 4강을 통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로 나같이 나이가 든 사람들도 즐거워할 수 있었으니, 우리에게 참 좋은 한 해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미국이 재를 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앞으로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어떨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만 본다면 안하무인, 점입가경입니다. 어제 아침에 빵으로 식사를 하면서 두 딸들에게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얘들아, 여러 형제들이 있는 가족이 있다고 하자. 그중에 둘째가 친구들과 놀러다니면서 공부도 별로 안 하고, 집에도 늦게 들어오거나 때로는 외박하는 경우도 있단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겠니? 정신 차리게 한다고 대문을 걸어두거나 먹을 것도 주지 않는 방법이 있고, 또는 형제들이 계속해서 따뜻하게 해주고 관심을 기울여주는 방법이 있단다. 북한도 이와 비슷한거야. 그런데 미국은 몽둥이를 들고 겁을 주고 있는 거지." 다행히 노무현 당선자는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돌팔매질이 연못의 개구리에게는 생존문제라는 사실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분은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으로 다행이지요.(2002.12.31)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