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사람들의 대화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주장만 한다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자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인지 모르지만, 그분들의 동창회나 계 모임 같은 자리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가 자기 남편이나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면 그 이야기를 약간 듣는 척 하다가 자기 남편과 자식 이야기에 열을 올립니다. 입담의 능력에 따라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적게 하는 사람이 구별되기는 하지만, 어쨌든지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의 경험이나 틀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석하고 반응할 뿐이지 대화 자체에는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나다 보면 그 자리가 무슨 시장판처럼 시끄러워집니다. 내가 자주 나가는 동네 테니스 모임도 대충 그렇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또는 테니스를 마치고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많은 말들을 하는데, 여기서도 역시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TV의 대담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대화도 약간 격이 다를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가 없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예컨대 주5일 근무제나 의약분업 같은 주제로 대담한다고 합시다. 일단 양측으로 맞선 사람들은 때로는 논리적으로 또는 우격다짐으로 자기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개할 뿐이지 대화의 존재론적인 힘에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양측은 계속 평행선만 달릴 뿐입니다. 그런 토론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따라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는 사람들을 별로 못보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언어가 갖고 있는 존재론적인 진리의 세계를 인정한다면 이렇게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것보다는 언어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우리를 열어놓는 것이 참된 대화가 아닐까요?

설교도 역시 성서와 독자의 대화, 설교자와 청중들의 대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설교 현장에서는 진리가 드러나는 길로서의 대화는 실종되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일방적인 자기 주장만 난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청중들은 그저 구경꾼으로 남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말솜씨나 구경하든지, 거기에 등장하는 예화에만 흥미를 갖습니다. 이러나 이런 흥미도 한 두 번이지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설교가 지루해지고, 그게 아니라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무조건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자기 암시에 빠져버립니다. 설교자는 자기의 주관적인 신앙경험에 빠져들 위험이 많다는 점에서 보다 더 철저하게 자기를 진단해야만 합니다. 너무나 작고 초라한 자기의 작은 경험으로 세계 전체를 재단하지 말고, 오히려 자유와 진리의 영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열어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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