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약간 신학적 훈련이 된 사람의 답변은 아래와 같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다.’ 그 외에 일반적인 신자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각양각색이다.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곳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이다. 예배하는 곳이다.’ 어떤 표현을 통해 말했든지 신자들은 교회를 일종의 조직체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거의 공통된다. 당회, 직원회, 주일학교, 성가대, 남녀 전도회, 구역조직 등 여러 기구로 구성된 조직체를 교회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신자들은 이런 교회의 조직에 깊이 관여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도시의 중대형 교회는 거의 완벽한 조직 체제를 갖추고 있다. 피라미드 형식으로 꽉 짜여 있어서 아주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목회자들도 교회발전을 이런 조직의 확장으로 생각한다. 당회장 밑에 여러 명의 부목사와 남녀 전도사를 두고 교구와 구역을 관리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 목회의 상당 부분이 바로 ‘매니지먼트’(관리)와 연결되어 있다 보니 목사들의 정신건강이 상당히 피폐해져 있다. 말하자면 심방과 행정처리 하는 시간에 비해 공부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인 특성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들은 바로는,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는 그 교회 당회장이 출근할 때 수십 명의 부목사들이 일렬로 도열해서 깍듯이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흡사 대그룹 회장의 출근 모습 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관료적인 냄새가 짙다.
어쨌든지 오늘의 교회는 대기업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교회의 본질에 대한 내적인 성찰은 오간데 없고 조직의 확장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까지는 이런 조직체제로 움직여 나갈 수 있지만 계속적일 수는 없다. 교회가 기업이 아닌 한 조직적 기능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기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당위이고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질문해 보자. ‘교회란 무엇인가?’ 대답은 이와 같다. 교회는 앞서 말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운동’(movement)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치열한 투쟁의 한 가운데 있는 메시야적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교회는 초기부터 이런 움직임, 행동, 참여, 연대 가운데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선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운동으로서의 교회’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수님은 직접 교회를 창설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럴 생각도 없었다. 주변에 열두 명의 사도들이 있었고, 열렬히 따르던 사람들이 대충 삼백 명 가량 되기는 했지만 그들을 모아 어떤 종교단체를 만들지 않으셨다. 한때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런 군중들의 충동에 휩쓸리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만 매달리셨다. 예수님이 선포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종교적 업적이나 열심으로가 아니라 오직 진정한 회개로만 들어갈 수 세계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진정한 회개의 삶으로 들어가라고 채근 내지 운동하는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이고 그런 이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다.
그런데 오늘 현실교회는 운동으로서의 자리보다는 조직으로서의 자리가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교회조직의 확장이나 이름을 내기 위해서 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느 큰 교회가 미자립 교회에 매월 일정액을 지원하면서 대단히 생색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원을 받았으면서도 아직도 자립을 못하는가? 목사가 고생을 덜해서 그렇다. 그런 교회는 도와줄 필요도 없다. 대충 이런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만약 교회를 조직으로가 아니라 운동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교회를 조직으로만 생각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간단히 두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교회간의 배타성 문제다. 조직의 생리상 조직 끼리 경쟁하는 일은 당연하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가 되려고 사생결단식으로 매달리고 큰 교회는 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자비하게 저인망 그물을 쳐놓고 신자들을 끌어간다. 성결교회와 장로교, 감리교와 침례교 등이 자신들의 조직 확대만을 위하여 상대 교파를 격파의 대상으로 까지 여기게 된다. 둘째는 교회의 자유가 상실된다는 점이다. 자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쪽 세력의 말도 들어주어야 하고 저쪽 세력의 말도 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진리를 당당하게 선포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조직은 전혀 필요 없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천상의 교회가 아니라 이 땅에 자리하고 있는 현실교회라면 당연히 조직을 필요로 한다. 사람도 있어야 하고 건물도 있어야 하고, 교회 안의 여러 조직체가 모두 필요하긴 하다. 이런 조직이 있어야만 하나님 나라 운동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려 했던 것은 교회의 본질상 이런 조직 보다는 운동이 상위개념이라는 점이다. 교회 조직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21세기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운동체로서 보다 역동적으로 자기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1997.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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