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사는가?

부자로 살건 가난뱅이로 살건, 혹은 지식인으로 살건 일자 무식쟁이로 살건 모두가 똑같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조건을 갖고 살아가든지 누구나 한번 살다가 떠나야 된다는 점에서 거의 똑같다. 어떤 사람은 짧은 인생을 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천수다 하기도 하지만 그 차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머리카락 하나보다 가볍다. 노벨상을 타고 죽은 사람과 평생 현장 노동자로 살다가 죽은 사람의 차이도 역시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겉으로 볼 때 아무리 큰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는 산다는 점에서 별로 차이가 없다. 이런 차이에 비해 산다는(생명) 사실은 비록 하잘것없이 보이는 존재라 하더라도 우주와 같은 무게의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산다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있다는 것에 집중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 외의 사실에 열중한다. 돈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 마음을 쏟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특히 현대문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문명의 요란하고 솔깃한 유혹에 빠져들게 만들기 때문에 산다는 것 자체는 별로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평생을 다 살아도 허전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남들이 우러러 보거나 자기가 생각할 때도 큰 업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일들을 하지 않으면 살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만들어가고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런 삶의 형태는 우리를 소외시키고 이 소외현상이 다시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한다. 결국 현대인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처럼 살다가 떠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사는 것 자체에 마음을 두고 산다면 얼마든지 존재의 행복과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존재의 터전들이다. 심지어 벌레와 똥도 역시 생명의 세계를 기초하고 있는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런 존재하는 것들과의 존재론적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존재의 기쁨에 참여한 셈이다. 이런 생명의 세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사는 것 보다 더 미련한 일은 세상에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말하기를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와 같은 자본제적 구조가 굳어진 사회 속에서는 돈만이 그럴듯하게 행세하도록 도와주는 것 같긴 하다. 돈이 있어야 넓은 집도 마련하고 자식들 교육도 시키고 여가를 잘 활용할 수도 있다. 돈이 없다면 문화생활을 할 수도 없다. 영화, 연극, 연주회에 가려고 해도, 그리고 좋은 책을 읽으려 해도 역시 돈이 있어야 한다. 돈만 있다면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하면서 멋지게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삶의 현실이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 해도 돈이 없으면 가난하고 추하게 보이고 무능력하게 보이고, 실제로 삶의 여유가 하나도 없이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삶의 깊이를 들여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갖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삶의 내용을 생각해 보자. 우선 문화생활이 늘어나게 되는데,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고, 스포츠를 통해서 삶을 즐기려고 한다. 그런데 분명한 건 이런 즐거운 삶이 반드시 돈을 많이 투자해야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 해도 우리가 직접 바라보는 가을 하늘을 따라갈 수는 없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가로수 잎들은 그 어떤 위대한 예술품 보다 뛰어나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해도 옥수수 밭에 쏟아지는 빗소리나 바닷가 파도 소리를 흉내 낼 수 없다. 이런 황홀한 경험은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밤하늘의 별만 보아도 된다. 십만 원짜리 콘서트에 갈 필요도 없다. 여름철 소나기 후에 하늘에 걸친 무지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나게 비싼 문화생활을 하는 셈이다.
삶이 일종의 신비라서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부자들이 불법적으로라도 서울 부근의 좋은 자리에 별장을 많이 건축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넘쳐나는 정원과 별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비슬산이 우리의 집일 수도 있고 현내벌이 우리의 정원일 수도 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가장 마음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역시 생명과 존재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럴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가 거대한 생명의 유기체에 속해 있는 미세한 개체들이라는 점이다. 신앙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의 근거이신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자들이라는 인식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 세계가 생명의 신비로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들의 귀는 이 세상에 충만해 있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면 살게 된다. 거미줄에 맺힌 아침 이슬방울을 보면서 순식간에 마음이 부요해 질 수 있으며,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이게 바로 세상을 사는 힘이 아닐까? 이것으로 살아갈 때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1997.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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