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상압력

미국은 10월1일자로 한국 자동차시장을 ‘슈퍼 301조’의 우선협상대상국관행(PFCP)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가 의미하는 바는 앞으로 미국이 한국 자동차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모종의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인데, 한국정부의 불공정한 자동차무역 정책 때문에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에서 별로 팔리지 않고 있다는 판단인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이를 경제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일정한 기간 협상을 거친 후 미국이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우리가 상당한 정도의 불이익을 꼼짝없이 당해야 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틀린 말도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전자제품에 대해 대대적인 덤핑조사를 실시한다든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우리 상품의 미국수출을 억제하게 될 것이다. 흡사 골리앗과의 싸움이랄 수 있는 이런 싸움의 결과는 같은 피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 쪽이 훨씬 심각한 후유증을 받게 될 것이다. 수년전 쌀 개방 문제로 한차례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이런 시장개방 요구의 단초는 이미 미국 주도로 성사된 새로운 세계무역조직의 탄생에 있었다. 소위 WTO의 출발이다.
이 조직의 기본원칙은 세계시장의 완전개방에 있다. 모든 나라들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지 말고, 농민들에게도 농사지원금 등의 특혜를 주지 않음으로써 세계무역질서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배제하고 순전히 자유경쟁에만 맡기자는 주장이다. 세계가 거의 같은 시장 권을 형성하게 된 지금, 그런 논리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세계무역의 흐름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모든 나라의 경제를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 주장이 논리적이라 하더라도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선진국의 기업들과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는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기업들을 자유경쟁에만 맡겨놓는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여기서 우리는 미묘한 국제경제질서에 대해 왈가왈부 할 위치가 못되지만 다만 신앙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한번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맞아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는 미국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세계경영의 슈퍼파워인 미국은 우리에게 누군가 말이다. 미국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기독교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모습이다. 미국은 한편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싸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힘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경우에 부당하게 행동했다. 우리는 이 두 모습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정신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를 지향하고 있는데 반하여 미국은 작은 나라의 불행과 손해를 딛고서라도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를 지켜내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불사한다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한창 동서냉전이 극에 달하고 있던 전후 80년대 까지 미국은 중남미의 군사독재를 지원해서 그 나라의 민주화를 억압해 왔다. 대표적으로는 월남전의 참전이다. 월남 사람들을 위한 바람직한 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기준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월남전이었다. 또한 한국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통상압력을 행사한 이번의 조치도 역시 미국의 입장만을 생각한 ‘팍스 아메리카나’ 이념이다.
우리가 미국에 충고할 수 있는 한 마디는 미국이 뿌리하고 있는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영국 국교의 탄압을 피해 새 땅을 향해 메이플라워호를 탄 청교도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애굽이라는 제국으로 부터 해방을 시도한 히브리 노예들과 같다. 애굽의 히브리인들이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힘을 가진 다수가 힘이 약한 소수를 강제적으로 억압한 제국주의적 틀을 거부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끊임없이 해방과 자유를 그 존재론으로 삼는 연습을 해야 한다. 힘으로 작은 나라에 압력을 가하는 제국으로서가 아니라 그런 힘의 집중을 타파하는 엑서더스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은 미국에게 충고하기 전에 우선 우리의 자세가 떳떳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들 중에는 미국을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미국 것이라면 모든 게 좋다는 식이다. 육이오 전쟁 후에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많이 가져다 준 사람들이기 때문인지, 지금도 수만 명의 미군을 주둔시켜서 이 나라를 지켜주는 게 감사하기 때문인지 거의 일방적으로 좋아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미국 선교사들에게 정신적으로 진 빚이 많아서인지 미국을 향해 일편단심이다. 심지어는 미국이 잘살게 된 이유가 예수를 잘 믿어서라고 떠벌릴 정도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일본이 잘 사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지 모르겠다. 정부나 교육책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국어 보다 영어를 더 중요하게 가르치는 나라가 세상 천지에 몇이나 있을까?
어쨌든지 우리는 미국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마음씨 좋은 엉클 톰으로서만이 아니라 인정사정없이 쳐부수는 람보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이 사랑과 평화와 정의와 박애라는 기독교 정신을 드러낼 때는 박수를 쳐야하지만, 세계 초강국으로서 교만할 때는 의연하게 대처해야한다. 이런 의연한 자세를 가질 때 미국의 그 어떤 통상압력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997.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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