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위의 제목은 스웨덴의 동양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여사가 쓴 책(녹색평론사 출판)의 이름이다. 이 책은 그녀가 동양 언어학과의 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1975년 티베트 불교문화에 뿌리를 둔 라다크를 방문한 후 그곳에서 16년간 그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깨닫게 된 현대 인류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의 본질과 그 대안을 모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그녀는 고대의 전통적인 삶이야말로 오늘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일종의 대안적 선택이라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우선 라다크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책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들여다보기로 하자.
라다크인들은 티베트 고원의 고대문화를 지금 까지 지켜오고 있는 13만 명가량의 소수족이다. 그들은 전형적인 고지대에서 농축을 생활수단으로 하고 있다. 농사가 다 그렇지만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는 그들은 완전히 땅과 함께 살아간다. 모든 생활방식이 농사와 연결되어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 능력에 맞도록 농사를 지며 살아간다. 모든 가족이 비슷한 정도의 땅을 갖고 있으며 더 많이 가지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자기 식구들이 먹고 살만큼만 갖고 살기 때문에 소유를 늘리려는 과욕도 갖지 않는다. 농사일도 우리의 옛날 방식처럼 야크와 암소의 교배종인 ‘조’라는 짐승의 도움을 받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사람이 직접 한다. 그런데 이들은 농사를 놀이처럼 생각한다. 자연환경이 어느 정도 뒷밭참이 됐겠지만 시간에 쫓기듯이 몰아가지 않고 쉬엄쉬엄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축제도 열고, 술과 차를 자주 마시고, 서로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에 인색하지가 않다.
라다크 마을에는 우리 식의 싸움이 없다고 한다. 몸으로 치고 박는 싸움은 물론이고 말싸움도 거의 없다. 있다고 해봐야 약간의 의견 차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웃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함께 사는 형제로 생각한다. 만약 땅의 경계 같은 문제로 의견이 나누일 때는 제 삼자가 중재자 노릇을 한다. 판사나 면장 등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아무나 중재나 역할을 한다. 손위 사람일 수도 있고 이웃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도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심지어 다섯 살짜리가 그런 중재를 맡는 걸 헬레나는 보았다고 한다. 인간사회에서 과연 그럴 수 있는가 하고 이상스럽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라다크는 그런 종족이었다. 이웃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1970년대에 현대교육 방식이 라다크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자를 깨쳤다는 점에서는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흙과 함께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에게 매우 복잡한 현대기술은 별로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그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로 부터 삶 자체를 배웠다. 태어나면서 부터 보고 듣는 것이 모두 배움의 과정이었다. 어떻게 농사짓고, 베를 짜고, 아기를 낳고, 집을 짓는지 삶의 과정으로 배웠다. 굳이 심리학이나 역사나 윤리, 공업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는 말이다.
라다크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2,3백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발전개념이 없는 이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한심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무용하게 보내서야 되겠는가 하고 책망할 만도 하다. 발전강박에 빠져있는 오늘 우리의 가치판단에 의하면 그들은 아주 무력한 사람들, 미개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가 그들 보다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솔직한 답변은 ‘확신할 수 없다.’이다. 확신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보다 우리가 훨씬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체감과 비교할 때 분명하다.
우리는 점점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쪽으로 줄달음 치고 있는지 모른다. 발전과 개발이란 미명하에 산과 강을 병들게 하고, 자본주의적 힘을 너무 의지한 결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비인간적인 갈등과 경쟁만 난무하게 되었고, 소유와 소비에 맛이 들여져서 삶 자체 보다는 생산성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화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도 정신적인 황폐화 속에 빠져들고 있다. 매일 자동차 사고, 살인과 자살과 절도가 끊이지 않으며, 같은 민족인 남북한이 총칼을 들이대고 다투고, 증시와 환율 때문에 온 국민이 초조해 하고, 대통령 선거를 마치 전쟁 치르듯 하고, 청소년들이 학교 공부에 지쳐버렸고, 심지어는 동네 사람들 끼지 주차문제로 난투극을 벌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산다. 이건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소득이 하늘 끝까지 높아진다 해도 행복할 수 없는 법이다.
헬레나 여사의 보고에 따르면 많은 관광객들과 인도정부의 현대화 정책 때문에 라다크의 귀한 전통과 가치가 훼손당하는 중이라고 한다. “낭비도 오염도 없는 사회, 범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십대 소년이 극히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순하고 다정스럽게 대하는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조짐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 인류가 다시 돌아가야 할 그 ‘오래된 미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말이다. 그 잘난 개발, 산업화,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199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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