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지렁이


지렁이는 촉감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박쥐는 음파로 인식하고,
인간은 시청각 모두로 세계를 인식한다.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생명체도
이 세계 어딘가에 많을 것이다.
혹시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또 다른 방식의 인식체계를 갖고 있을 것이다.
소리만 해도 개가 포착하는 소리의 영역과
인간이 감각하는 영역은 완전히 다르다.
식물들도 역시 이 세계를 인식할지 모른다.
다만 우리 인간과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인식 메커니즘을 모를 뿐이다.
어쩌면 아침 이슬과 나비도 역시
서로를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우리의 발길에 체이는 돌멩이 하나도
나름으로 이 지구와 소통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지구 안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과 친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인간의 세계 인식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우리 앞에 보이는 것들이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쩌면 그것은 그런 현상 너머에
전혀 다른 실체를 안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렁이는 자기의 촉감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만을,
그 세계만을 참된 것으로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훨씬 풍부한 세계가 실재하는 것처럼
지금 인간이 인식하는 이 세계도 역시
지렁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렁이와 인간은 다르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렁이와 인간은 다르다.
그러나 궁극적인 것 앞에 비추어보면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저 인식의 세계가 조금 넓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우리 인간에게는 예술, 문학, 종교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그것도 역시 절대적인 것 앞에서는 잠정적일 뿐이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이 세계가
별로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라는 대명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건 다만 내가 그렇게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있을 뿐인데,
내 경험이라는 게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면
그 대상도 역시 내 경험에 들어온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다시 지렁이 이이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여기 큰 항아리가 있다고 하자.
그 안에 지렁이가 살고 있다.
이 지렁이에게는 매끄러운 촉감으로 와 닿는 항아리가 우주이지만
그것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나에게는 단지 여러 물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촉감으로 느끼는 지렁이의 세계인식과
그것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나의 세계인식 중에서
어느 쪽이 진리에 가까울까?
이건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 지렁이의 상태를 나에게 비교한다면
혹시 나도 항아리 안에 들어가 있는 지렁이처럼
이 세계를 그런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오히려 신앙을 허무는 게 아닐까?
글쎄, 그런 것은 접어두고,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인 부활의 세계는,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예루살렘은
항아리 안에서 살아가는 지렁이처럼
부분적인 인식론에 갇혀 있는 우리가
그 어떤 방식으로도 표상할 수 없는 세계이다.
얼굴을 맞대어 보듯이 모든 것들의 실체가,
은폐되었던 세계의 실체가 드러나는 세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종말에 일어나게 될 그 세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으며,
그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배타적인 권한에 속한 문제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나라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된 나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역사에 선취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참된 생명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우리의 잠정적인 인식론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욕망을 투사시켜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없다.
보상을 받는다거나
황금면류관을 받는다거나
심지어는 좋은 주택에서 산다는 생각은,
더구나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은
순박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것을 상대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나라가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희망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공연히 지렁이와 같은 좁은 인식으로
그 나라를 훼손시키지 않는 게 마땅한 게 아닐는지.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