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는 인간

내가 자란 환경은 철저하게 육체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우선 아버님이 함석세공업자이셨고, 큰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강원도에서 농사를 졌고, 막내 작은 아버님도 서울에서 잠시 목재소를 하기도 했지만 주로 함석 세공일을 하셨다.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형님도 역시 아버님을 따라서 어려서 부터 함석 세공일을 하다가 건축업에 손을 댔고 이제는 건축 현장에서 잡일을 하신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사람들은 대개 이런 일을 하던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목수, 벽돌 쌓는 사람, 페인트업자, 대장장이, 자전거 수선공 등등, 대개 이런 사람들이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옆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보아온 이런 노동자들의 삶은 여러 면에서 힘들었다.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사는데 급급할 뿐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주택 보급률이 턱없이 낮았던 6,70년대의 그들은 십년이 지나도 월세나 전셋집을 면치 못했다.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이라서 병이 들어도 병을 키워서 병원에 갔다. 자신들이 받는 고통이나 불이익도 심각했지만 그게 대를 잇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비극적이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 탓에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런 노동자 자녀들은,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개 학교 교육을 대충 받고 자기 아버지처럼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된다. 왜냐하면 중, 상류층 자녀들과의 경쟁에서 버텨낼 자신도 없으려니와 가능한대로 빨리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가정 형편이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 하층민들을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없었던 그 당시에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버텨내야 할 생존의 무게는 거의 폭력적이었다.
노동자들의 삶이 계속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구조적 환경 탓도 있었지만, 노동자들 스스로의 무책임한 삶의 태도에도 있었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힘든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술을 참으로 많이 마셨다. 하루 종일 피땀 흘리며 일한 다음, 피로를 풀겸 적당하게 막걸리나 한두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셔댔다. 평소 영양공급도 별로 좋지 않은 그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대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빈속에 깡소주를 몇 병씩 마시기도 했는데, 건강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 아버님도 선천적으로 강인한 체력을 갖고 계셨지만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내 기억에 평생 ‘노루모’ 같은 위장약을 드셨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분들이 자기 몸을 생각지도 않고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아무리 일을 해봐야 생활이 별로 피지도 않고,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 봐도 재미를 느낄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친구들과 대폿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게 된다. 그렇지만 만취된 다음 날은 일을 나가지도 못하는 등 무절제한 생활의 반복으로 인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고 따라서 수입도 줄어들고, 가정 분위기도 불안하게 되어 결국 모든 이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그런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도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좀더 심각하게 생각한 이들은 조금씩이나마 삶의 조건들을 향상시켜 나갔다. 없는 가운데서도 아이들 교육에 투자하고 주거문제도 조금씩 해결해 나갔다. 결국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혹은 어느 정도 바꿔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막노동으로 호구지책을 삼았던 이들의 머릿속에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숙이 각인되게 마련이다. 노동은 굶어죽지 않기 위한 최후수단쯤으로 생각된다. 귀족들을 위해 기계처럼 노동했던 옛날의 노예 와 별 다르지 않은 자신의 신세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점점 무력감 속에 빠져들게 된다. 다만 자기 자식들만은 이런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대학공부를 시키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오늘에도 마찬가지다. 의사, 변호사, 판사, 교수, 기업가, 혹은 연예인이나 인기 운동선수 등이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직업이 인기가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며 또한 남이 좋게 보아준다는 것이다.
그런대 곰곰이 생각해보면 변호사와 청소부의 일 사이에는 별로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남의 어려운 일을 돌봐 준다는 점에서 똑같다. 변호사는 남의 법적인 문제점들을, 청소부는 남의 생활쓰레기를 처리해 준다는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대도 수입 면에서는 하늘과 땅이다. 왜 그럴까? 청소부의 일이 변호사의 일 보다 결코 못한 게 없는데도 네다섯 배에서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변호사들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했지만 청소부들은 그런 학력이나 자격증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 자체의 가치를 높고 낮게 평가한다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가당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막노동이 하찮은 것처럼 보여도 그런 것이 세상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컴퓨터와 기계 시스템으로 완전 자동화된 사회가 온다 하더라도 역시 막노동군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그리고 반대급부라는 경제논리로 볼 때 작은 일 같지만 이런 노동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본질이다. 지난 5월1일은 세계노동절 107주년이었는데, 점점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는 오늘 다시 한 번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됨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 같다. <1997.5.4.>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