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사회

몇 달 동안 우리 사회를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친 한보사태는 정경유착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보 경영인들과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검은 거래를 하다가 나라 살림살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사고를 쳤다. 그런대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뇌물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그들 집단의 개인적인 부도덕성이라기보다는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즉 고비용 정치구조에 있다는 지적이 일반적 시각이다. 국회의원만 하더라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지만 지구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만도 한 달에 일이천만 원씩의 비용이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 계보를 거느리려면 뭉텅이 돈이 수시로 나가게 되고, 선거 때가 되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지출되기 때문에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보사태야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런대로 추슬러 나갈 수 있지만, 이런 고비용 구조가 정치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염려스럽다.
잘 알려진 대로 ‘고비용 저효율’이 우리 기업운영의 현실이다. 필요 없는 부분에 지출이 많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인적구성에서 임원이나 최고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높다고 한다. 그만큼 운영비가 많이 든다는 말이다. 이를 심각하게 깨닫게 된 우리 기업들이 요즘 간부사원을 줄여나가는 것 같다. 인적 구성으로 인한 비효율만이 아니라 각종 유관 관공서에 절기 때마다 금일봉을 내야하고, 웬만한 기업체에는 술상무가 있을 정도니까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살림살이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고비용 구조는 교육에 있다. 여러 번 매스컴에서 지적되기도 했지만 사교육비가 공교육비에 버금갈 정도다. 한달 생활비의 30% 이상을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세계에 어디 있을까? 만약 자녀들 중에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 각각 한명씩 있다고 한다면 한 달 수입 중에 거의 6,70%를 교육비로 지출하게 될 것이다. 그런 교육비 말고도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은 선생님께 촌지를 드리거나 학교물건을 구입해 간다든가 해서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한다. 돈이 있는 집이야 그런대로 꾸려나가겠지만 없는 집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산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이들 과외를 시키기 위해서 적금을 해약하거나 집을 팔고 전셋집으로 옮기거나 그것도 안 되면 파출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니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아이들 교육비를 대느라 우리 모두는 자신을 학대하고 파괴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하고, 문제로 느낀다 하더라도 바꿔보아야겠다는 생각들을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런 고비용 교육제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무리 GNP가 1만 달러에 올라섰다 해도 실제적인 소득은 그 절반 밖에 안 되는 셈이다.
고비용 구조는 경조사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나 엄청나다. 구라파에서는 일반적으로 가족과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이 교회당에 모여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르지만, 우리는 사돈에 팔촌 까지 모두 불러 모아 놓고, 불필요한 일들에 비용을 많이 쓴다. 시장 바닥 같은 결혼식장에서 시간에 쫓기듯이 해치우고 마는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관료만이 아니라 드레스 값, 사진 값, 신부미용 값 등등,  대단하다. 요즘은 결혼식 전날 야외촬영 까지 한다고 하는데, 아마 모두들 모델이 되고 싶은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일이다. 결혼하는 당사자들이나 가족만이 힘든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힘에 부치도록 그런 일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결혼시즌만 되면 주말 마다 대 여섯 건씩 청첩장이 날아들어 하루 종일 축의금을 전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고 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비용이 큰 부담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고쳐질 기미가 없다.
우리 사회의 고비용은 또 있다. 손님을 접대하면서도 상다리가 부러지게 치려야만 체면이 선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우리는 손님을 청할 때 반드시 식사를 준비하게 된다. 차나 한잔 대접하거나 아니면 있는 대로 함께 먹지 못하고 정성껏 준비한다고 하지만 지나칠 때가 많다. 손님과의 만남, 그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서 준비해만 무언가 인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고비용이다.
여행에도 역시 고비용이 적용된다. 조금만 움직여도 돈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심하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가족 나들이를 나갔는데, 대구 시내의 유원지나 오락시설을 찾은 경우에는 2십만 원, 경주나 포항 등지로 나가 1박 할 경우에는 3십만 원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그 비용에는 어린이들 선물비도 끼어 있었는데, 싸게는 5,6만원, 비싸게는 2,3십만 원짜리 선물을 했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다 하면서도 우리는 이런 잠간의 여흥을 위해서 많은 비용을 쓴다. 일부러 누가 그렇게 많은 돈을 쓰겠는가. 최소한의 체면치례로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우리는 열심히 돈을 번다. 그동안 세계가 놀랄 정도로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벌었고 지금도 역시 어느 정도는 돈을 많이 번다. 문제는 그걸 모두 써버린다는데 있다. 그것도 필요 없는 곳에다 말이다. 모든 걸 포기하지 않는 한 이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고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런 고비용 구조가 결국 우리 삶을 저효율로 몰아간다는 사실이다. <199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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