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김영삼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대통령 취임 초기에 지지율 8,90%로 잘 나가던 그가 이제 지지율 한 자리 숫자에 까지 떨어지게 된 이유는 뜻하지 않게 각종 사고가 너무 많았고 경제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으며 그의 개혁정책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던 이들의 불만이 누적된 까닭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한보사태와 아들 김현철, 그리고 그걸 연결고리로 하는 대선자금문제가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는 데 있다. 김 대통령이 잡아넣은 전직 두 대통령과 다른 게 뭐냐, 당신 아들도 똑같이 해 처먹은 게 아니냐, 당신도 불법으로 선거자금을 끌어 모았고 어쩌면 지금도 숨겨놓은 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대통령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정서가 야당의 흠집내기, 숨죽이고 있던 보수세력의 강한 도전으로 인해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그가 집권 초기에 이룩해놓은 각종 개혁입법들 조차 평가 절하되고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분개하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들 김현철 씨의 국정개입과 뇌물수수 건이다. 그에 대한 공판이 앞으로 진행되면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겠지만 검찰의 공소내용만으로 보면 백억 원 이상의 자금을 사용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쓰고 남은 80억 원 가량을 국가에 헌납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안기부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고 국가 중요 기밀을 빼냈고 민자당을 통해 자기 사람을 국회의원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일반 정치인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국민들은 이 책임을 아버지인 김 대통령에게 돌린다. 아들의 불법을 아버지가 몰랐겠는가, 하는 의아심을 지우지 못한다.
또 하나는 대선자금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법정 한도액을 초과해 사용했을 경우에 사법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한보로 부터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탓에 김영삼 대통령이 한보에 특혜 대출을 하게했다는 야당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의 정치적 생명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사실 대선자금문제는 야당도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정치의 멍에며 원죄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한 두 마디로 정리해 버릴 수는 없다. 금년 상반기 내도록 지루하게 밀고 당기는 대선자금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인들, 즉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이나 지방정부 선출직 인사들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정치인들이 선거자금에 관한한 범죄자들이라는 점이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비 내역을 보고하는데, 어느 한 사람도 초과 지출한 것으로 내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이나 선거관리위원들이나, 우리 일반 국민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래도 형식적으로 보고하고 보고받는다. 아주 소문이 나쁘게 나거나, 선거원이 조직을 이탈해서 양심 고백하는 경우에 한하여 수사를 하게 되고, 아주 드물게 사법처리를 받을 뿐이다.
물론 아주 적은 예외이긴 하지만 법정한도 내에서 선거를 치루는 이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대개 훨씬 많은 돈을 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선거풍토 자체가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야 말할 것도 없으며,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순전히 돈으로 치러진다. 선거운동원들을 일당으로 고용해야 하고 이곳저곳 인사를 할 때마다 봉투를 내밀어야 한다. 여당은 여당대로 조직선거를 활발히 움직이기 위해 돈을 물 쓰듯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바람선거를 일으키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들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씨 모두 대중집회를 열거나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선거는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돈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돈 선거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정당이라는 게 어떤 이념을 갖고 있지 않고 단순히 한 두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 별로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될 때 선택의 기준은 대개 약간이라도 자신과 연줄이 닿는 사람에게 쏠리게 된다. 예컨대 어떤 후보가 만들어 배포한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았을 경우, 이 사람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시계의 주인에게 표를 준다. 고무신을 받고서 투표하던 옛날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직간접으로 뒷돈과 연결된 선거풍토는 여전하다.
더 이상 선거자금 문제로 시끄러워지지 않으려면 우리의 정당이 우선 분명한 이념을 가져야 한다. 우리 정당들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처럼, 나라에 따라 약간 씩 차이가 있지만, 우파와 좌파로 나뉘게 된다면 돈의 영향을 훨씬 적게 받고 투표를 할 것이다.
확신하건데, 선거자금에 관한한 여야 할 것 없이 우리 모든 정치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 사실을 우리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우리 국민도 역시 공범이다. 지금 이 나라의 여론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대선자금을 공개하라고 밀어붙이고 있다. 과연 공개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일로 덮어두고 고비용 정치구조를 고치는 것이 옳은가? 복음서에 있는 대로, 우리는 지금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들고 있는 사람들처럼 흥분해 있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누가 선거자금의 원죄로 부터 자유로운가? <1997.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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