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하늘에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눈여겨 본 사람이면 누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주먹만 한 눈송이를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맞으며 밤길을 걸어본 사람은 흡사 꿈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칼날 소리 내는 바람도 좋고 봄날 들판에 솟아오르는 아지랑이도 좋다. 요즘처럼 장마철에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도 좋다. 모두 다 좋다. 모든 게 이 지구의 숨결이다. 거칠어도 좋고 부드러워도 좋다. 그 모든 변화, 그 모든 자연의 숨결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해 준다.
그중에서도 비가 주는 느낌은 유별나다. 빗소리가 모든 세상의 요란스러움을 잠재우기 때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빗소리는 그 어떤 위대한 작곡가가 작곡한 것 보다 훨씬 멋진 음악이다. 양철지붕을 때릴 때, 활엽수 나뭇잎을 때릴 때, 아스팔트를 때릴 때, 잔디에 내릴 때, 혹은 호수 위에 내릴 때, 이런 서로 다른 소리가 멋지다. 약간 문학적으로 해석해서, 비는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빗줄기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준다. 하늘을 남자라 하고 땅을 여자라 한다면 비는 남녀의 사랑이기도 한다. 그래서 비오는 날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한 것일까?
비는 땅위의 물이나 바닷물이 햇빛에 의해 증발되어 구름 형태로 공중에 떠 있다가 대기의 불안정으로 물이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물리화학적 현상이다. 지금 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다른 행성에는 비가 없다. 금성에도 화성에도 비는 없다. 물론 물이 없으니까 비도 없겠지만, 비는 지구의 생태순환이 만들어낸 신기한 현상이란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이런 비를 우리가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며 행복이다. 지구의 어떤 지역에서는 일 년이 다 가도록 한번이나 두 번 밖에 비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한 번도 비가 오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삼천리 반도에는 비가 많다. 유럽처럼 자주 내리지는 않지만 장마철에는 넘치게 많이 내린다. 홍수로 인해 피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가 많은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다.
내가 어렸을 때는 비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 보다 훨씬 자주 비가 온 것 같은데, 비가 오는 아침 등굣길은 엄청 재미났다. 받쳐 들고 있는 우산에 타닥거리며 두드려대는 빗소리가 재미있었고, 장화를 신고 길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거침없이 걸어가는 기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걸어가면서 우산을 빙빙 돌리면 옆 친구들에게 빗물이 튀기게 되는데, 서로 많이 돌리려고 애를 썼다. 이런 우산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주 가난하거나 형제가 여럿이면 자기에게 올 우산이 없어서 친구들 옆에 붙어서 끼어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온 몸으로 비를 맞고 걸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은 비가 많이 오기를 고대했다. 비가 충분히 온 다음 날 우리는 여지없이 깡통을 하나씩 들고 개울가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삼태기 같이 생긴 그물을 들고 가든지 아니면 빈손으로 갔다. 물풀들이 욱어져 고기가 숨어있을 법한 구석진 곳을 발로 후비다가 재빠르게 그물로 훑으면 제법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잡혔다. 붕어, 가물치, 메기, 미꾸라지 등이었다. 그물이 없을 때는 맨손으로 잡기도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손놀림이 기민해야만 했다. 양손을 적당하게 펼친 다음 차츰 좁혀오면서 손바닥의 감촉으로 고기를 싸잡는 방법이었다. 손바닥을 스치는 붕어의 촉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해서 잡은 고기는 그날 저녁 반찬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강에 홍수가 나면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천호동에서는 볼거리가 많아진다. 지금은 번화가가 된 잠실, 올림픽 공원 지역은 한강이 범람해서 온통 물 천지가 된다. 노도처럼 흘러가는 거대한 흙탕물은 보기만 해도 두려웠다. 한강 상류에서 간장 된장 항아리, 돼지, 책상, 수박, 참외 같은 생활용품이나 잡동사니들이 수없이 떠내려 왔다. 어른들은 철사 고리를 묶은 장대로 그걸 건져내려고 야단들이었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걸 구경했다. 어떤 때는 나무기둥을 타고 사람이 떠내려 오는 걸 구해내기도 했다. 텔레비전도 없이 놀이를 찾아야 했던 우리에게 그런 홍수구경은 기가 막힌 놀이였다.
장대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날 어머니는 특별요리를 하셨다. 빈대떡과 손칼국수다. 빈대떡은 녹두가 들어가야 제 맛이지만 가난했던 우리 집에서는 겨우 밀가루로 만들었다. 물을 많이 넣은 밀가루 반죽에다가 풋고추나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다가 구어내면 감칠맛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와 누님이 구워내기가 무섭게 먹어치웠다. 어느 정도 허기가 져야 어른들 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손칼국수는 좀더 기술이 필요했다. 일단 반죽 자체가 힘들었다. 너무 되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질게 해도 안 된다. 약간 된듯하면서도 눅진눅진할 정도로 반죽을 해야 하는데, 반죽부터 소금을 넣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다된 밀가루 반죽을 어른 주먹만 한 덩어리로 떼어내서 밀대로 여러 차례 밀어야 한다. 전용밀대가 없으면 그 당시 이불보를 두드려 펴던 다듬잇방망이를 대신 쓰면 된다. 마른 밀가루를 적당하게 뿌리면서 충분히 밀어대면 둥그런 보자기처럼 된다. 그걸 여러 겹으로 접어서 칼로 쓸어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손칼국수는 역시 국물이 제 맛을 내야 된다. 대개는 멸치로 맛을 냈다. 멸치국물에다가 감자를 썰어 넣고, 마지막으로 국수를 넣고 한번 끓여내면 구수한 손칼국수가 된다. 이 맛이 별미였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삼십여 전년 전 어머니가 만든 빈대떡과 손칼국수 맛이 더 그리워진다. <199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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