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만약 지구가 태양열을 받지 못한다면, 혹은 지금 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면 온통 얼음 덩어리로 가득하게 되고, 반대로 태양에 가까이 가서 훨씬 많은 태양열을 받아야만 한다면 사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다행스럽게도 적당한 정도의 열을 받아 생물이 살아가기에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게 됐다. 지구가 처음부터 이런 환경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아주 초기에는 불덩어리였으며, 어느 때 부터인가 식어서 생물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여러 번 빙하기를 맞았다. 이런 빙하기에 지구에 살고 있던 대단히 많은 생물이 죽었다. 적은 수의 생명체가 겨우 열대지방에서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구에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빙하기와 빙하기 그 사이에 살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빙하기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아직은 최적의 조건 가운데 놓여 있다. 우리의 후손들은 아마 그런 빙하기에도 생존할 수 있는 과학문명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지구에는 지구를 덮었던 빙하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남. 북극이나 히말라야 산맥, 알프스 산맥 등에 있는 만년설의 굳어진 얼음덩어리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물론 지금도 낮은 기온으로 인해 내린 눈이 녹지 않거나 물이 얼어서 빙하를 만들어가기도 하지만, 2만년 쯤 전의 빙하기에 만들어진 빙하가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빙하들은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약간 씩 녹아내리고, 온도가 낮아지면 더 얼어붙는다.
남극대륙에 있는 빙하는 그 넓이가 자그마치 11,280만 평방킬로미터이며 두께가 3,700m에 이른다. 그린란드에는 160만 평방킬로미터의 넓이에 최대 두께가 3,300m나 되는 빙하로 뒤덮여 있다. 이런 빙하들을 대륙빙하(大陸氷河)라고 한다. 반면에 곡빙하(谷氷河)는 높은 산의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 빙하로서 알프스, 로키, 안데스, 히말라야 등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곡빙하는 남극대륙의 버드모아 빙하로서 길이 192km, 너비 40km에 두께가 300-900m에 달한다. 지구 전 지역의 크고 작은 이런 빙하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약 1억5천만 평방킬로미터로서 전체 육지의 10% 정도라고 한다. 만약 모든 빙하가 녹는다고 가정하면 해수면이 60m나 상승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상당히 많은 도시들이 물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가 지난 7월2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알레스카 주 남동부에 위치한 베링 빙하의 130 평방킬로미터가 금세기 동안 줄어들었다고 한다. 베링빙하의 녹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으며, 90년대 초 부터는 일부 지역의 경우 연간 1km 씩 줄어들었다. 베링빙하가 이렇게 빨리 녹아내리는 이유는 석유, 가스,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초래된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이번 탐험조사반 반장인 스티브 소여는 “이미 발견돼 있는 세계의 현존 석유 및 가스, 석탄 매장량의 4분의 1 정도만 태우더라도 재앙적인 수준의 해수면 상승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화석연료를 더 발굴하는 데에 수십억 달러를 소비하는 것은 정말로 무책임 한 일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높아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육지의 몇 %가 줄어든다는 산술적인 계산의 문제만이 아니라 거의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생태학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일단 식량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곡창지대는 대개 해수면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해수면의 상승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바다의 면적이 훨씬 늘어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그 결과로 인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기후의 변화를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해안선의 급격한 파괴로 인해 거의 모든 갯벌이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될 것이며, 이로 인한 생태계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지금도 홍수가 나면 유럽의 강들이 자주 범람하는데, 해수면이 올라가면 작은 홍수로도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이 범람하게 될 것이다.
빙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이 지구의 생태순환에 필수불가결의 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알프스의 빙하는 유럽을 옥토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알프스 빙하의 녹아내리는 물이 유럽을 휘돌며 호수도 만들고, 강이나 운하의 물을 대기도 한다. 남, 북극의 빙하는 지구의 열기를 적당하게 식혀주기도 하는 등 역할이 많다.
지구는 어느 모로 보나 매우 섬세한 생태학적 원리를 갖고 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 홍수도 있어야 하고, 가뭄도 있어야 하고, 강과 호수, 사막과 갯벌, 여름과 겨울, 열대와 한대, 지렁이, 고래, 여우, 독수리, 모기 등, 생명체와 비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사물이 제 각기 지구라는 생태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 중의 한 요소인 인간도 이런 생태적 순환에 적응해서 살아가면 그만이다. 아니, 그게 최선이다.
그런대 문제는 지구 안에 있는 사물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이런 자연의 순환을 강제로 끊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충분한 환경평가 없이 야산을 밀어내고 골프장을 만들거나, 댐을 막고, 간척사업을 한다. 편리하다고 해서 땅속의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 흥청망청 쓴다. 야생동물들이 살아야 할 산 속 까지 빼앗아 별장을 짓고 카페를 짓는다. 이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빙하 까지 병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우리 인간은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의 산실인 지구를 회생불능의 불구자로 만들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199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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