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의 죽음

지난 8월31일 새벽 영국 찰스 왕세자빈인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6일에 거행된 장례식에서 절정을 이룬 애도의 소용돌이가 기이할 정도로 일주일 동안 전 세계를 떠들썩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상태에 있던 다이애나는 새 애인인 이집트 출신 대부호 도디 알 파예드와 함께 프랑스 남부 생 트로페즈에 있는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30일 오후 파리에 도착한 후 리튼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리튼 호텔 전속 운전수가 운전하는 벤츠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가는 도중 파파라초(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 기자들)들을 따돌리기 위해 고속으로 세느 강변로를 달리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지난 81년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찰스 왕세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이후 16년 동안 여러 모양으로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다이애나는 마지막 가는 순간 까지, 정말 참혹한 일이었지만,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극적인 장면을 보여준 셈이다. 그녀는 영국 사람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애정을 받고 있었다. 이혼녀인 그녀는 가는 곳 마다 사랑과 존경과 연민을 자아냈다. 그렇게 용모가 빼어나지는 않았지만 약간 수줍은 듯한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 것 같다. 그녀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은 그때그때 마다 전 세계 패션계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은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영국 사람들의 거국적 추모행렬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클린튼 대통령,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 캐나다 크레티앵 총리,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등 많은 국가영수들이 다이애나의 죽음 앞에서 깊은 조의를 표했다. 캐나다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공식적인 생활에 있어서나 개인적 생활에 있어서나 그녀의 조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헌한 인물이다.” 테레사 수녀는 “다이애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세계적 스타 마이클 잭슨 같은 이는 다이애나의 갑작스런 죽음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벨기에에서 개최하려던 콘서트를 취소하기 까지 했다. 영국 BBC 방송은 31일 부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검은 넥타이 차림의 뉴스 담당자가 테레사 수녀를 비롯한 세계 유명 인사들의 애도 성명을 등을 전하면서 그녀에 관한 뉴스방송을 계속했다고 한다. 미국의 야구장과 테니스장에서는 다이애나 죽음을 애도하는 묵념을 드린 후 게임이 시작됐다. 우리 동양의 윤리적 잣대로 볼 때, 비록 이혼녀였지만 왕세손의 어머니가 외간 남자와 해외에서 밀애를 즐기다 고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죽어 싸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한데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캔들일 수도 있는 그런 죽음 까지 일종의 ‘신화’로 만들 수 있는 다이애나의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일단 이것은 여전히 영국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 예컨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그 뿌리를 영국에 두고 있다. 그 외에도 영연방에 속한 나라는 참으로 많다. 영국이 식민지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는지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까지 했겠는가. 특히 전 세계의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초일류를 걷고 있는 미국은 거의 영국과 비슷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처음 미국의 시작이 영국에서 건너간 퓨리턴(청교도)들이었다는 역사적 배경만이 아니라 현재도 미국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층이 바로 영국계라는 점에서도 이 두 나라를 나누어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미국이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갖는 슬픔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으며, 미국의 이런 태도가 온 세계로 하여금 다이애나의 죽음에 휩쓸려 들어가게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의 힘만으로 다이애나의 신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이애나라는 여자가 갖고 있는 특별한 성품 내지 성격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다이애나는 영국 왕실의 권위 안에 안주하지 않고 서민적인 삶의 자세를 꾸준히 보여주었다. 다이애나는 비록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스스로는 유치원 보모 출신이었다. 그녀가 신데렐라처럼 영국 왕세자빈이 된 다음에도 여전히 서민적인 모습을 버리지 않은 것이 영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호감을 샀고, 그것이 바로 심리적인 동일시 현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영국왕실 가족으로서 가장 적극적으로 세계평화운동에 참여했다. 단순히 왕실의 다소곳한 세자빈이거나 아니면 교만한 세자빈이 아니라 세계 고통을 막아보려는 인간애적인 용기를 가진 세자빈이라는 점이 높이 부각된 것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그녀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했는데, 특히 어려운 층을 위해서 일했다. “고통 받고 있는 전 세계 아동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일관되고 분명한 목소리가 침묵하게 됐다.”는 유엔 사무총장의 말이나, “에이즈에 감염된 아프리카 아이들을 포함해, 실로 전세계의 전쟁고아와 지뢰희생자들, 병자와 약자들을 위한 사절이었다.”는 만델라의 말을 들어봐도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번 휴가를 끝내면 1일 부터 시작되는 대인지뢰 금지 촉구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결국 다이애나는 세자빈이라는 위치, 혹은 세손의 어머니라는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는 높은 삶의 가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우리와는 너무나 먼 나라 일이지만 , 사슴처럼 슬픈 눈을 가졌던 다이애나의 명복을 중심으로 빈다. <19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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