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와 인간구원

자기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일란성 쌍둥이를 분간한다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옷이라도 같은 걸 입는 경우에는 아무리 세밀히 살펴보아도 그 애가 그 애가 같아서 이름을 바꿔 부를 때가 많다. 간혹 학교에서도 그런 일란성 쌍둥이 자매를 분간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쌍둥이 언니가 숙제를 해오지 않았는데 동생이 야단을 맞는다거나, 공부를 못하는 언니를 대신해서 공부 잘하는 동생이 대신 시험을 쳐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남편이 쌍둥이일 경우에 그걸 구분 못하게 돼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런대 쌍둥이 보다 더 똑같은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몇 년 전 ‘배자복사’(胚子複寫) 기술이 극복됐다고 해서 한참 논란이 벌어졌다.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소의 배자를 복사시켰다는 말인데, 배자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서 수정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기술에 의하면 똑같은 암소를 수백, 수천 마리 만들 수 있게 된다. 참으로 엄청나다. 이런 유전공학에 인간을 대입시키면 똑같은 인간을 무한히 생산해 낼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진들은 배자복사 성공이 여러모로 인류의 행복을 위해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예컨대 수정된 배자를 두개 만들어 놓았다가 만약 한 개가 태아였을 때 불구이거나 어떤 사고를 당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두 번째 배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보면, 두개의 배자를 준비해 두었다가 한개만 성장시킨 후 어떤 장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다른 배자를 성장시켜서 그 장기를 이식시킬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 벌어지는 종교적, 윤리적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런 종교, 윤리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과학의 속성인 발전 메커니즘에만 철저할 뿐이다.
배자복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이미 성장한 동물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월23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소재 로스린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6년생 암양의 DNA 유전자를 이용해서 유전적으로 똑같은 새끼 양을 낳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과정과 결과에 대해 전문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6년생 암양의 유선조직으로 부터 세포를 채취해서 특수 화학처리를 통해 세포핵을 휴면상태에 빠지게 한다. 세포핵을 제거한 다른 양의 수정되지 않은 난자에 6년생 암양의 DNA를 이식시킨다. 이 수정란을 대리모격인 제3의 양의 아기집에 이식시켜 6년생 암양과 유전자 구조가 똑같은 양, 즉 복제된 양을 출산시켰다고 한다. 이런 기술이 배자복사와 다른 점은 분명하다. 배자복사는 정상적인 후손증식 방법에 의한 배자를 단순히 복사했을 뿐이지만 이번 ‘양 복제’는 유전암호가 들어있는 세포를 분리해 내서 그것과 똑같은 후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 동물은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설령 쌍둥이라도 유전적 기질에 있어서는 약간씩 다르지만 ‘복제’ 기술에 의해 태어난 동물은 완전히 똑같다고 한다.
만약 이번 실험을 인간에게 대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자식들은 대개 유전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친가와 외가의 여러 유전적 기질을 물려받기는 하지만 어느 한 조상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고 하더라도 100%가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복제기술을 사용하면 자신과 손가락 지문까지 똑같은 자식을 낳게 된다. 이 복제기술이 법적으로 허용되기만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다.
‘인간복제’의 길을 터놓은 이번 영국 과학자들의 연구결과 앞에서 세계는 지금 숨소리를 죽이며 긴장하고 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 이번 문제를 90일 안에 연구검토 보고토록 긴급지시했으며, 유럽연합도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 내 7백 개 생물공학 기업 및 연구소를 대표하는 미(美)생물공학산업기구는 24일 “이 같은 유전공학 기술이 인간복제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아마 앞으로 종교, 사회, 윤리, 미래 등 여러 전문가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런 저런 안전장치를 강구하게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복제가 허용될 때 미치게 될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히틀러 같은 사람이 수백, 수천의 자기복제를 만들게 된다면 이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 속으로 휩싸이게 될 것이다. 자기망상에 빠져 있는 그런 이들만이 아니라 노벨상을 탈 정도의 지식인이나 세계 일류의 스포츠맨이나 탤런트들이 자기복제를 했다고 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자기복제를 하게 될 텐데 그렇다면 그건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 아마 악마의 세상이 될지 모른다.
오늘 우리는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에 직면해 있다. 배자복사, 인간복제만이 아니라 인조인간도 멀지 않아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그런 기술의 인간적용에 어느 정도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과학과 과학자들은 윤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과학자체의 통제될 수 없는 진보주의에 빠져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아니면 파멸시킬 것인가? 다이너마이트가 인류에게 공헌하기도 했지만 대량학살도 가능케 한 것처럼, 인간복제기술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을 구원할 수도, 인간을 파멸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199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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