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살리기?

지난 4월1일 김영삼 대통령, 신한국당 대표 이회창  씨, 국민회의 총재 김대중 씨, 자민련 총재 김종필 씨가 소위 ‘영수회담’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합의문 내용은 구구절절이 옳다. 최근의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 모두의 협조와 동참, 그리고 어떠한 고통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당당히 밝혀주고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과 위기가 본질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만연된 불신풍조와 이로 인한 민심의 동요에 있기 때문에 이런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줌으로써 신뢰를 회복시켜야 하며, 앞으로 여야를 초월하여 힘을 합치겠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영수회담의 후속조치로 여야 3당 정책위의장이 모여 기업, 노조, 여야정치인 등으로 구성된 경제종합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키로 했으며, 검찰 총장은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해서 중소기업가들의 웬만한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선처해 주라는 특별지시도 내렸다.
참으로 새삼스럽다. 언제 우리가 경제 살리기를 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박정희 군사독재 때부터 경제개발 몇 개년 계획이다 해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쳤고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도 그랬고, 지금 김영삼 대통령도 입만 열면 경제 운운했다. 국제화, 세계화, 경쟁력 10% 올리기, 등등 그저 허구한 날 경제만 외쳐댔다. 그런대 지금처럼 국가적으로 정신적 공황기인 이 순간에 여야영수들이 모여 그 진부한 경제 살리기나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그런 말을 안 해도 우리 국민은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눈만 뜨면 돈 버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이번 영수회담은 분명히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다. 이른바 ‘삼김(三金)’의 살아남기를 위한 모종의 저의가 숨겨있을 뿐이다. 작년 말 안기부법과 노동법 불법처리로 부터 시작해서 한보부도, 그리고 한보사태에 연관된 국회의원들과 공직자들의 구속, 급기야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에 관계된 각종 의혹에 이르기 까지 우리 사회는 지금 총체적인 절망감, 그들 영수들이 발표한대로 불신풍조가 만연해 있다. 현재의 위기는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그와 동일시되고 있는 김대중, 김종필 씨에게도 똑같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단 이를 피해보고자 하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매번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아옹다옹하던 그들이 놀랍게도 의기투합해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내보냈다. 솔직히 불쾌하다. 그런 잔재주로 국민들의 냉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겪이라고나 할까?
열 번 좋게 보아서 현재 우리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내거나 개혁의 깃발을 좀더 높이 드는 일 보다는 일단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그들의 주장이 그들 개인의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애국적 심정의 솔직한 고백이라 하더라도 그 처방이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디가 문제인가?
현재 우리의 침체된 경제상황은 대단히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있어서 한두 가지 처방으로 해결될 수는 없지만, 일단 두 가지 관점으로 좁혀서 접근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경제자체의 구조적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주변과의 관계성이다. 경제자체의 구조란 우리 경제구조가 안고 있는 거품현상을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앞뒤 살피지 않고 무조건 성장 중심, 수출드라이브정책이 놀라운 초고속 성장을 가져온 건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거품이 너무나 많았다. 기술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술 인력이 부족했으며 간접산업의 부족 등이 그것이다. 옛날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기계처럼 죽어라 일만 하면 따라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으로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 주변과의 관계다. 정치, 교육, 문화 등 사회전반이 우리의 경제력을 뒷받침 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길은 어떻게 좋은 제품을 개발해서 생산해 내는가에 있다기보다는 어떻게 정치와 결탁해서 특혜를 받아내는가에 달려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공장 부지를 확보해 놓고 땅값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이번 한보철강만 해도 그렇다. 로비의 귀재인 정태수씨는 청와대, 국회, 내각, 그리고 금융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특혜대출을 엄청나게 받아서 그 돈으로 철강회사도 차렸고 땅도 샀고 기업 확장도 했다. 지금 까지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대개는 그런 방법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경제 바로보기다. 왜 경제를 살려야 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 나라의 초일류 대기업 총수들마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증여세를 포탈하기 위해 불법을 일삼는 한 이 나라의 경제는 아무리 살아나도 그건 말짱 헛일이다.
이런 점에서 여야영수들은 공허한 경제 살리기를 합창할게 아니라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하루라도 빨리 명실상부하게 세대교체를 선언했어야했다. 적당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매일 도박이나 일삼는 가장이 자녀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집안을 일으키자고 하소연 한다면 그게 어디 먹혀들어갈 수 있겠는가. 장남에게 모든 권한을 물려주고 조용히 노인정에 나가 장기나 두던지 아니면 청소나 하는 게 좋다.
여야영수들이 경제 살리기를 외친 그날이 공교롭게도 만우절이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재미있다. <199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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