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증

인간의 심리발달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사춘기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된다. 그 이전 까지는 자신을 아버지나 어머니와 동일시 할 뿐이다.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에 그 어떤 조건 가운데서도 부모만 옆에 있으면 안정감을 갖고 살게 된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서 자기 주변을 객관화 시켜 나감으로써 자기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게 된다. 부모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친구, 교회, 학교, 사물과의 관계를 정리해 나간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자신의 존재론이었다 한다면 이제는 그들로 부터 독립해서 자기 자신을 존재론의 근거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정신적,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되지만 그런 아픔을 통해서 성숙한 인간이 된다.
사춘기를 지나서 성인이 되고 많은 사회경험을 쌓게 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이 형성하게 된다. 그 성장과정은 자기 주체성이 확립되는 과정이다. 자신과 부모, 가족, 사물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하게 된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지 사물이든지 주위의 모든 것을 객관화 시키고 자신의 주관을 확실하게 발전시키게 된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 인간관계나 사회활동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분명한 모습을 형성하게 되는데, 반면에 이런 성장이 원만하지 못할 때는 여러 가지 사회부적응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신경증이라 일컫는다.
극단적인 경우에 자폐증의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모든 주변과의 관계로 부터 자기를 단절시키고 자기 안으로만 퇴행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이런 이들은 자기 혼자만의 세계 안에 갇혀 살기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혼자서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든지 손을 비비는 동작이나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계속적으로 반복한다. 혹은 작은 공간 속으로만 숨어들기도 한다. 유아기에는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나이가 들었는데도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이건 아주 심각한 병이다. 자아확립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드러나게 되는 신경증이다.
위에서 말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심하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지 현대인은 상당한 수준에서 신경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술과 담배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든지, 오락과 취미생활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신경증적인 문제다. 결국 자기 주체성이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주변적인 문제들과 혼란한 관계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요즘은 일에 너무 집착하는 현상도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권면하거나 책망해도 알코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현대인은 일종의 일중독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일중독은 어떤 목표에 도달할 때 까지, 때로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어서 많은 경우에 자기 자신과 가정을 파괴시킨다.
앞에서 현대의 신경증이 자기 주체성의 혼란에 기인한다는 점을 밝혔는데, 다른 한편 자기 주체성의 지나친 강화로 인한 신경증 내지 사회심리학적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자기 주체가 너무 강함으로써 주변을 지배해 나가려는 의지가 지나치게 압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현상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경쟁구조로,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생태계 파괴로 나타난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인간관계는 경쟁구조로 일관된다. 물론 경쟁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경쟁이 상당한 경우에 창조적인 활력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쟁구조가 우리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기 주체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다른 이들을 지배해야 하고, 그 지배관계를 유지시키거나 강화시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파괴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이런 주체성 문제는 결국 인간이 인간 이외의 모든 대상을 도구적으로만 생각해 버림으로써 자연의 유기적 생명리듬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빚었다. 인간관계나 자연관계에서 이런 경쟁 내지 불균형을 초래케 된 원인은 인간이 자신의 주체성을 지나치게 의식함으로써 신경증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이런 신경증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체성 인식을 새롭게 정립해야만 한다. 주체의식이 실종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주체의식의 지나친 강화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주체로서의 자기를 객체로서의 세상과 적절하게 연결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을 뿐이라고 가르치신 적이 있다. 이 말씀만이 아니라 자기가 살려면 죽어야 한다는 뜻으로 여러 번 말씀하셨다. 여기서 자기가 썩는다, 혹은 죽는다는 말은 주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이 무얼 이루거나 무엇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가치를 위해 살아가야만 자기 주체성이 회복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생명의 길이다.
기술, 정보사회로 변화하면서 농경사회 때 보다 훨씬 신경성 질환이 증대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불행하다는 말이 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정신, 심리적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를 이룬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사회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를 부정해야만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신경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이 마음으로 부터 경청해야 해야 할 구원론적 진리이다. <199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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