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은 어디로!

우리 현풍에서 가까운 위천은 논공면에 소재한 아주 작은 지역인데, 요즘 전국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가공단 촉구 시민궐기대회가 열렸고, 대구시 국정감사 중에도 위천 문제가 뜨겁게 달구어졌다. 대구광역시장, 시의원 및 달성군과 군 의원, 그리고 대구상의관계자들, 지역 국회의원이 일년 내도록 이 문제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이들의 주장은 무언가? 위천을 국가공단으로 지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그걸 바탕으로 대구가 섬유를 중심으로 한 경공업 도시에서 중공업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삼성 상용차 공장이 성서에 건설 중이고 쌍용 승용차 조립공장도 구지에 터를 잡고 기반 시설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성서로 부터 구지에 이르는 강변 지역을 자동차 부품 벨트라인으로 키워보자는 야심을 내보이고 있다. 대구시의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는 일단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서와 구지의 중간에 자리 잡은 위천을 국가공단으로 지정받아 정부로 부터 큼지막한 재정을 지원받아 내자는 속셈이다. 만약 국가공단으로 지정되기만 하면 모르면 몰라도 수년간에 걸쳐 수백억 원의 정부재정을 지원받을 수 있을 텐데, 그 돈만 해도 상당하거니와 그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르게 된다. 전통적으로 대구가 전국적으로 삼대 도시였으면서도 언제부터인가 대전, 인천 같은 도시들에게 밀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됐다. 성서와 구지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위천이 국가공단으로 지정되기만 하면 대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질 만하다. 관계자들은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현 정부를 향한 지역적 소외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일이 마음 먹은 대로 굴러가지 않는 이유는 부산광역시가 낙동강 수질 악화를 근거로 결사적으로 반대하는데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몇 년 동안 페놀사태다 뭐다 해서 낙동강의 수질이 심각하게 구설수 올랐었는데, 이제 위천 마저 거대한 공단으로 바뀌게 된다면 아무리 완벽하게 폐수처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질악화는 불을 보듯 뻔 하기 때문에 그 낙동강 하류에서 그 물을 먹고 사는 부산시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구와 부산의 첨예한 대립은 지역 간 갈등으로 까지 비화되고 있다. 대구는 공단과 정화시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부산은 우선 완벽한 정화시설과 그 약속을 하고 다음에 공단을 추진하라는 주장을 한다. 대구 쪽의 입장에서 보면 현직 대통령과 20명에 이르는 여당 국회의원을 배경으로 둔 부산이 공연한 트집을 잡는다는 생각이고, 부산 쪽의 입장에서 보면 이웃의 생존문제를 제쳐놓고 공단을 추진하는 대구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그 정당성 여부에 대한 왈가왈부 할 입장이 못된다. 다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우리는 지난 70, 80년대에 걸쳐 경제개발을 최우선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해선 어느 정도 군사독재 정치도 통용됐고, 노동자들의 저임금 정책도 당연시 됐다. 그 결과로 개인 GNP 1만 달러에 이르는, 어느 정도의 풍요를 이루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무조건적인 발전의욕에 빠져서 헤어 나올 줄 모른다. 좀더 일하고, 좀더 개발하고, 좀더 수출해서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의욕이 차고 넘친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우리는 국민은 앞뒤를 돌아보면서 보다 중요한 인간본질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인가? 헬라신화에 나오는 대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떨칠 수 없는 사람처럼 우리는 경제개발이라면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성취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위천 국가공단은 당위다. 그게 의(義)고 선(善)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우리 자신과 지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수출을 많이 하고 달러를 많이 벌어들여서 대구 시내에 멋진 수입 승용차가 많아지고, 골프장이 늘어나는 것만이 대구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할 조건은 아니다. 비록 적게 벌어먹더라도 좀더 많은 강물과 푸른 숲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앞으로 50년, 1백년 후에 대구에 살게 될 우리 후손들이 무얼 원하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지금 당장 일자리를 늘릴 수 있고, 경제사정을 좋게 할 수는 있지만,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공단지정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아무리 나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만큼은 되었다. 실업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일할 곳이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생존의 위기에 빠져 있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런 문제는 분배정의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위천공단 지정만이 대구의 살길인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앞으로 미래에 인간 삶의 질은 경제지수가 아니라 에콜로지(생태학)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의 정보화 시대에 옛날처럼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공단으로 승부를 걸어보려는 생각은 별로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굳이 공단을 세우려면 소규모의 공단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작금의 위천 문제가, 물론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겉으만 대구사랑 운운하고 실제로는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정략적 요구인지 모르겠다. 위천의 문제는 섣불리 결정해도 좋을 사안이 아니니 만큼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겠다.(9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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