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살리자!

이 지구상에는 2천여 민족이 2백에 가까운 나라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중에 우리 한민족은 여러 모로 다른 이들과 비교될 수 없는 고유한 문화적 역사를 자랑할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다. 그중에 뭐니 뭐니 해도 우리만의 문자를 갖고 있다는 건 탁월한 자랑거리다. 550년 전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더불어 만들었다는 한글 덕분에 그동안 빌려 사용하던 한자로 부터 벗어나서 우리 식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과 글은 한 나라, 혹은 한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역사다. 단순히 학문적인 필요성이나 일상적인 생활의 필요성에서만이 아니라 한 민족의 정신적 일치성과 정체성을 유지시키거나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일제 시대 당시 일본정부가 강압적 힘으로 조선을 지배해 보려고 했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일단 학교에서 조선말과 글을 없애버리면 결국 조선의 혼을 잃어버리게 되고 완전히 황국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여러 민족들이 서구라파의 식민지로 오랫동안 지배받으면서 모두 프랑스어나 영어, 스페인어 등을 공용어로 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유럽의 지배를 면할 수 없었다. 이처럼 말과 글은 한 민족의 구별성과 문화적 독자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그런데 말과 글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하는, 일종의 생명체와 같아서 그걸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말과 글은 단순히 일상적인 차원에서만 다루게 되면 그런데 머물게 된다. 밥 먹었니? 어디 아프니? 누가 죽었니? 나는 똥 누러 간다. 내 친구와 싸웠다. 대충 이런 말들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대충 1백 개 정도의 단어만을 사용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나 프랑스어권에서는 그들 보다 수십 배의 단어가 사용되며 표현방법도 역시 훨씬 다양하고 세련되어 있다. 그만큼 말과 글의 쓰임새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한글은 얼마나 우수한 글일까? 우리가 이 자리에서 전문적인 분석을 가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말과 글은 서정적인 부분에서 강점을 보이는 반면에 논리성과 사상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마 우리 민족이 정서와 감정이 풍부한 반면에 이성의 결핍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시를 보면 그게 확연히 드러난다. 다른 언어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담겨있다. 반면에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거나 복잡한 상황의 설명에는 미흡하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말에는 전치사와 시제와 조동사가 아주 취약하다. 그리고 문장구성에서 볼 때 단문형식에 알맞게 되어서 영어나 독일어의 복합문을 번역하려 할 때는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런 문제는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역사경험이 엄밀성과는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주로 서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이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보다 고급스런 차원으로 끌어올리는가에 있다. 그런 노력을 부단히 하게 되면 앞으로 2,3백년 후에 우리 언어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언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테지만, 그런 노력들이 보다 철저하게 못하다면 삼류언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한글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을까? 어떤 전망이 보이는가? 지금 까지도 뚜렷한 업적을 - 예컨대 보다 다양한 국어사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등- 못 보이고 있는데, 앞으로는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걷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런 증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벌써 해방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건축이나 기계업 등에서는 여전히 일본어가 판치고 있다. 우리의 국어학자들이 무얼 했기에 여태껏 그런 처지에 있는가? 한겨레신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간지가 한글과 한문을 겸용하고 있다. 우리처럼 많은 외국문자(한문)를 사용해서 신문을 발행하는 선진문화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이란 나라는 그 문자 자체가 한문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런대 우리는 독창적인 문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개념전달이란 점에서 한자가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대로 한글을 사용하려는 학문적, 실제적 노력을 많이 해야만 우리의 언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편 우리의 TV는 거의 영어에 지배당하고 있다. 왜 그렇게 영어로 된 제목이 많은지 모르겠다. 대도시 간판이란 간판은 모조리 영어식으로 되어있고, 승용차 이름도 몽땅 그렇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보다 심각한 건 학교교육에 있다.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정식 교과과정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게 세계화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것 같다. 언어란 어릴 때 할수록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생각 같은데, 참으로 딱한 일이다. 영어가 우리말과 글 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우리의 것을 포기해 버렸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어릴 때일수록 우리의 말과 글을 더 정확하게 가르치도록 노력해야한다.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다른 언어를 가르친다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지금 대학생들 중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말이나 글로 나타낼 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아무런 생각도 없고, 있다고 해도 딱딱하기 그지없으며, 표현방법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번역 투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영어가 아니라 국어다. 영어는 중학교에 가서 해도 전혀 늦지 않는다. (9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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