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의 빈곤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걱정들을 태산같이 하는 것 같다. 작년에는 무역 적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이러다가는 우리가 멕시코 꼴 날지 모른다고 아우성이다. 부도율이 매우 높으며 백화점이나 재래새장에서도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특히 최근 이 나라를 뒤흔들어놓고 있는 한보사태로 인해 이런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경제사정이 그렇게 나쁘다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 금년 1월에는 약간 판매율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승용차는 많이 팔리고, 외국여행은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나가고, 한 병에 수십만 원 내지 백만 원 이상 나가는 고급 수입 위스키가 없어서 못 팔고 있는 마당에 경제위기 운운 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자식교육을 위해 월 수십만 원짜리 개인과외를 시키고, 초등학생들 까지 방학을 이용해서 수백만 원짜리 해외 어학연수를 시키기도 한다. 외국 유명 브랜드가 전국적으로 간판을 달기에 분주하다. 맥도널드나 아무개 피자 등등 거의 미국 본토 매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그런 가게들이 도시 마다 진을 치고 있다. 그런 가게를 꾸미는 데는 수억에서 수십억이나 들지만 일단 열기만 하면 떼돈을 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프로 야구와 축구도 모자라서 프로 농구 까지 출범시켰다.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도 미국 선수들을 수입해서 농구장에 쏟아놓고 미국 NBA 흉내를 내기에 바쁘다. 겨울철에는 스키장이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연인이나 가족단위로 몰려온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친구 목사들 말을 들으니 월요일 마다 골프장에 나가는 목사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목사들이 골프를 칠 정도로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다.
이 나라 어디를 보아도 모든 게 차고 넘치는데 경제악화로 인해 나라가 곧 결단 날듯이 떠벌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보면,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트집을 잡거나, 혹은 기업가들이 노동자들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국가경제상태를 나쁜 쪽으로 부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다.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은 우리 국민들이 경제문제를 사실 이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예년에 경제성장률이 8%였다가 금년에 6%로 떨어졌다는 통계가 나오면 그것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무역수지를 결산해 보니까 1백억 달러나 수입이 많았다는 통계를 보면서도 경제위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대 경제성장률은 사실 약간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는 것이며,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무역수지 적자도 그렇다. 때에 따라서는 적자폭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이런 국가경제는 가정경제와 비견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집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은행 돈을 빌려다 썼다면 계수상으로는 마이너스지만 그건 생산을 위한 투자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따라서 몇 가지 경제지수로만 위기 운운한다는 건 금물이며, 그걸 어느 집단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건 더욱 부도덕한 일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경제문제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몇 년 전 같으면 일 년 동안 저축하면 소형 승용차라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1년 반 동안 저축해야한다고 할 때, 또한 몇 년 전에는 외식을 매주일 했는데 이제는 한 달에 한번 밖에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굉장히 살기 어렵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일 년 반만에 승용차를 구입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한 달에 한번이라고 외식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건데 몇 년 전 보다 조건이 나빠졌다고 해서 불안해하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의 본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보다 경제사정이 더 악화된다고 해도 별 심각한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경제 불안은 의식주가 아니라 더 많은 소유에 근거해 있다. 경제가 실제로 어려워진다면 아마 불필요한 부분들이 제거될 것이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부분들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모두가 전기나 수돗물을 아껴 쓰고, 옷도 동생물림을 한다거나 꿰매 입고, 구두 뒤창이 떨어지면 그걸 갈아 다시 신게 된다면, 그리고 광고전단지 이면을 연습장으로 활용하고, 보리가 많이 섞인 밥을 먹게 된다면, 지금처럼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지 못해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많은 걸 소유하지 못해서 걱정할 뿐이지 이미 넉넉할 정도로 우리는 풍요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는 흔히 말하듯이 풍요 속에 빈곤을 생산해 내고 있는 셈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한데 정신적으로 빈곤한 이중구조 가운데 놓여있다. 오늘 우리가 풀어야 할 당면과제는 정신적 풍요를 물질적 풍요만큼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정신이 따르지 않는 풍요는 욕심과 방종과 소비의 극치만 달리게 될 뿐이다.
정신적인 문제는 윤리학이나 철학이 담당하기도 하지만 주로 종교가 담당할 몫이다. 영적인 세계를 말하는 종교야말로 이 세상의 삶을 영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유일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실상을 보면 오히려 그런 물질적 풍요만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크고 많은 것만을 가치 있는 것처럼 선포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정신적, 영적 빈곤 가운데 빠져있는 탓이 아닐까 여겨진다. <1997.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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