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교회당, 작은 교회당

지리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에 놓여 있는 독일이란 나라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나가는 라인 강을 대동맥처럼 가슴에 끼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라인 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소위 라인 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도시 중에 장자격인 쾰른이란 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쾰른을 휘감고 거칠게 북진하는 라인 강변에 무지무지하게 높고 웅장한 교회당 첨탑이 보인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식 건물인 쾰른 돔 성당이다. 장엄하다 못해 고독해 보이는 이 퀼른 돔성당을 광장에서 쳐다보면 꼭대기 까지 시선을 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매연 탓인지, 아니면 세월 탓인지 거무칙칙하게 변조된 그 건물의 감상은 한밤중 지상에서 지붕을 향해 쏘아대는 조명 밑이나 아니면 먹장구름에서 내리꽂히는 장대비 가운데서 바라볼 때 압권이다.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라인 강 주변에 많았던 석회암을 쪼개어 쌓아가는 공법으로 건축된 것 같은데,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면 햇살을 오색찬란한 신비의 색깔로 바꾸어 놓는 스테인 글라스가 화려하게, 그러나 장중하게 양쪽 벽면에 장식되어 있어 순간적으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충격을 받는다.
이 쾰른 돔 성당은 13세기에 시작해서 거의 4백 년 동안 공사가 계속됐다고 하니 그 엄청난 공력에 정신을 잃게 된다. 7백 년 전의 공법과 재원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건축했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다. 그들이 그토록 미련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고도의 신앙심의 결과였는가? 어떤 경건한 선제후들과 주교들이 무슨 이유로 대를 이어 하늘에 가 닿을 듯한 뾰족탑을 쌓아갔는지 알바 아니지만, 그 건축에 들어가야 할 돈과 노동력에 인생을 소진시켜 버렸을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이 이제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리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뿐이다. 어쨌든 오늘 우리 후손들의 구경거리로서는 손색이 하나도 없다. 장엄한 자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쾰른 돔 성당이 흡사 안개와 구름과 불꽃 가운데 여호와가 강림한 시내 산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처럼 절대적이고, 그처럼 고고하고, 그처럼 불패의 군주처럼 보일 수가 없다.
이런 거대한 건축물은 쾰른만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이집트, 이탈리아, 중국, 캄보디아, 인도 등 인간이 문화적으로 살았던 곳에는 여지없이 이런 유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왜 인간은 거대건축물을 짓는가? 어떤 인류학적, 혹은 고고학적 이유를 찾으려 애를 쓸 필요도 없다. 그런 행위 그게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거대한 건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시켜 보려는 욕구에 빠져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이름이었던, 아니면 민족의 이름이었던 관계없이 보다 높고, 보다 크고, 보다 견고하고, 보다 세련된 건축물, 그래서 인간의 한계가 극복되었다고 확인될 만한 그런 건축물을 세운다. 이런 욕구충동에는 동서양이 있을 수 없고, 이 충동을 충족시키려는 의지를 막을 아무 것도 없다. 일단 그게 가능하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게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고, 우리 자신이고, 인간이라는 종이다.
과도하게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태도는 자신 속에 있는 열등감의 또 다른 표현양식이듯이 인간의 거대 건축물 집착은 어딘가 인간이란 종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열등감의 표출인 것 같다. 요즘 키가 작은 사람들을 위해 5cm 크게 보이는 구두가 있다고 하는데, 피라미드를 건축하거나 쾰른 돔 성당을 건축하던 이들은 혹시 인간 종의 외소 콤플렉스에 걸려 있던 건 아니었을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창세기 11장에 보면 바벨탑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얼까? 표면상으로 보면 인간의 언어혼란이 있게 된 배경설명이다. 그러나 좀더 차근히 살펴보면 그 이면에 있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4절에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인들은 대홍수라는 불가항력 앞에서 온 힘을 다해 하늘에 까지 닿을만한 탑을 쌓기로 했다. 말하자면 거대한 건축물로서 자신들의 무력감을 해소하고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자는 시도였다. 그 바벨탑 사건 이후로 인간은 심판의 운명을 면해 보고자 자꾸만 하늘에 닿을만한 대와 성을 세워보려 했다. 그게 인간 역사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이 그런 대형건축물로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하겠지만 종교인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사고구조 속에 갇혀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동양에서 최고로 큰 불상,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당이 대체 무슨 정당성을 갖는 것일까? 세상 건물 보다 더 큰 종교건물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만약 큰 건물, 많은 교인 수에서 종교성과 종교적 능력을 확인하려 든다면 이는 신앙의 미숙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콤플렉스다.
물론 대형 교회당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쓸모가 있다. 그러나 작은 교회당도 역시 그것대로 쓸모가 있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쓰임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건 무언가 모자란 것으로, 큰 것은 무언가 잘난 것으로 전제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작은 교회당은 큰 교회당으로 나가기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그것대로 완전한 교회다. 아니 오히려 더 아름다운 교회일 수 있다. 분명한 건 신앙이란 얼마나 큰 교회당을 세워나가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신앙의 본바탕이 무언지를 깊이 생각하고 그걸 이루어 나가려는 선한 투쟁이라는 사실이다.(9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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