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을 마치고

본교회가 여러 모로 배려를 해주어 필자는 지난 7월10일 부터 8월10일 까지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했다. 아직은 그 경험들을 낱낱이 드러내 놓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내 삶과 연결되어 내적으로 영글어갈 때쯤 되면 무언가 말할 만한 게 나올 것 같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저 간단한 소묘 정도로 마칠까 한다.
이번 여행은 독일을 중심으로 체코의 프라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로마로 이어졌다.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프라하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다가 실패한 동구라파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전 유럽의 중심이기도 한 도시다. 14세기로 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의 전시장 같은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흡사 중세를 배경으로 한 동화의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프라하의 젖줄 몰다우 강, 그 강에 얹혀 있는 로만틱 스타일의 칼브릿지(칼다리), 건너편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프라하성은 도시미학의 품격이 무언가를 웅변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은, 어른만이 아니라 어린이라도, 에펠탑과 개선문을 파리의 상징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러 굳이 파리까지 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실제 보다 훨씬 과장되게 알려져 있어서 실제로 보면 분명히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선문에서 루브르 박물관 앞 공원 까지 이르는 그 유명한 샹제리제 거리는 프라하의 국립 박물관 앞 벤쨀 광장에 비해 좀더 넓고 길며, 야(?)할 뿐이지 어떤 품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파리의 쎄느강은 매혹적이었으며, 쎄느강 한 가운에 놓인 노틀담 성당의 뒷모습은 화려하게 치장한 귀부인의 자태를 잃지 않았다. 베르사이유 궁을 비롯해서 파리를 정확하게 보려면 역시 프랑스 혁명사를 한번 쯤 읽어봐야 할 것 같았다.
로마는 분명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원전 건축물로 부터 시작해서 7,8백 년 동안 불패의 권위를 자랑하던 로마의 건축물, 그리고 로마가톨릭 성당들의 그 장엄함과 세련미는 우리를 주눅 들게 함직하다. 특히 로마 시대 때 여러 공연장이나 대학 강의실이었을 건물들의 잔재가 시내 곳곳에 널려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대개는 기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만 콜로세움만은 그런대로 대충의 구조가 자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함께 함성을 올리며 스포츠 관람에 열을 올렸을 콜로세움의 크기는 오늘의 웬만한 공설운동장을 능가한다. 넓이는 그만 못하지만 그 높이에 있어서는 훨씬 앞선다. 아마 게임 운영을 위해 필요한 음성전달상의 문제점 때문에 넓이에 한계를 둔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여하튼 순전히 석재만 사용해서 십여 층 높이의 거대 운동장을 건설한 그들의 건축기술과 그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로마의 건축은 높이로만 볼 게 아니라 카타콤배(지하공동묘지)에서 처럼 깊이로도 볼 수 있었다. 공기와의 접합에 의해 더욱 단단해진다는 특수재질의 암반을 지하 7층 깊이로 파내려 가며 공동묘지를 만들어 갔는데,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그런 시체들 사이에서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기원전에 세워진 판테온 신전과 바티칸 안에 있는 베드로 성당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무는 게 건축 예술의 극치 앞에 섰던 자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머문 나라는 독일이었다. 일단 언어 소통에 편리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마틴 루터의 유적지를 탐사하려는 계획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뮌헨, 하이델베르크, 마부르크, 뮨스터, 그리고 마틴 루터와 관계된 옛 동독의 여러 도시들, 예컨대 만스펠트, 아이스레벤, 비텐베르크, 할레, 바르트부르크, 보름스 등이었다. 독일은 전국적으로 부르크(城)가 있었고, 그 밑으로 옛 시가지, 그리고 새롭게 확장된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마 독일만큼 지역봉건 체제가 확고했던 역사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성로마제국 이전에 3,4백 개의 지역 맹주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전통에 따라 지금도 국가 단위만이 아니라 주나 시 단위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이 가장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 정치와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강대국은 역시 통일의 시련을 넉넉하게 극복해 가고 있는 독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유럽의 건축물을 보면서 한국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은 목재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쪽은 석재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견고성에서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다보탑과 석굴암이 아무리 빼어나 보인다 해도 우리의 것에 대한 사랑 때문이지 냉담한 객관적인 평가에 따른다면 안타깝지만 서양의 그것들이 기술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훨씬 앞선다.
프라하, 파리, 로마, 그리고 독일의 몇 도시들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인상으로 각인된 곳은 프라하였으며, 로마는 대단히 볼거리가 많지만 지저분한 곳으로, 파리는 실제보다는 지나치게 선전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독일의 뮌헨을, 한번 더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라면 프라하일 것이다. 파리는 속속들이 알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로마는 너무 관광지 냄새가 많이 풍기는 도시라서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파리와 로마에서 개인적으로 나쁜 경험을 당했기 때문에 덩달아서 그 도시에 대한 인상도 흐려졌는지 모른다. 파리에서는 렌트카의 문짝을 누가 들이받고 도망갔으며, 로마에서는 소녀 소매치기단에게 완전히 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96.8.18)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