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大學)

지금 우리 사회 제도 안에 있는 대학은 주로 서양에서 발전한 교육제도였다. 이탈리아의 살레르노 대학과 볼로냐 대학,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 대학은 12세기에 설립되었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게임브리지 대학교 역시 그런 정도 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갖는다. 그 이후 서양은 많은 대학을 설립했다. 이런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 유럽의 모든 대학은 국립이다. 대학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자금이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장학금이나 학생식당, 그리고 기숙사 등에서 큰 혜택을 주고 있다. 예컨대 독일 대학생들은 자기가 원하면 성적에 관계없이 월 600마르크(35만원 상당)를 졸업할 때 까지 보조받고, 졸업 후 취업이 되었을 경우 무이자로 20년 동안 분할 상환하면 된다. 600마르크의 돈이라면, 절약하기만 한다면 개인용 기숙사에 살면서 얼마든지 대학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국가 보조가 미미한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꿈과 같은 얘기다.
이렇듯 유럽 국가들이 막대한 자금을 대학에 투자하는 건 오랜 역사경험을 통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과 대학생들이 무지막지한 예산을 사용하면서 당장 국가 경제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신학과나 철학과 같은 학문은 경제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구라파인들은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문 활동이야말로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근거이며 대안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대학의 모든 비용을 대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대학은 무언가? 대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의 미래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가? 우리는 2,3백년 후에도 여전히 대학이 이런 기구로서 살아남으리란 확신을 갖지 못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현재와 같은 조직은 아니라 하드라도 대학이 담고 있는 그런 본질적인 과업을 수행할 기구나 제도는 언제까지나 존속하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학(university)이라는 말에 있는 것처럼, 그것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큰 가르침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대학은 순전히 진리, 그리고 그것의 가르침과 수행 안에서만 그 존재 이유가 있다. 그 진리라는 것도 편협한, 혹은 세뇌된 것이 아니라 열려진 것, 보편적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 사회는 끊임없이 이 사회를 비판하고 열려진 미래를 향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진리론적 근거에서 대학은 자유하다. 대학은 국가로부터, 종교로 부터도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국가 이익에 어긋난다 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대학, 그곳에 속해 있는 자들은 그것은 추구하고 외쳐야 한다.
우리의 대학은 어떤가? 우리의 대학생, 우리의 대학교수들은 어떤가? 대학을 운영하는 이사회는 어떤가? 자녀들을 대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을 어떤가? 그들은 여지없이 진리, 보편적 진리에 순종하고 있는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대학이라는 기구와 조직을 이용해서 무언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보려는 생각만 앞서 있는지 모른다. 물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점에서 대학이 출세의 단계, 밥벌이의 수단, 일종의 사업일 수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갖고 있는 특성, 즉 고유한 진리의식은 여전히 대학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유형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공부만 열심히 해서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신경을 끄고 오직 공부만 한다. 둘째는 정신없이 놀기만 하는 학생들이 있다. 어찌 어찌 대학에 들어오긴 했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해서 시간만 나면 다방에 처박혀 지내고 미팅이나 하든지 노래방만 전전하다가 매학기 학점을 날리거나 겨우 동정 점수를 받는 것으로 자위한다. 셋째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적당주의 학생들이다. 그들은 학칙에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하면서 졸업한다. 진리에 대한 의식 없이 졸업장만 따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넷째는 운동권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민족구원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주사파였든지, 아니면 북한과 관계없이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졌든지, 혹은 뚜렷한 이념 없이 그저 그렇게 어울렸든지 이들은 전문적으로 정치적 투쟁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붓는다.
대학 4년 동안 강의실이나 도서관보다는 남의 학교 축제 까지 쫓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야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좌우 하나 돌아보지 않고 온종일 도서관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이라고해서 그들이 가장 바른 건 아니다. 이들은 빠른 시간 안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혹은 컴퓨터 박사가 되겠지만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회가 필요한 인물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이번 한총련 사건을 바라보면서 운동권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급박하게 됐다. 요즘 이들의 친북적 경향과 지나친 폭력이 전 국민의 몰매를 맞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 시점에서 그들을 용납해 주지 않는다. 사회 불의에 대항해서 싸워야 할 때 보신에만 마음을 쏟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처럼 역사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고 청년들만의 낭만에 의지해서 과도하게 투쟁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들이 우리의 자식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그들을 구속하고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의 병(만약 병이라면)이 어디서 시작됐는가, 혹은 도졌는가를 찾는 일이 급하다. (96.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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