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의 자리

소위 여성신학자들은 오늘의 기독교 신학이 백인 남성 중심적인 구도 가운데서 발전해 왔다고 하면서 그런 신학이 불러온 오늘의 문제점들을 고발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을 견인해 온 백인 남성들은 매우 정치적이고 지배적이고 소비적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파괴적이기 까지 한 오늘의 시대정신을 불러왔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온 세계를 지배했고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여성신학자들의 비판이 때로는 과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지난 2천년 서구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런 구석이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원후 313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로 기독교는 황제와 더불어 이 세계의 지배권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황제는 지상을, 교황은 영적인 세계를 완전히 독점하게 되었다. 황제는 교회에게 세속적 재물을 제공하였으며, 교회는 황제에게 영적인 정당성을 합리화 시켜 주었다. 이런 정치와 종교의 연대는 일종의 지배이념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세계를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적 정치와 종교적 현상은 중세기만이 아니라 근대에도 역시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지난 몇 세기 동안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할 때 기독교가 그것의 이념적 근거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1,2차 세계 대전도 역시 이런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국가들이 주로 일으켰다. 이들은 백인 남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세계는 힘이 강한 자가 지배하게 되는 <약육강식>의 질서에 사로잡히게 됐다. 가난한 자, 무식한 자, 여자와 어린이, 제삼세계 국가의 백성들은 세계경영이나 국가경영에서 제외된다. 그들은 그저 동정이나 받아야 할 존재로 남게 된다.
여성신학자들은 백인 남성중심의 신학이 저질러 놓은 지배체제를 극복하여 여성도 역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해방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해방이라고 해서 그게 무슨 볼셰비키 혁명이나 무산자 혁명 같은 폭력의 악순환은 결코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로, 여성신학자들의 주요 관심은 남성중심의 세계이해를 극복하는 것이다. 남성이기 때문에,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게 되는 이득과 불이익을 정리해 가는 작업이다.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대개가 남자다. 정부, 국회, 사법부 모두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다. 간혹 여성들이 약간 씩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그 여성이 아주 특별하거나 아니면 남성이 베푸는 시혜적 차원에 해당한다. 교회조직도 마찬가지다. 일반 성도는 여성들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남자로 되어 있다. 목사와 장로가 모두 목사니까 지방회장이나 총회장도 역시 모두 남자며, 아무도 이런 걸 문제로 삼지 않는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 자신들도 교회 지도자는 남자여야만 한다고 무의식중에 확신하고 있다.
이런 사회구조 가운데서는 도저히 성적 차별이 해결될 수 없다. 여자 아이들은 사회적 지도자이기 보다는 전형적인 여자의 일에 익숙하도록 교육받게 되고, 사회가 그걸 요구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여성신학자들은 성서가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제적 시대 속에서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런 성적 차별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대적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여성을 성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하나님에 대한 호칭부터 조금씩이나마 고쳐나가야 하지 않는가 하고 주장한다. 파격적인 말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니라 ‘하나님 어머니’로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속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그런 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구원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같은 이미지로도, 그리고 어머니 같은 이미지로도 자신을 드러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신뢰하기도 하고, 어머니처럼 의지하기도 한다. 물론 교회 전통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것은 하나도 잘못이 아니며 오늘도 역시 바람직하기는 하다. 다만 우리가 이런 걸 이유로 남성우월, 여성비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여성신학자들은 이 세계가 지배와 파괴의 악순환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 중심적 질서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에게는 여성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모성애다. 생명을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이 세상을 전쟁과 죽음의 질서로 몰아가지 못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끊겨져 나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남성들이 알지 못하는 생명의 신비를 갖고 있다. 여성에 의한 세계경영은 바로 이런 생명원리에 의해 움직여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여성들은 교육도 적게 받았고 사회적 경험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와 사회를 책임적으로 이끌어 갈만한 능력이 현재로서는 부족하다. 이런 사실을 여성신학자들도 인정한다. 다만 이런 여성의 한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끊임없이 자기개발, 상호연대 등을 통해서 힘을 키워나가자고 주장한다. 그럴 때만 이 세상은 남성만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성만의 것도 아닌, 모두가 하나님의 동일한 피조물로서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엮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9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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