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79주년

금년은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479주년이 되는 해이자 동시에 루터 서거 45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틴 루터와 관련된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는 금년을 특히 <Luthers Jahr>, 즉 <루터의 해>로 정하고 전시회나 심포지엄, 유적지 방문 등 많은 행사를 치루고 있다. 필자가 이번 여름 유럽 여행길에 할레를 중심으로 비텐베르크나 바르트부르크 등 루터의 종교개혁과 관련된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본인 스스로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깊은 감회에 빠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일단 소묘에 불과하겠지만 종교개혁일로 기념되고 있는 1517년10월31일의 사건을 잠시 살심으로써 종교개혁 기념주일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별로 크지 않은 비텐베르크 성당의 신부이며 그 대학 교수로서 활동하던 마틴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당 문 위에 95개 조항에 이르는 토론 명제를 게시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대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대자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처음부터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켜 보자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사제며 학자로서 무언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학문적으로 검토해 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날이 바로 1517년 10월31일이었다. 그가 명제로 제시한 95개 조항의 문건이 그 당시 한창 보급되기 시작한 금속활자 덕택으로 순식간에 독일의 지식인들, 정치인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그러자 로마 교황청은 과민하게 반응해서 이 문건을 비롯해서 그의 여러 개혁적 저서들을 금지시켰으며 때로는 수집해서 불 지르게 했고, 급기야 보름스라는 곳에서 루터에 대한 종교재판을 열게 까지 됐다. 다행스러운 건 마틴 루터를 지지해 준 프레드릭 선제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제후라는 직위는 당시 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맹주인데, 그는 보름스 제국재판에 호출당해서 거의 생명을 걸 정도로 자신을 변호하던 루터를 비밀리에 데리고 와서 자신의 성에 은신처를 마련해 주고, 몇 년에 걸쳐 루터가 마음 놓고 종교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학문적 작업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루터에 의한 개혁의 불길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뒤엎었다.
1517년10월31일 루터가 학문적 토론 제목으로 삼은 95개 조항은 어떤 내용인가? 많은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면죄부, 다른 하나는 교황의 무오성에 대한 문제제기다. 우리가 종교개혁의 당위성, 혹은 정당성을 말하려면 이 두 가지 문제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면죄부 문제부터 다루어 보자.
그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로 유럽 신자들에게 공공연히 면죄부를 팔고 있었다. 일선 사제들에게만 맡겨두면 별 실효성이 없다고 여긴 로마 교황청은 전문적인 강사를 임명하여 각 지역마다 방문해서 흡사 만병통치 약장사 하듯 면죄부를 팔게 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죽어서 천당과 지옥과 연옥으로 나뉘어 가게 되는데, 연옥은 예수님을 믿긴 했지만 구원받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천당에 가기 위해 일정 기간 훈련받는 곳이라고 한다. 만약 살아 있는 사람이 먼저 죽은 부모를 위해 면죄부를 사면 연옥의 부모들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천당으로 올라간다고 사람들을 현혹했다. 그런 말을 들은 신자들 중에서 면죄부를 사지 않을 자식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주장은 사실 명목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당시 건축 중이었던 성 베드로 성당의 부족 되는 건축기금을 모금키 위한 긴급조치였다. 평상적으로 들어오는 헌금이나 기부금으로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성당 건축을 도저히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교황청 당국자들의 절묘한 해결책이 바로 면죄부 판매였다. 루터에 의하면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교회의 불법이었다.
루터가 95개 항목에서 강조한 두 번째 부분이 바로 교황의 무오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었다. 로마 가톨릭은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교황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생각한다. 로마의 대주교인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천국의 열쇄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황의 말은 거의 성경과 버금갈 정도의 권위를 갖기 때문에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의 가르침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황은 비록 인간이지만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교황제도가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제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황에게서 대신 찾아보려는 신자들의 소박한 심정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실용적인 차원에서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본질적인 면에서 무오성의 주장은 인간의 우상화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뒤돌아보면 교황의 오류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거나 여러 사람을 종교의 이름으로 죽게 했다. 루터는 이런 교회의 무오설을 배격했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루터가 거의 5백 년 전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 문제를 우리 눈앞에 현실로 보게 된다. 별로 성서적이지도 않고 신학적으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면죄부를 팔았던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처럼 오늘 우리 개신교회는 교회의 재산, 신자불리기를 위해 맹랑한 교리를 전파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회 목사들이 축복을 주거나 빼앗을 수 있을 것처럼 거짓 교리에 빠져 있는 경우도 많다. 기독교는 끊임없이 개혁됨으로써만 진정한 교회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9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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