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쿠타케> 혜성

지난 30년 내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햐쿠타케 혜성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까지 근접해 왔다고 해서 그걸 보려고 26일 자정쯤에 집 옥상에 올라갔다. 공교롭게도 한 주간 내도록 구름이 많았는데, 다행히 그날은 그런대로 날씨가 맑아서 달 정도의 크기로 뿌옇게 빛나고 있는 그 혜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천체 망원경만 있었다면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맨 눈으로만 바라보니 꼬리 부분도 구분할 수 없었고, 그저 윤관만 분간할 수 있었다. 그래도 북두칠성 아랫자락에서 보통 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발광체가 빛나고 있는 걸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햐쿠타케 혜성을 발견한 햐쿠타케 유지 씨는 일본의 남쪽 가고시마 현에 사는 무명의 아마추어 천문가라고 한다. 금세기 최대 혜성의 하나로서 전 세계 천문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햐쿠타케혜성을 그가 최초로 발견한 건 지난 1월30일이었다. 그가 늘상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새벽 3시쯤 집을 떠나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야산에 올라가 150mm 대형 렌즈 두개를 붙인 25배율의 고성능 쌍안경으로 새벽하늘을 살피다가 4시20분경에 우연히 동쪽 하늘 천칭자리 근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물체를 관측하게 되었고 직감적으로 그것이 새로운 혜성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사실이 국제천문연맹에 통보되어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혜성(彗星)은 태양계 내에 존재하는 성운(星雲) 모양, 또는 긴 꼬리를 가진 모양의 천체인데, 관측기록은 이미 기원전3천년 까지 올라가며, 지금 까지 1천6백여 개가 알려졌고, 그중에 6백여 개의 궤도요소가 계산되어 있는 실정이다. 혜성의 핵은 반지름이 1-50km 정도이며, 대개 운석물질과 수소, 탄소, 질소, 산소의 화합물로 이루어진 얼음과 티끌입자가 뭉친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추정된다.
태양계는 지금 까지 발견된 바에 의하면 아홉 개의 행성을 갖고 있는데,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그것들이다. 이런 행성 사이를 누비며 날아다니는 작은 별들이 바로 혜성이다. 가장 유명한 혜성은 약 76년 주기로 지구를 수천 년 이상 찾아왔든 핼리혜성으로서 가장 최근의 등장은 1986년에 있었다. 이런 혜성들은 그렇게 날아다니다가 용케 살아남을 수도 있고, 매우 많은 경우에는 행성과 충동해서 사라지기도 한다. 고대인들은 갑자기 나타나는 혜성을 보고 큰 재난이 따른다고 불길하게 생각했다. 고대인들이 평소에 없었던 이상한별을, 그것도 꼬리가 달린 별들을 보고 하늘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했음직하다. 실제로 지구 표면 까지 와 닿는 혜성들이 있다. 어릴 때 자주 보았던 별똥별이 그런 것인데, 대개는 대기권 진입 후 마찰로 인해 타버리고 말지만 간혹 지표면 까지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지금 까지는 별로 큰 운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웅덩이 정도가 파이고 말았지만, 만약 엄청나게 큰 혜성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면 지구가 조각나든지, 혹은 천재지변 속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매우 큰 요행 가운데서 살아간다. 여전히 지구가 여러 행성과 혜성, 그리고 운석들의 운동 틈에 끼어 적절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아주 당연한 게 아니라 일종의 행운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모든 별들이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건 우주의 고유한 질서가 매우 명확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의 크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능하다. 웬만한 오차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가 크다는 말이다. 모든 별들을 합해 놓아도 축구장에 사과 한알 흘려놓은 것에 불과할 정도로 우주가 크기 때문에 별들의 운동이 상호간 크게 지장 받지 않고 진행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주는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20세기에 들어서서야 겨우 지구를 벗어나 작은 우주를 탐험하기 시작한 인류는 우주에 관한한 여전히 원시인에 불과하다. 우리가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속 시원히 아는 건 별로 없다. 우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별들보다도 훨씬 많은 별들이 도대체 어디 까지 뻗쳐 있는지, 광속의 속도로 비행해도 수억 년이 걸리는 거리는 얼마나 먼 건지 계산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의 감각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우주는 과연 몇 개의 껍질을 갖고 있을까? 태양계 너머에 은하계가 있고, 이런 은하계와 같은 우주가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게 오늘의 우주물리학이 밝혀가고 있는 우주다. 그 끝은 어딘가? 과연 끝은 있는가? 그 끝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최초의 빅뱅(대폭발)이 있었다면,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우주물리학적으로 무엇이 있었다는 것과 없었다는 차이를 우리가 얼마나 엄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 앞에 설 때 마다 우리는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두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 이 공간, 이 순간만이 절대 진리로 작용하는, 이런 삶의 경험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또한 우리 개개인이 이런 우주와의 관계를 제쳐놓고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일 생존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우리에게 이 우주의 실체가 어떻게 보면 매우 황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결코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작다.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지구는 참으로 작다. 우주의 변방에서 태양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고 있는 이 지구는 참으로 외로운 별이다. 비록 광대한 우주에 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는 더 없이 소중하다. 햐쿠타케 혜성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게 살아가야겠다. (9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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