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대책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교통문제는 더 이상 방치해 놓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 같다. 벌써 오래 전 부터 버스 전용로라든지 시간대별 주행방향 전환, 부분적인 십부제, 그리고 주요 터널의 유료화가 실시되고 있었으며, 얼마 전에는 남산 지하를 가로 지르는 몇몇 터널에 통행료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되기도 했다. 한쪽으로 흘러드는 차량을 이런 통행료 부과로 분산시켜 보자는 계획이겠지만 그게 얼마나 실효를 거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서울시가 통행료로 교통문제를 해결하려드는 건 시민들에게 경제적 부담만 전담시키는 행정 편의 주의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최초로 민선 서울 시장이 된 조순 씨가 시장위임 즉시 서울의 교통대책반을 가동시켜 이런 저런 묘안을 짜냈지만 중앙 정부와의 갈등도 있긴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어떤 대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만큼 서울의 교통문제가 치유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다.
한국의 교통 혼잡문제는 최악의 교통사고율이나 시민들의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점만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손실이 크다는 점에서도 아주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우리처럼 해외 무역에 의존해 있는 경제구조는 물류비용의 절감이야말로 해외 경쟁력 제고의 핵심인데, 오히려 우리의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가 서울에서 부산 까지 다섯 시간에 댈 수 있는 것과 열 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품 가격 설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물류비용뿐만 아니라 대도시 직장인들이 출퇴근을 위해 쏟아 붓는 시간을 경제적 수치로 환산한다면 천문학적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교통문제는 위에서 말한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란 부분에서만이 아니라 국민의 정신 건강이란 측면에서는 훨씬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대도시에서는 교통 혼잡으로 인해 시민들의 정서가 조급해 지고 과격해 질 수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사람도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교통 혼잡으로 인해 계속적인 정신적 긴장을 받기 때문이다. 운전자들만이 아니라 보행자는 더욱 피곤하다. 대도시가 아닌 내가 사는 이곳 현풍이라는 작은 마을에도 얼마나 차들이 많은지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데도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할 지경이다. 사람이 편리하자고 차를 타고 다니는 건데 그 편리성이 오히려 사람들의 정서를 해친다면 어딘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됐다.
어쨌든지 자동차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고, 경제적 손실이건 국민 정서파괴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사람들은 계속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대로 교통 혼잡으로 인해 불거지는 불상사를 줄여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며, 그 이외의 대안은 없다.
교통대책의 최우선 순위는 일단 승용차 숫자의 축소가 일차다. 아무리 도로를 넓히고 신호체계를 합리화 하고, 십부제 아니라 오부제를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요즘과 같은 승용차 증가 추세라면 모든 조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너무 승용차가 많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대학생들도 자기 차를 굴리고 다닐 정도니까 그 사정이 어떤지 확인해 보지 않아도 뻔하다. 왜 이렇게 갑자기 승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을까?
일단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는데, 국민소득의 증가와 대중교통의 불편과 소비적 삶의 패턴이 그것들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게 되면 당연히 이런 문화생활을 위한 지출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다가 우리나라의 대중교통 구조는 사실 문제가 너무나 많아서 어느 정도 인내심이 철저하지 않고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 이런 사회 구조적 상황 속에서 개개인이 오늘의 소비문화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충동적으로 자가용을 구입하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개인의 도덕성이나 결단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지난 군사정부는 오히려 교통문제 해결에 역행했다. 1980년대 초에 정부는 자동차 기업과 연대해서 소위 <마이카 시대>에 대한 꿈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이런 마이카에 대한 환상으로 군사독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마비시켜 보려는 기도가 숨어있었겠지만, 거의 무모할 정도로 국내 승용차 시장을 육성해 왔다. 반면에 정부는 서민들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을 개선하는 데는 인색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신의 수입에 비해 약간 과하다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문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도시의 도로율이 턱없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른 뾰족한 길이 없다. 개인 소유를 줄여나가고, 대중교통수단만으로도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녀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등하교 하는 게 사고가 날까 염려스러워 아이들을 직접 학교에 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어야만 하는 우리의 실정에서는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수성 총리가 말하듯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버스나 전철을 타고 다닐 수 있는 교통체계만이 교통대책의 바른 길이다.
후천적 불구의 대단히 많은 숫자가 바로 교통사고라고 하는데, 자칫하면 자동차로 인해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편리한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란 사실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깨닫고 살았으면 싶다.(9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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