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해에 부쳐

우리 정부는 금년을 <문학의 해>로 정했다. 얼마 전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관계 장관들과 문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문학의 해>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매년 정부에서 그 한 해를 무슨 무슨 해라고 명명하고, 그런 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쳐오곤 했다. 미술의 해, 춤의 해, 국악의 해라는 게 바로 그런 것들인데, 대게는 문화 예술적인 주제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평소에 지나치게 경제, 정치적인 문제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나 이슈들을 들추어내는 것 같다. 금년이 문학의 해라 하지만 이런 정부 차원의 관심으로 국민들의 문학적 삶의 내용이 얼마나 풍부해 질 것인가, 하는 점은 솔직히 말해 확실하지가 않다.
문학의 해가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실천문제는 무엇인가? 작가들의 생계비를 보장하기 위해 원고료를 올려주어야 한다든지,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해 우리 문학의 외국어 번역 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든지, 출판사나 서점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문제 등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문제는 국민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하는 일이다. 책을 일상적으로 읽는 국민, 책을 사랑하는 국민, 그래서 작가들이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문학이 반드시 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시낭송회 같은 건 분명히 문학적 행위지만 종이에 인쇄된 문자를 가리키는 건 아니다. 또한 베르그송의 철학책은 책이지만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이란 주로 소설, 시, 수필, 비평 등과 같은 장르의 글들을 가리킨다 하겠다. 물론 철학이나 신학도서들도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문학과 구별되어야 한다. 다만 문학이 거의 문자(책)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문학의 해에 책읽기를 생각한다는 건 별로 틀리지 않은 말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별로 많이 읽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정확한 통계를 기억하지는 않지만 선진국 국민들에 비해 월 평균 도서 구입비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출판계나 서점가도 오랫동안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간혹 몇 십만 부, 몇 백만 부라는 밀리언셀러가 탄생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루 저녁 술값으로는 몇 만원, 몇 십만 원 씩 기분 좋게 지출하면서도 만원 안쪽의 책을 사지는 않는다.
이렇게 독서에 인색한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어릴 때 책읽기 훈련을 받지 못한 때문이다. 국민학생들이나 중고등 학생들이 국내외 명작을 스스로 찾아 읽을 만큼 교육적 여건이 충분하지 못하다. 국민학교 어린이들만 해도 학교 공부만이 아니라 몇 군데 씩 학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촘촘히 짜인 시간에서 정기 교과과정 외의 책에 눈을 돌린다는 건 쉽지 않다. 입시의 중압감에 빠져 있는 중고등 학생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읽는다 해도 거의 입시와 관련된 것만 골라 읽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책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고, 그저 졸업 후 치를 입사시험에 모든 정력을 쏟으며 대학생활을 보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책과의 거리는 여전히 아득하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책을 읽을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나마 시사나 연예잡지, 경우에 따라 자신의 전문영역 도서에 한정될 뿐이다.
특히 영상매체의 급증이 현대인들로 하여금 책을 멀리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사람들은 TV나 컴퓨터에서 매우 쉽게 정보를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종이에 인쇄된 문자를 일일이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리모트 컨트롤이나 키보드를 간단하게 작동시키기만 하면 얼마든지 즐겁고 간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수백 쪽 짜리 책을 읽는다는 건 일종의 과소비일 뿐이다. 온갖 여흥과 취미, 교양 프로그람을 방송하는 케이블 TV의 현실화로 인해 책 안 읽기 현상은 날로 심각해지리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여기서 좀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해 보자. 책을 읽지 않고 살 수는 없는가? 소설이나 시를 읽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가? 물론 그저 살아가는 데는,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데는 독서가 필수는 아니다. 일자무식 촌부들도 역시 존귀하게 살아갈 수는 있다. 책을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돈도 벌 수 있고, 자식들을 키울 수도 있고, 재미있게, 신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설이나 시를 비롯하여, 철학, 역사, 사회과학 등과 같은 책을 읽지 않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내용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이는 흡사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여행안내도, 지도를 준비하지 않는 것과 같다. 경주의 첨성대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는 사람과, 미리 안내서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보는 사람 중에서 누가 첨성대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책은 우리에게 인생의 길잡이와 같다.
이런 점에서 독서는 그것 자체가 구원일 수는 없지만 구원의 계기를 제공할 수는 있다. 좋은 소설은 구원 지향적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나 도스토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홍명희의 <임꺽정> 등에서 우리는 인간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성경만 볼게 아니라 여러 층의 양서를 골라 읽어야 한다. 인간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책을 다양하게 읽음으로써 인간을 참되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럴 때 인간구원이 무언지 절실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9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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