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을 맞으며

이제 1990년대의 후반부가 시작됐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90년 단위로 시작되는 연수가 앞으로 네 번 남았다. 1995년과 1996년은 겨우 일 년 정도 차이지만 느낌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95년은 그래도 1990년 쪽으로 생각되어 ‘아직’이었지만, 96년은 오히려 2000년 쪽으로 생각되어 ‘벌써’라는 느낌이 앞선다. 우리는 엄청난 속도로 세기말을, 아니 천년 주기 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누구나 한 해가 시작될 때 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작년 보다는 좀더 성실하고 바르게 살고, 못 이루었던 것들을 이루어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소박한 꿈이라도 가져야만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약간이나마 위안을 얻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한 개인에게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세계에 관계되기도 한다. 모든 국가들이 금년 한 해에 새로운 설계와 꿈을 그리고 있다. 95년 한 해 동안 엄청난 불상사와 상처, 그리고 변혁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도 역시 96년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신년을 맞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생각은 일반론적인 관점에 머물지 말고 좀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논의되고 확장되어야 한다. 오늘의 시점과 우리의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땅덩이를 직시해야만 나름대로의 질문과 대답들이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금년은 무엇보다도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는 일이 정착되어야 하겠다. 우리 모두가 뼈저리게 체험한 바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불의한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 5.16과 12.12로 부터 5.17에 이르는 일련의 쿠데타로 인해 이 나라의 헌정이 파괴되고 독재체제가 유지되었으며 무고한 이들이 수 없이 납치당하고 고문당하고 죽었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 국군의 <하나회> 숙청으로 부터 시작해서, <5.18특별법> 제정을 통해 그런 악한 질서가 제거되고 있다. 해방 이후 개혁다운 개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은 친일세력을 권력의 핵심으로 부터 밀어내는 일이 선행되어야 했는데, 민족주의 쪽에 별로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친일세력을 자기 정권의 축으로 삼게 됨으로써 친일파 제거문제는 유야무야 되고 만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작업은 지난 50년의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개혁 작업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것 같다. 지금 까지 얘기됐던 자질구레한 내용을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다. 개혁이란 게 지난 날 불의를 저질렀던 몇몇 사람을 제거해 버리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구, 경북 사람들은 이 지방 출신 대통령 두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혹해 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들 두 전직 대통령 보다, 또한 현직 대통령이나 그 이외의 어떤 잘 나가는 사람 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개혁은 지역감정이나 정분에 끌려 잘못된 것들을 눈감아 주지 말고 진정으로 바른 역사, 정의로운 역사를 창출해 내자는 범국민적 열망이다.
지난 해방 이후 50년 동안 이 땅을 지배한 불의한 역사는 겉으로 드러난 몇몇 사건들과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어느 나라건 인간이 사는 곳에는 악이 존재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었던 악 자체만을 보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 악이 선을 가장함으로써 백성들이 악과 선을 구별 못하게 되는 그 결과에 놓여 있다. 불의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를 지배한 악한 질서는 우리로 하여금 “힘이 선이다.”는 이념을 받아들이게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힘을 획득하기만 하면 그게 바로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게끔 했다. 이를 소위 군사문화라고 하는데, 예컨대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밀어붙이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하겠다.
혹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록 독재자였지만 경제성장을 이룩한 인물이 아니냐고 옹호한다. 이런 시각이 바로 문제다. 우선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우리의 경제가 여전히 동남아의 몇몇 가난한 나라처럼 형편없었을 것이란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시기에 우리의 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만큼 초고속으로 성장한 이유는 그럴 정도의 저력이 우리 백성들에게 있었다는 걸 뜻하지 한 두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백번 좋게 보아서 경제성장의 공을 모두 그분에게 돌린다 하더라도 얘기는 마찬가지다.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대신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부정과 부패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경제적 평가는 별로 두드러지는 게 아니다. 좀 어렵게 살아도 정직한 인간이 되는 나라가 좋지, 번듯한 집에서 여러 문화시설을 갖추고 살면서 부패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열심히 무언가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답게 살려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인간다워지는 길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비록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게 바로 인간다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생각에 따라 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1996년은 바르고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년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럴 때만 대한민국은 인간다운 공동체로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9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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