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래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몇 년 전 타임지에 실린 기사인 것 같은데, 오스트리아 부근 산악 만년설 속에서 미라가 발견된 일이 있다. 현대인에 비해 체구가 작은 그 사람은 사냥을 하던 중 사고를 만나 죽었고 수천 년 동안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우연하게 어느 여행가의 눈에 발견돼서 알려지게 됐다. 그 사람의 시신을 고고학자 및 생물학자들을 비롯한 현대 과학자들이 조사 연구하게 됐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어떤지 소식을 접하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전 인간이라 하더라도 생활약식만 다를 뿐 인간으로서의 삶이라는 점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별로 차이가 없을 게 아닌가 짐작된다.
위에서 언급한 소위 <아이스 맨, Ice man> 만이 아니라 간혹 고대의 유물이나 유적, 혹은 문서들이 발견될 때 마다 우리는 수 백 년이나 수 천 년의 시간적 괴리 가운데서 그 시대의 인간과 현재의 우리들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들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일종의 신비감과 경외감을 느끼게도 된다. 이런 생각들은 과거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미래 쪽으로도 역시 같은 정도로 작용된다.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았고, 아니 가 볼 수도 없는 미래의 인간은 어떤 존재이겠는가?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 속에서 솟아나지 않고 오늘 우리와 역사적으로 연결된 이들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와의 인간적 연대감을 유지할지 모르지만, 오늘과 같은 급속한 변화와 발전을 전제할 때 인간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임이 분명하다. 과연 앞으로 1천 년 후의 인간들도 역시 우리처럼 하루에 세 끼 식사를 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에 다니고, 여흥을 즐기며 살아갈 것인가? 특히 그들도 역시 우리처럼 종교심을 갖고 살 것인가?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앞으로 1만년 후 까지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종(種)이 고도의 문화를 통해서 지구와 우주를 컨트롤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겠는가? 우리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지나온 과거의 탐색이다.
인간이 지나온 역사는 자연으로 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고대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았다. 수렵생활이라든지, 농경생활을 하든지 저들은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그 친밀성에 따라 삶의 폭과 질이 달라졌다. 자연에 친화적일수록 더욱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예컨대 사막이나 열대지방에서 살던 사람들은 자연의 혜택을 적게 받았고, 산과 들이 많은 온대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자연이 제공해 주는 여러 가지 생산물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 가면서 자연으로 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로 기계와 산업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인간은 더욱 철저하게 자연으로 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결과로 현대인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홍수가 나거나 가물거나 별로 상관없이 문명이 제공해 주는 생산물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의 미래는 결국 자연과의 단절이라는 특징으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안타까운 일인지 당연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철저하게 비자연적 공간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그런 현상은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의 가상현실은 그들의 꿈이며 현실이다. 앞으로는 온 세계가 철저하게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그것만이 절대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다. 민들레꽃이나 토끼는 인간의 관심사에서 점차로 밀려나게 될 것이며, 설령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컴퓨터 화면으로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미래가 비자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는데,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사실은 인간이 자연에 친화적이어야만 하는가, 역으로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어도 역시 인간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예컨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이나 가을에 거두어 들여서 그것으로 빵이나 밥을 해먹지 않고, 화학 공장에서 찍어낸 고단백질이나 비타민, 혹은 고칼로리의 알약을 먹는 것으로 식사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리고 전통적인 방법인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서 임신을 하고 열달 후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게 아니라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결합하여 특수하게 제조된 인큐베이터 같은 기구에서 강력한 힘을 가하여 한두 주일 만에 생명을 완성시킬 수 있는 그런 때가 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그저 공상으로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과 같은 기술문명과 생명과학의 발전 속도를 볼 때 그렇게 멀지 않아 가능한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 말고도 우리는 적극적인, 혹은 소극적인 변화를 내다볼 수 있는데, 이런 모든 변화의 성격을 규정해 본다면 앞서 말한 대로 자연으로 부터의 자유, 도피, 혹은 소외라 할 수 있다. 우리가 2,3천 년 전 사람들과 비교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비자연적 구조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음을 전제할 때 우리의 후손은 훨씬 자연으로 부터 먼 거리에서 살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철저하게 기술 과학적으로 구성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될 미래의 인간은 간혹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ET와 같은 <외계인>의 모습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첨단 과학문명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연의 정복이 아니라 자연과의 일치 가운데서 인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좀더 확실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9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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