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의 파괴

이데올로기(Ideologie)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볼 때 헬라 철학자 플라톤이 언급한 <이데아, Idea>에 소급된다. 플라톤이 이 세계의 현상계를 가능케 하는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참실제라고 본 이데아는 바로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k)적 실제였다. 그의 이런 관점은 18,19세기 어간에 꽃피운 독일의 관념주의(이상주의, Idealismus)와 연결된다. 특히 관념주의를 집대성 시킨 헤겔은 <역사철학>을 통해서 이 세계는 변증법적 성격을 갖는 어떤 역사적 힘에 의해 움직이는 공장과 같다는 점을 밝혀보려고 했다. 그 역사적 힘이 곧 절대정신인데,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이다.
헤겔은 근대, 현대 서구의 문명사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헤겔의 좌파라 할 칼 막스는 변증법적 관념주의를 정치-경제-사회과학적으로 적용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막스는 엥겔스와 함께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소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불을 당겼다. 이 혁명의 불길은 20세기 초에 유럽을 휩쓸었으며, 사회주의 이념이 자본주의 이념과의 투쟁을 시작하게 만듦으로써, 1918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했고, 그 혁명은 요원의 불길처럼 중국과 북한, 그리고 동구와 쿠바 등 온 세계에 확산됐다. 기독교도 역시 이런 역사변혁을 하나님 나라 신학에서 해석해 보고자 하는 교회-신학운동을 전개했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종교사회주의 운동이 그것인데, 이 운동에는 불룸하르트, 라가쯔, 그리고 초기 바르트가 포함됐다.
공산주의라고도 불리는 사회주의는 일제시대 때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 많이 받아들여졌다. 이들 계통의 문학인들은 <카프문학>을 활발히 전개했는데, 이들은 민족주의정신이 투철했고, 반일투쟁에 적극적이어서 해방 이후 북한 쪽으로 많이 넘어갔다. 음악, 무용, 시, 소설, 철학, 사회과학 등에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일종의 이념으로 생각한 이들은 북한의 여러 정치적 굴곡 가운데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거나 아니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숙청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념에 묶여서 행동했다. 간혹 그들은 가족관계를 무시하면서 까지 공산당 이념에 투철해 보려고 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역시 특별한 경우에 신앙을 위해서 가족과의 유대를 포기하기 까지 하는 것과 같은 얘기다. 어쨌든지 사회주의적, 진보주의적, 좌파적 이념을 한 가지 색깔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향들이 개인의 자유 보다는 집단의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유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이념 보다는 개인 개인이 얼마나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무게의 중심을 두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사십 여 년 동안 냉전과 해빙의 틀을 오가며 경쟁해 왔다. 구소련 연방의 붕괴와 동독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의 몰락은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를 가져왔는데,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21세기를 눈앞에 둔 60억 인류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념 보다는 경제가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이념의 파괴다.
오늘 우리 7천만 한민족이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도 역시 이런 조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남북 분단 이후 처절하게 투쟁해 온 남한과 북조선은 이제 50년이 지난 지금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한 북조선은 경제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하게 됐고,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를 선택한 남한은 이미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선진국 운운하게 되어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따라오고 싶어 하는 모델이 됐다.
우리 남한 사회가 50년 동안 추구해 온 자본주의는 주로 미국의 영향 가운데서 발전해 왔다. 공룡과 같은 미국으로 부터 우리는 어떻게 근면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비록 군사독재가 30년 가까이 지배했지만 경제발전만은 온 세계가 놀라워 할 정도로 빨랐다. 지금 까지 걸어온 길이 옳았으며 앞으로도 이런 길로 걸어가야 한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거친 투로 표현하면, 잘 살아야, 혹은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 그것도 거의 경제적 성공만을 향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왔고, 앞으로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런 마음속에는 이념이 들어설 틈이 없다. 잘 사는 것 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해방, 또한 경제 지표를 끌어올리는 것 보다는 인간의 평등이 긴요하다는 이념은 한낱 철부지 낭만주의자들이 외쳐대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요즘 선거철을 맞아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네 개의 정당들이 한결같이 보수 층 유권자를 잡기 위해 죽기살기 식으로 싸우고 있다. 모두가 보수적 정당으로 알려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민의회의 김대중 씨는 신한국당이 진보적 인사를 영입한다 하여 색깔을 분명히 하라고 주장할 정도니까 알만 하다. 지금이 20세기 초처럼 혁명의 시대가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즘적 탈이념의 시대라 할지라도 지도자연 하는 이들이 맹목적으로 표를 많이 얻어서 인기정치인으로 출세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이념대로 행동하고, 그에 따라 평가받는 게 훨씬 바람직한 길이며, 동시에 인간으로서 행복한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 이 시대의 전반적 현상이며 추세인 이데올로기의 파괴는 결국 인간을 이데아와 상관없이 살게 하여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96.1.28.>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