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버리고 남으로

지난 2월1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잠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다 귀순한 현성일 씨와 부인 최수봉 씨, 그리고 차성근 씨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달 최수봉 씨와 차성근 씨가 먼저 귀순하고 기회를 기다리던 현성일 씨가 이어 귀순한 바 있다. 특히 현성일 씨는 함남도당 책임비서인 현철규 씨의 자제로서 신분상, 그리고 현 위치상 북한의 상류층에 속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남한으로 귀순했다는 건 북한 체제붕괴가 가까워졌다는 조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들은 귀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편의상 조선일보 14일자에서 필요한 부분을 인용한다.)
최수봉- 94년6월 부임한 김응상 대사 부부는 내가 고위층의 며느리이고 김일성대학을 나온 데 대해 색안경을 끼고 대했다. 사사건건 감정을 갖고 대해 언쟁이 자주 벌어졌다. 지난 1월초 대사가 사무실 바닥에 흐른 물을 나보고 닦으라고 했으나 내가 이에 응하지 않자 문제가 발생했다. 대사가 강제송환을 협박하길래 ‘청소야 지금이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대사가 주먹으로 내 가슴과 얼굴을 마구 구타했다. 아이들도 있지만, 살길은 남조선으로 가는 길 밖에 없었다.
현성일- 아내가 망명한 후 탄자니아에서 파견된 정치보위부원과 대책을 논의했다. 그는 ‘잠비아 정부가 아내를 만나게 해주면 처치하라’고 요구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처를 죽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처가 내 설득을 받아들여 다시 돌아오거나 거부하고 남한으로 가거나 어느 쪽이든 나는 끝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자 회견 끝부분에서, 북한 고위층의 이탈을 북한체제붕괴의 징후로 볼 수 있지 않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현성일은 이렇게 대답했다. “외교관들은 남조선의 발전상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귀순동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설날(연초)에만 하더라도 내가 이곳에 앉아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북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어떤 처지가 있어야 망명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런 기자회견을 보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을 발견케 된다. 우선 망명 동기다. 핵심인물인 현성일 씨는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망명을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바꾼다면, 만약 아내가 망명만 하지 않았다면 그는 망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망명한 최수봉 씨의 망명 동기는 대사가족과의 갈등이었다. 자세한 내용이야 당사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녀가 전한대로 본다면 평소 싱생이가 적지 않던 중 대사관 건물 바닥에 흐른 물을 닦지 않았다고 폭행을 당했고, 강제소환 운운하며 협박하자 이제는 남한으로 망명하는 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여겨 결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망명 동기는 매우 소박하고, 충동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망명이란 게 항상 이념적 결단에 근거할 수만은 없고, 여러 정치적 불이익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입으로 말하는 동기는 상관과의 별로 유쾌하지 못한 갈등이 주원인이었다. 소위 일국의 대사 자리에 있는 사람이 부하직원의 부인을 구타했다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없거니와 대사의 협박이 두려워, 도당 책임비서의 자녀들이 망명을 결심했다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이 기자회견에서 밝히지 못한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리 자신들에게 닥치게 될 불이익이 크다 하더라도 자식들이 평양에 남아 있는 마당에 망명을, 그것도 주적관계에 있는 남한에 망명했다는 건 상식적인 우리의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성일 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도 했다. “부모, 자식, 친척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이 겪을 고통을 각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심정은 영원할 것이다. 새 생활을 개척한다 해도 이 상처야 아물겠는가. 부친소식은 아직 모르고 있고 할 말이 없다.” 현 씨는 아마 속으로 스스로를 불효라고 자책하면서도 이런 남한 행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자녀들이다. 현성일 씨가 37세고 그 부인이 35세라면 열 살 안팎의 자식들을 두었을 텐데 어떻게 아직도 철이 덜든 자녀들을 남겨두고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 있을까? 아무리 자신의 앞날이 막막하다 하더라도 자식들을 북에다 내팽개치고 남한으로 나와 목숨을 지탱해 보겠다고 생각한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정상적인 부모라고 한다면 비록 자신들이 어떤 처벌을 당한다 하더라도, 사실은 도당책임비서의 자녀들이 그런 사소한 문제로 문책을 당한다는 건 상식 이하의 문제인데, 어쨌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녀들을 오지에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 망명해야겠다면 자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참고 기다려야 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자식을 버렸다면 이들은 어떤 말로도 자신들을 변명할 수 없다.
몇 년 전인가 <한국의 빠삐용>이라는 제목으로, 납북 당했던 어떤 노인의 북한탈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북한의 강제수용소 등을 전전하면서 45년을 살다가 남한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자유민주의를 향한 집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니 그를 의지하고 살았을 북한의 (재혼한) 부인과 자식들의 운명이 안타까웠다.
이런 이들은 우리 한민족이 견뎌내야만 할 참혹한 현실들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념이든, 정치적 선택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가족관계를 근본적으로 허물어뜨리는 행위는 무가치하고, 어떻게 보면 악이라는 사실이다. <96.2.18.>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