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2월5 /주일

조회 수 2156 추천 수 0 2012.02.05 00:08:08

 

눅 6:27-38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위 본문 앞에서 서면 기가 죽을 만도 합니다. 31절에 모든 게 녹아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걸 소위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이게 사람에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일반적인 삶은 이것과 정반대입니다. 베풀 때는 인색하고 받을 때 너무 많은 걸 기대합니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윤리를 우리에게 요구하신 걸까요? 아니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이게 우리의 윤리적 목표가 되면 좋겠지만 자칫 이런 요청으로 자기를 학대하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윤리가 불가능하지만 그런 목표를 세우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걸까요? 또는 종말에만 가능한 윤리적 기준을 주신 걸까요? 딱 떨어지는 대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영적인 수준에 따라서 최선으로 살아가면 충분하겠지요. 다만 다음의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의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 윤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면 황금률도 현실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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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happypig

2012.02.05 02:34:06
*.117.210.2

황금률이란것이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맡큼 남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걸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나이다.

눅6:27~38절의 말씀은즉가르침은 하나님 나라 윤리라는 것도요.

즉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이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면

황금률이 현실이 된다는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혼타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PS)성경공부도 가만히 볼 때 가수 구창모가 지은(?) 노랫말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지나봐요.물론 그 여정 속에서는 훌륭한 멘토가 있어야겠지요?






[레벨:18]天命

2012.02.06 22:57:07
*.62.0.143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소위 황금율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생각의 중심이 남이 아니라,

나일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남도 원할 것인가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그에게 행할 위험이 있습니다.

서양의 제국주의적인 식민정책과 기독교선교가 이러한 사상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그런 것을 행하지 않으려 삼가한다면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여러 문제가 생길 소지가 그만큼 줄어들 수도 있지요.

이 경우에는 생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타인입니다.

이것이 동양적인, 중용의 사고방식이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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