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성경에서 나온 종교인가? (3)

초대교회의 믿음의 자녀들은 도피하여 은둔생활을 하였습니다.
초기에 그들은 풍부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성실하게 일하며 재산을 공유하며 사용하였기 때문에 궁핍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4~47)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에게 암적인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성직자라는 지배층이 생겨나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무위도식하면서
공유재산을 탕진하는 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9장은 사도 바울께서 그러한 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글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경고의 편지에서 한 줄만을 떼어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를
유리하게 포장합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
마치 헌금으로 생활하는 성직자라는 직업이 정당하다는 듯이 보이는 이 한 줄의 문장은
사도께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함을 온유하게 지적하는 데 사용하신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의 편지를 그렇게 하라는 뜻이 되도록 바꾸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목표는 남의 노력과 피를 짜서 편하고 화려하게 사는 것입니다.

유다서 1:12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이러한 자들로 인해 너도나도 성직자를 자처하기 시작하였고
회중은 믿음도 점점 약해지고, 경제력도 급격하게 바닥이 납니다.

유대사는 그들의 종말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초대교회의 남은 자들은 기원 후 73년 4월경 로마군의 손에 점령되기 전날 밤
1000여 명에 이르는 남녀노소 모두가 전원 자살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2명의 임산부와 5명의 젖먹이만 살아남음)

그 후 다른 곳에 숨어있던 초대교회의 일원들도 속속 발각되어 죽거나 투옥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함께하던 성직자라는 자들은 이 시기에 밀고하고 받은 포상금으로
또 다시 무위도식하며 어려움 없이 살게 됩니다.

기독교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도주한 후 살아남아서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로마에서 시작될 수 없고 다른 먼 나라에서
시작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자랑하는 믿음의 뿌리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뿌리는 초대교회를 밀고하고 살아남아 로마에서 풍요롭게 살던 자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에 친일파가 지배계층으로 풍요롭게 살았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직자의 거짓됨을 성경은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을까요?
쉬운 방법들을 너무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요즘 성령에 감동된 자들은 다른 영으로 행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들에게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따르는 영은 분명 악령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의 종들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초대교회의 마지막 상황을 수차례 기록하셨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디모데후서 4:16)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두 멸망하였습니다.
오직 남아 있는 것은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리라.”하신 예언과 성경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활동하시던 사도들께서도 모두 떠나시니,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찾아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9:4)

그런데 이 캄캄한 방중에 열심히 일해서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한손에
거머쥔 자들이 있다면 그 것은 예언된 도둑이 분명할 것입니다.

누구겠습니까?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세상에 의인이 얼마나 많아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합니다.
성경은 어떠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습니까?

결코 인간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수많은 기적과 이적으로 돌보시는 와중에도
멸망 받을 짓만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리라.”하시는 예언을 남겨 주셨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음을 맡기실까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1)

갑자기 인간들이 변해서
거리에서 악인을 한 사람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을까요?
성경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갑자기 세상에 의인들이 많이 생겨나서 수익도 안 생기는 일에,
모든 사도들처럼 자비를 써가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파한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와 명예가 생기지 않는 한, 사람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인간의 근성입니다.
그것이 성직자라는 자들도 본능으로 아는 사람의 본성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다서 1:10)

그런데,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당연히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7)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복음은 전파될 것인가....?
기독교의 형성과정을 지켜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던 분들이 모두 로마에 잡혀 죽고, 초대교회가 종말을 고하고
복음도 함께 사라진 듯 보이는 시기가 약 100년 정도 이어집니다.

이 시기에는 성경과 무관하게 먼 다른 곳에서 기독교의 뿌리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수백 년 전 세상에는 플라톤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철학과 사상의 영향력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는 삼위일체의 사상을 완성 하였습니다.
그는 영혼불멸의 사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신인합일의 사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초대 교부들이 영벌지옥을 만들어 냈습니다.(터툴리안)

그 외의 대부분의 기독교가 신봉하는 거의 모든 신념이 벌써 오래전에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당시에 종교는 매우 다양하였으나 그 중심에는 플라톤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대단한 부와 명예, 권력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종교를 지배하면 당연히
그들을 이용하여 대단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종교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자의 자리는 유지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렵 로마에는 종교를 통합하여 권력을 잡고 부와 명예를 얻어 보려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자리 잡은 권력도 있었고, 플라톤이라는 보편화된 중심 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없는 것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종교의 중심이 될 경전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교과서나 다름이 없는 플라톤의 저술들은 역사도 짧지만 종교의 경전이 될
명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 필요에 의해 그들의 손에 들어간 것이 성경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일은 어떻게 하면 성경을 플라톤의 가르침과 일치시키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치시키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한 사람들을 “초대교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들을 “초대교회”와 혼동하고 있지만 절대로 다른 인물들입니다.

기독교가 자랑하는 그들의 희생이나 업적은 뿌리를 감추기 위해서 모두 조작된 것입니다.
헌금으로 받은 돈 1000에서 1을 조금 떼어 나누어 준 것이 그들이 존경받는 이유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생색을 낸 1/1000이 그렇게 크다면 나머지 999의 규모가 어떠하겠습니까?
요즘의 기독교의 자랑거리도 그것이 아닙니까?

아래는 기독교가 사도직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속사도”라 칭하는 초대교부들입니다.

1) 클레멘트(스)
2) 이그나티우스
3) 폴리카프
4) 이레니우스
5) 저스틴 마터

아래는 그 뒤를 이은 차세대 교부들입니다.

1) 마이몬
2) 아브라바넬
3) 므낫세
4) 터툴리안
5) 어거스틴
6) 데오필러스

이러한 명단은 기독교의 종파마다 자신들의 교리에 따라 유리하도록 인정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자료가 모두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독교는 이들 중에서 각각 몇몇을 선택하여 성자라고 칭하며
거룩한 자들이라며 거의 신격화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부 중에는 바울, 요한, 베드로의 수제자 등으로 주장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나이를 보면 기독교가 주장하는 최고령자의 나이를 인정하고, 그 기준으로 해도
사도들께서 10대 미성년자를 수제자로 두었다는 것이 됩니다.

그나마 나머지는 생존 기간이 조금도 겹치지도 않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디모데후서 4:16)

또한 기독교 출판물에서는 초대교부를 말할 때, 철저히 숨기며 결코 등장하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플라톤”입니다.

기독교가 밝히기를 거부하는 초대교부들의 실상은 거의 모두가 플라톤사상가들 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과 그들의 저서에 대하여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초대교부를 플라톤학파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의 맞서거나 대를 잇는 교부들은
“신플라톤학파”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플라톤의 사상과는 조금도 일치하지 않으나, 거대한 부와 명예의 발판인
종교통합을 위하여 그들은 플라톤의 사상과 어긋나는 부분에 대하여
성경을 일부 손질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에 들어난 성경에 첨삭된 변개의 대부분이 교부시절에 일어난 일이며
거의가 다 플라톤의 사상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충분한 경고를 남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손질하며 집중한 것은 플라톤의 사상인 삼위일체, 영혼불멸, 영벌지옥과
일치시키는 것과 헌금을 받는 것에 대한 정당화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독교가 바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도구로 선택하신
꼬리에 불 붙은 짐승이며, 부귀영화에 미쳐서 날뛸 멸망할 바빌론입니다.

그렇게 성경과 복음은 짐승에 실려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 거짓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거짓된 인생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진실에 대한 갈망과 관심이 문제입니다.

그 답은 항상 성경에 있습니다.

하박국 2:13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창세부터 “발목을 상하게 하는 자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시편 105:44)


왜 하나님께서는 바빌론이나 짐승과 같은 기독교에게 성경을 넘겨주셨을까요?
이 짐승과 바빌론에 관한 이야기는 4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