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권력과 종교행위




1. 근대와 기독교의 도입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 및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이 본격화되자 계몽주의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근대화를 통해 나라를 강하게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때의 근대화는 다름 아닌 서구화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서구 문명을 쫒아가는 것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던 것입니다. 1906년 7월의 《대한자강회월보》는 서구식 교육과 산업을 흡수하여 강한 나라로 거듭나자고 이야기합니다.


무릇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직 자강의 여하에 있을 따름이다. 아한我韓이 종전에 자강지술을 강구하지 않아 인민이 스스로 우매함에 묶여 있고 국력이 쇠퇴하여 마침내 금일의 곤란에 다달아 결국 외인外人의 보호를 당하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자강지도自强之道에 뜻을 다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 자강의 방법을 생각해보면 다름 아니라 교육을 진작함과 식산흥업에 있다. … 이는 교육과 산업의 발달이 곧 단 하나의 자강지술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 안으로 조국의 정신을 양성하며 밖으로 문명의 학술을 흡수함이 곧 금일 시국의 급무일새, 이것이 자강회의 발기하는 소이所以이다.


근대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 기독교 역시 주목받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강대국인 서구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1898년 5월 28일 <매일신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예수교만 실노히 믿을 지경이면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장유와 붕우 사이에 의리와 정의가 있어 일국의 태화세계가 될 터이니 우리 나라 동포들은 힘써 예배당을 찾아가서 전도하는 말도 자세히 듣고 성경도 많이 보아 모두 진정으로 믿는 교우들이 되어서 나라를 영미국과 같이 문명부강케 만들기를 우리는 진실로 바라노라.


이 논설은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영미국과 같이 부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강대국이 기독교를 믿으니 우리도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는 다소 비약적인 논리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서호문답>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객왈 이 교를 독신하면 나라이 강하여지겠소 주인왈 상제로 대주재를 삼고 기독으로 대원수를 삼고 성신으로 검을 삼고 믿음으로 방패를 삼아 용맹있게 앞으로 나아가면 누가 죄를 자복지 아니하며 누가 명을 순종치 아니하리오 지금 예수교로 종교를 삼는 영미법덕국의 진보된 영광이 어떠하뇨 우리 동포들도 이것을 부러워 하거든 그 나라들의 숭봉하는 종교를 쫓일지니라


이처럼 계몽주의 시대에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의 의미를 넘어 근대화의 필수코스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고미숙은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민족·섹슈얼리티·병리학》에서 기독교가 조선에 이미 들어와 있던 천주교와는 달리 서구 문명의 후광을 업고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이미 18세기부터 조선에 들어와 있던 천주교와도 층위를 달리한다. 그 시대의 천주교는 서구적인 것을 표상하기는 했으되, 다소 어설픈 교리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러나 근대 계몽기에 다시 등장한 기독교는 이제 서구 문명의 화려하고도 경이로운 위광을 등에 업고 말 그대로 ‘문명의 빛’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근대화의 모습으로 들어온 한국 기독교는 그 도입 때부터 근대적 성격을 고스란히 지닐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 근대 권력과 순종하는 신체


"일년 풍흉은 미리 알지 못하여도
정성을 다하면 하늘 재앙 벗어나니
모두모두 노력하여 게으름 부리지 말아라.
일 년 농사는 봄에 달렸으니 모든 일 미리 하라."
<농가 월령가 中>

이같은 노래를 지어부를 정도로 농사일에 부지런했던 우리 조상들은 근대화와 더불어 순식간에 게으른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맙니다.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게으른' 존재로 표상했다고 합니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공장에 다니던 조선인 노동자들은 마치 밭에 김매러 나가듯이 아무 때나 출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공장의 기계는 정확히 오전 8시부터 가동되기 때문에 8시까지는 출근해야 하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8시라는 시간관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농사일 하는 데에 8시라는 시간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흐르는 자연의 시간에 익숙해져있던 농업 사회 조선인들의 몸은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관리해야 하는 근대적인 몸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골치를 썩이던 일본인 공장주는 출근시간에 지각을 하면 그날 임금의 절반을 삭감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저항이 없지 않았지만, 새 규칙을 시행하고 얼마 후에는 모든 조선인 노동자들이 정각에 출근하게 됐습니다.

조선인들은 규율에 의해 이전의 몸을 버리고 근대적인 몸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또한 근대적인 몸으로 거듭나면서 그들은 더 이상 게으르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농경 생활을 하면서 이어져 내려오던 태초의 몸은 게으름의 딱지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근대의 중요한 특징은 규율을 통한 신체의 통제입니다. 근대의 성격에 대해 끈질기게 천착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이후 공개적인 신체형이 사라진 것에 주목하며 근대 권력에 의해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미세하고 면밀한 통제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18세기에는 신체를 한 덩어리로, 대량으로 다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세세하게 신체에 작용하고 미세한 강제력을 신체에 행사하며 기계적인 수준-운동, 동작, 자세, 속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즉, 활동하고 있는 신체에 미치는 미세한 권력이 문제가 된 것이다.1)


근대 권력이 통제 가능한 순종적인 신체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다름 아닌 ‘규율’이었습니다. 규율은 노예제와는 다르면서 그와 맞먹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세련된 방식입니다. “그것은 신체의 소유관계에 그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노예제와 다르다. 또한 적어도 그처럼 크고 유익한 성과를 거두면서도 값비싸고 폭력적인 노예제의 관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규율의 세련됨이라고 할 수 있다.”2)

근대 권력은 규율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장치들을 이용해 순종적인 신체를 만듭니다. 예를 들어 군대의 제식은 신체의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조정합니다. “앞에총은 세 박자로 행할 것, 먼저 오른손으로 총을 들어 올려서 총이 오른쪽 무릎과 수직으로, 총구는 눈높이를 유지하도록 총을 몸 쪽으로 당기면서 펴진 팔을 혁대의 위치에서 몸에 꼭 붙인 채 왼손으로 두드리는 것처럼 총신을 잡을 것. 두 번째로 … 엄지손가락은 격발장치를 향해 펴서 첫 번째 나사못에 대고, 공이치기를 첫째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총신을 수직으로 할 것.”3)

시간표 역시 마찬가지로 근대 권력을 지탱해주는 도구입니다. 시간표는 속도를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는 규범으로 기본적으로 나태를 불허합니다. 시간표는 오래전부터 수도원, 학교, 작업장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적 학교는 등교시간에서 하교시간까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며 지각이나 무단이탈 등 시간표를 무시하는 학생들에게 처벌과 함께 나쁜 학생이라는 도덕적인 평가가 가해집니다. 문제아가 되어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 싫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간표에 12년 동안 순종하면서 근대적인 몸으로 거듭납니다.

3. 근대 권력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 
근대 권력은 기독교 내에서 명령의 주인을 성직자에서 문자주의 해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성경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직자들의 성경 해석이 거의 법으로 작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와 더불어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성경이 대량으로 보급되어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성직자들은 직접 자신의 해석을 강요할 수 없었지만 대신 문자주의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 규율들이 근대 권력의 지휘아래 미세하고 은밀하게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명령의 자리가 성직자에서 문자로 바뀌었을 뿐이었지만 이는 사람간의 주종관계가 아닐 뿐더러 규율의 메커니즘을 알아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훨씬 세련된 방법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근대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에서도 역시 근대 권력의 영향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문자주의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봉하는 모습과 종교행위와 예식의 기계적 통제와 규범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년간 교회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일주일간의 시간표를 그려 기도와 큐티 시간 등 종교 행위의 시간이 얼마나 되나 체크하고 종교 행위의 시간이 적은 사람들을 도덕적 반성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또한 시간표의 도덕적 규범화와 규율에 의한 신체의 통제가 예배 시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이동원은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에서 군대를 예로 들면서 예배 자세의 중요함을 언급합니다.

군인들의 제식훈련에서 차려 자세는 모든 동작의 기본 동작,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본 동작인 차려 자세가 흔들리면 다른 모든 자세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기본 동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도의 기본 동작은 예배 자세입니다. 예배 자세가 흔들리고 예배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우리네 신앙생활 전반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편의 주의적 발상, 자기중심적 사고는 예배의 기본 동작을 아예 취하지도 못하도록 만들어 예배의 영성을 죽이는 만행을 초래했습니다. 주일 성수의 전통은 이미 흔들려 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주일에 한 번 드리는 공 예배조차 제대로 시간을 지키지 않고 5~10분 늦게 나와 적당히 40~50분 때우다가, 축도 전에 교회당을 빠져나가면서 그래도 예배는 드렸다고 자위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아졌습니까? 이것이 예배를 죽이는 오늘날 성도의 만행이라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요?4)


군대의 제식훈련을 예로 드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예배 자세는 마음가짐이라기보다 몸가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배를 죽이고 영성도 죽이는 살인자는 예배시간에 늦게 오거나 일찍 나가는 등의 신체적인 예배 자세입니다. 예배 자세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간표와 규율을 지키지 않는 학생이 불량 학생이 되었듯이, 편의 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도덕적인 평가가 가해집니다.

하용조는 《큐티하면 행복해집니다》에서 매일 30분씩 큐티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며, 그것을 어기는 것은 신앙을 굶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안계시면 당신의 신앙은 굶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매일 30분 정도씩 하나님의 양식을 먹고 그것을 묵상하고 적용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기본적인 틀을 항상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종교 행위와 예식은 하나님을 찾는 도구라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규범화되면서 도구의 의미를 뛰어넘어 신앙생활의 척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E.M. 바운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앙생활의 진보는 없을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온 사람들은 아침 일찍 하나님 앞에 그들의 무릎을 꿇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보내기에 가장 좋은 기회인 이 신선한 이른 아침 시간을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데 허비한다면, 그날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일에 거의 아무런 진보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5) 즉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기도와 큐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곧 신실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한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 기도 외에도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많이 있으며 하루 30분씩 큐티를 하지 않아도 말씀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종일 주위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본 사람은 이미 말씀이 몸에 아로새겨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일찍 오지 않는 ‘편의 주의적’인 사람이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지 못할 거라는 보장 역시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다소 늦었더라도 매순간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신실한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는 중심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오늘 기도를 많이 했는가보다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어떠한가 입니다. 김남준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모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라면 그에게 예배는 하나의 세상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에 참된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한 정직한 고뇌, 변화하지 않는 자신을 향한 진지한 염려와 경건한 근심, 진리를 알고자 하는 실천적인 열심, 그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삶은 종교 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신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부지런하다 인정받아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교회 등록을 돌쩌귀삼아 돌고만 있을 뿐입니다.”6)

영화 <공각기동대>의 마지막 대사는 근대 권력의 포괄성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네트는 광범위해”

진심으로 진리를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문자주의와 종교 행위에만 사로잡혀 근대 권력이라는 광활한 네트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자문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진중권 <호모 코레이니우스>
1),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나남, 216P

3) 1766년 1월 1일자의 프랑스 왕령, 제11절, 제2조.
4) 이동원,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두란노, 33P
5) E.M.Bounds, Power Through Prayer (Zordervan Publishing House, n.d.), 42P
6) 김남준, 《게으름》,생명의 말씀사, 31P

<하랑>  http://blog.naver.com/jaharan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