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수능시험이 끝났으니 이러한 얘기를 부담없이 꺼내고자 합니다.

 

수능시험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의 티비 방송들이 마치 판에 박힌듯,  연례행사처럼 각 종교기관에서 자신의 자식들 혹은 신도 자식들이 수능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방영되곤 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불교사찰이나 혹은 대구 팔공산 같은데서 두 손을 합장하고 심각하고 굳은 표정으로 마치 죽을 각오라도 한듯이 애원하고 있는 학부모 여인네의 모습이 가련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그렇게 보이는 저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일까요.

 

저 역시 수년전 자식이 수능을 치뤘지만, 그때 제가 그런 식으로 매달리지 않아서 아마도 그래서 자식이 1류 대에 가지 못했던 것인지, 차라리 그에 관한 답이 어디에 있기라고 한다면 얼마나 쉽고 편리하겠습니까?

 

불교야 어떻게 하든 상관할바 아니지만, 그러나 교회들도 수능을 앞둔 시점에 마치 기복이라도 하듯이 그런 식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그에 관한 생각은 수능이라는 말이 사라지기 전에는 계속해서 제 머리속을 정답도 없이 맴돌게 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삶들을 좀더 자연스럽고 폭넓은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즉  나에게 닥쳐올지 모를 손해와 고통이라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는 그런 대범한 모습이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과연 기독교인다운 삶의 모습이지 않을런지 생각도 해 봅니다.

 

카타콤 지하 석묘에 숨어지내면서 모든 희생도 감내해낸 초기 기독교도들은 그러한 희생 수용적인 신앙자세로서 세상을 이겼으니까 말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믿던 신앙의 대상과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믿는 신앙이 과연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요. 혹은 신앙의 대상은 하나가 분명하지만, 전의 그 사람들이 확실하게 주님의 앞모습을 보고서 믿었다면,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은 그  분을 그냥 뒤에서 구경하고 있으면서 그 뒷모습을 진짜인 주님이라고 여기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닐런지. 유감스럽게도 이런 질문들은 참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가 어디서 나타난 누구인지,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잘 모르겠고 그냥 예수라는 사람을 구경하기 위해 그곳에 운집했던 수많은 군중무리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