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대한 엄기욱 님의 글을 읽고 약간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어 보고자 합니다. 참으로 간단한 비유인데 간혹 이해하기 어려워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오해하는 분들도 계셔서 도움이 될까하여 몇개월 전 저희 목사님
설교내용의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습니다.

비유란 어떤 명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논증하고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럼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
시고자 이 비유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시고 있는 것일까요?

그 결론은 누가가 기록한 본문 마지막에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조금 더 결론을 본문을 통하여 확장 해석해 보면 "하나님과 재물를 겸하여 섬기는 자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을 수 없다. 다른말로 영원한 생명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비유를 베푸신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불의한 청지기보다도 지혜롭지 못한 "빛의 아들들" 즉 성도들을
불의한 청지기에 빗대어 냉소적으로 책망하시고 계신 것 입니다.

[ 불의한 청지기가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 칭찬 받는 이유는? ]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이 주인의 심판 앞에 설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 심판 후를 대비하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 방법이 주인이 보기에도
지혜로왔다는 것 입니다.

반대로 빛의 자녀들은 왜 불의한 청지기 보다도 못하다는 것 일까요?
그 이유는 빛의 자녀들은 다가올 "심판"을 대비하는 지혜가 없다는 것 입니다.


[ 심판을 대비하였던 불의한 청지기의 방법 ]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주님께서는 심판을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귈 것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

저는 이 구절을 많은 설교자들이 어쩔 수 없이 다소 부도덕한
방식으로 취득되어진 돈으로 해석하고 그런 돈으로 헌금 많이 하라는 식의
이상한 설교를 하는 것을 보아 왔으며 많은 성도들이 본 구절을 대할 때 다소
당황해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감추인 욕심을 버리고 본문을 유심히 읽어 보면 "불의한 재물"의
의미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해 집니다. 본문의 "불의"라는 것은 재물의 근본적인
속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청지기"에게는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입술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모든
소유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입니다.

청지기인 성도들이 물질을 나의 소유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의함"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불의"한 청지기와 "불의"한 재물의 개념을 사용하시고
있는 것 입니다.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심판을 면하고 영생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으로 선을 행하라는 말씀인 것 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과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에 내가 가진 재물을 내 것이라 여기지말고
사용하라는 말씀이지요.

이정도면 본문의 전반부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되시리라 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으며 여러 설교에서도 다소 왜곡되게 해석되어지는
결론 부분에 관해 잠시 살펴 보고자합니다.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 ]

저는 "지극히 작은 것"이란 말을 정확히 해석하는 설교를 거의 못들은 것같습니다. 설령
그 의미를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 정확한 의미를 설교하기란 쉽지 않을 것 입니다.
기꺼해야 우리 생할에서 작은 일부터 성실히 한다거나, 아니면 적은 돈도
성실히 모아서 주님의 일에 선용한다던가 하는 정도로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신 자의
의도와는 오히려 상반되게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본문에서 "지극히 작은 것"은 앞뒤 문맥상 청지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결코 작은 것이 될 수 없습니다만 비유를 베푸는 주님의 시각에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영원한 생명에 참예(영원한 처소)하는 것에 비해서
"지극히 작은 것"일 뿐이기 때문 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어쩌면 참으로 저나 여러분의 마음을 찔러올지 모릅니다. 그래도 바르게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예수님의 시각처럼
"지극히 작은 것"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 입니다.


[ 진정한 나의 것 ]

9절에서12절은 다음과 같이 대비되는 두가지 개념을 여러번에 걸쳐 설명 하십니다.

"불의한 재물" ===> "지극히 작은 것" ===> "불의한 재물"  ===> "남의 것"

"영주할 처소" ===> "큰 것"          ===> "참된 것"      ===> "너의 것"

우리가 가지 모든 것을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이라 말씀하시며 지극히 작은 것이라
말씀하시며 남의 것이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반대로 크고 참된 진정한 나의 것은 "나의 영주할 처소"라 가르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신다 하셨고 사도들은 우리의 "영원한 처소" 즉
영생은 재림하실 "주님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치셨음을 염두에 두시고 본문을 읽으시면
개념들이 좀 더 잘 이해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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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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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명확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고 주님은 단호하게 경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듣고 바리새인들을 비웃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저는 솔직히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여기고 섬기고 있는 부끄러운 삶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항상 기뻐하기보다는 하는 사업이 잘되어 통장에 돈이 두둑히 들어
올 때가 훨씬 기쁘고, 자식들 교육비로 매달 100만원이 들어가도 그다지 아깝지 않으나
주님의 복음 회복을 위해 얼마간 헌금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삶을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는다고 말할 자신이
없으며 주님을 최고로 사랑한다 말할 자신은 더더욱 없으며. 작은 것에 충성하는 청지기라
말할 수 없으며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 맡겨지리라고 섣불리 나의 구원을 확신
할 수 없습니다.

청기기의 삶을 살 수있게 최선을 다한 후에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십자가만 바라볼 뿐인 것
입니다. 혹시 택하심을 입을까? 긍휼히 여김을 받을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