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식은 항상 전형화(典型化)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리새인" 이라고 하면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위선자, 율법주의자" 라는 정답이 나오는 것처럼... 저는 칼빈을 신학적으로는 “법리적 원리주의자”, 정치적으로는 “신정정치주의자”로만 보아왔죠...

칼빈의 경우에도 그냥 단선적으로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빈의 말" 도 어떤 한 사람이 처한 각기 다른 상황, 다른 사고체계 속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칼빈이 의도한 원뜻은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단지 해석할 수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칼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1.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누미노제” 로서보다는 “징벌적 공포의 측면”으로 많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볼때 칼빈에게는 두 가지 다 보이지만.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리는 느낌이다. 누미노제는 시적 감성적 감정이라면, 징벌적 공포는 법리적 감정이다.)

2. 칼빈은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로서 확연히 나누는데, 그게 온당한 것일까? (내가 볼 때엔 창조와 구속은 동전의 양면일 뿐인 것 같은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성을 초월해 계시기 때문에, 창세기의 창조는 먼 옛날의 일회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전적 타락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 것은 인간의 리얼리티에 대한 전형화한 과장이 아닌가?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가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다 도둑놈 같은 놈들, 다 썩었어” 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맥락으로 보이는데...)

4.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벌하시는 분이신가? 윗 글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따뜻함을 느끼기가 힘들다

5. 윗 글에서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 본유적인(innate) 것이라고 했는데, 이 것은 일반계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하면, 칼빈은 일반계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가? 윗 글에서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칼빈이 자연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 있어서 핑계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또한 자연계시는 불완전하여 그 것을 통하여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6. 칼빈은 “신앙적 관념의 지적인 수용”과 “참된 믿음”을 같은 것으로 보지는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심증은 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지만...

7. 칼빈은 위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적 방임” - 하나님을 모르고 스스로 육욕에 빠져서 짐승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견해 -을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배치되지 않는가?
8. 위의 글에 따르면 칼빈은 권선징악적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신관이 바른 신관일까?

9. 칼빈이 말하는 미신,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우상적 종교는 동양의 고등종교, 이를테면 불교나 도교같은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일 수 있는가? 또한 칼빈은 이런 종교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10. 칼빈의 견해는 과연 현실에 만연한 “기독교배타주의”를 지지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