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홍성사>,<규장> 등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발행하는 수많은 책들이 문자주의 성서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중 홍성사의 <예수전기>라는 책을 붙잡아 그 책에 나타난 성서해석의 오류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고영길 <예수전기> 홍성사, 2008


1. 복음서 시간순으로 정리하기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사복음서에 뒤죽박죽 흩어져 있는 예수의 생애를 시간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중세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는데 국내에서도 이러한 작업이 활발합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고영길의 《예수 전기》입니다. ‘전기’라는 말에서 복음서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부터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시기까지의 말씀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 각각의 발생 순서대로 기록해갔다. …… 그래서 6개월에 걸쳐, 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행적과 말씀을 모두 담아 예수 생애 전체를 사복음서로 구분하여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예수 전기》中)

복음서를 시간 순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분명 복음서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복음서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장점에 빌붙어 있는《예수 전기》역시 자부심있는 어조로 “예수님의 생애 곧 그분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해 경건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들에게 이 작업이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불가능한impossible 작업

그러나 복음서를 시간 순서로 묶는 작업은 그 자부심을 비웃고도 남을만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복음서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전기》의 저자도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러한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제별로 종합되지 않은 내용은 똑같은 사건을 다시 읽어야 하는 불편이 있었고, 사건의 사소한 차이점들이 머릿속에서 혼란을 일으켜 그 의미를 묵상하는 데 많은 애로가 발생했다.”


3. 갈릴리의 예수를 베들레헴으로 보내버리기

복음서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는 작업은 복음서의 첫 부분인 예수가 탄생하는 장면부터 난관에 부딪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탄생한 시기와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탄생한 시기가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화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큰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예수 전기》도 마찬가지로 이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호구 조사와 정결 예식 이야기를 먼저 배열합니다. 뒤따라 마태복음의 헤롯 왕 이야기를 배열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내린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 전체가 인구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 때에 처음으로 시행 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으로 갔고, 요셉도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결혼한 마리아와 함께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유대 지방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마을로 갔다. (중략) 아기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예수의 부모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자신들을 깨끗하게 할 날이 되었을 때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 전기》中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단락에 이어서 헤롯왕이 동방박사들을 예수가 계신 베들레헴으로 보내는 장면을 배열해야 하는데 예수는 베들레헴이 아닌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삽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예수의 부모는 정결 의식을 마친 후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예수가 정결 의식을 마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복음에서는 아기 예수가 모세의 법에 따른 정결 예식을 마친 후 나사렛으로 돌아옵니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정결 예식)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고향 나사렛에 돌아왔다.” (누가복음 2:39) 그렇다고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는 역사적 증거나 고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의 부모가 정결 의식을 마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는 구절은 성경이나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작가의 <주관적인 삽입>입니다. 헤롯왕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예수는 베들레헴에 있어야 했고, 이를 위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성경에도 없는 문장을 만들어 아기 예수를  베들레헴으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4. 공관복음 무시하기
이 부분뿐만 아니라, 예수가 첫 번째 제자인 시몬과 안드레를 만나는 장면과 예수께서 성전 주변의 장사꾼들을 쫓아낸 사건도 시간 순서대로 복음서를 배열하기가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시간이 다음과 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 : 요한이 붙잡힘 -> 첫 번째 제자를 부름 -> 이적 및 사역 -> 예루살렘 입성 -> 성전을 깨끗하게 함

요한복음 : 요한이 붙잡히기 전 첫 번째 제자를 부름 -> 성전을 깨끗하게 함 -> 이적 및 사역 -> 예루살렘 입성


《예수 전기》는 이 부분들에서 요한복음의 시간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요한이 붙잡히기 전에 첫 번째 제자들을 만나고, 일찌감치 성전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에따라 요한복음 못지않게 중요한 공관복음의 시간 순서는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습니다.


5. 예수 이야기가 맹구 이야기?

이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 ‘시간 순서대로 배열된 예수의 생애’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 전체가 인구조사를 하게 되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정결 의식을 하였다. 정결 의식을 마친 예수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 하늘의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보고 엎드려 경배한다. 성인이 된 예수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시몬과 안드레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예수는 유월절이 가까워오자 예루살렘에서 성전 주변의 장사꾼들을 몰아낸다. 이후 예수는 갈릴리 등지에서 여러 사역을 하고 마침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그는 그곳에서 고난을 받고 죽는다.


복음서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겠지만, 이렇게 배열된 예수의 생애는 네 권의 복음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기만 할 뿐,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도 아니고 누가복음도 아니며 요한복음은 더더욱 아닙니다. 새로 창조된 이야기 속에서 복음서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독특한 향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때 인기를 끌었던 맹구 이야기와 닮아 있습니다. 


토끼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거북이 왔거든요. 거북은 토끼 간을 먹으려고 했는데, 간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토끼랑 간 찾기 놀이를 했대요. 그래서 토끼랑 거북이랑 누가 빨리 뛰는지 시합을 했는데, 토끼는 산토끼, 산토끼 하고 뛰다가 토꼈대요. 그래서 거북이 막 잡으러 갔는데, 가다가 힘이 들어서 잠을 잤대요. 그런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이 간이 네 간이냐?” 그러더래요. 그때 토끼가 막 뛰어와서 “내가 이겼다” 그랬대요. 그래서 거북은 “그래, 네 간이나 먹어라. 내가 너에게 상으로 주노라.” 그랬대요. 선생님, 간 있으세요? 선생님도 간이나 드시죠.


‘봉숭아 학당’에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 맹구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전래 동화인 토끼와 거북이, 별주부전, 나무꾼과 도끼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아니고 별주부전도 아니며 나무꾼과 도끼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뒤섞이면서 완전히 새로운 ‘맹구 이야기’가 탄생한 것입니다.

 맹구가 여러 전래동화를 하나로 묶으려 했듯이《예수 전기》는 복음서를 종합하여 한 권으로 통합하려했습니다. 그러나 뒤죽박죽 섞인 맹구 이야기처럼 어느 복음서와도 합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애를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데도 실패했습니다. 결국, 《예수전기》는 복음서를 통합하기는커녕 복음서를 해체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복음서를 쓰고 말았습니다. 이는 시간 순으로 어긋나 있는 네 권의 복음서를 무리하게 시간 순으로 통합하려 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결말입니다.


 
<하랑> http://blog.naver.com/jaharang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