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 <열린 토론실>입니다. 다비안들의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채>와는 달리, 보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나 주제를 나누고 싶은 분들을 위한 게시판입니다. 가급적 예의를 갖추시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대화는 다비안을 비롯한 여러 네티즌들의 온라인 상에서의 자유로운 것이기에 그 방향과 정체성이 반드시 다비아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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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비판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요한복음
10:16이다. "또 나에게 이 양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 그들
도 나의 음성을 듣게 되리라. 그리하여 한 양떼에 한 목자만 있으리라." 이것은 1927년의 로잔 회의를
평가하면서 게르마노스 대주교가 교회의 일치를 희망하며 인용한 구절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모든 교회는 한 우리에 들어 있어야 하며, 한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모든 교회는 한 몸이고 머리이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모셔야 한다.
얼마나 "성경적인" 발상인가? 하지만 이 운동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한 목자"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상 목자"(스카랴서 11:17)인 적그리스도이며, 머리이신 그리스
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 연맹의 물결
에큐메니칼 운동은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원하기 시작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 때
가 영적으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가 펼쳐지는 때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
불어 "국제연맹"이 탄생하였고, 이때 세상은 연합이라는 물결로 나아갔다. 이 물결을 타고 교회 안에
서도 서로 간에 세워진 담을 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가기 시작했다.
1919년 동방 교회(정교회)를 중심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에큐메니칼 총주교 교구가 "교회성회"의 이
름으로 모였을 때, 그들은 각 교회에 초청장을 보내어 "교회연맹"(League of Churches)을 구성하고
자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동기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나라들도 국제연맹으로 연합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교회 역시 연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분열과 대립을 그치고 평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은 화해를 했고, 연
합을 했다. 마치 세계대전이라는 "대환란"이 끝나고 천년왕국이라도 온 것 같았다. 따라서 정교회나
카톨릭이나 성공회, 아르메니아 교회 등이 하나로 연합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
다.
물론 당시에는 이 운동을 많은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카톨릭도 아직 본격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화합의 물결은 잠시일 뿐,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교회들의 연합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에큐메니칼주의자들에게 있어 이 전쟁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시련이었을 뿐
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에 임시위원회가 제네바의 성 삐에르 성당에서 에큐메니칼 예배를 드렸
을 때 베르그라파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서로서로 교
류하던 그 어떤 때보다 더 친밀하게 서로서로 함께 살아왔습니다... 전쟁 동안에 그리스도는 우리에
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기독교인들이여, 너희는 하나다.'... 결국 전쟁은 그들을 더 하
나되게 했으며, 전쟁이 끝나자 독일 교회가 이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층 활성화
되어, 1948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암스텔담에서 공식적으
로 출범하게 되었다.
타협과 사회복음
그들은 교파들의 교리적인 차이들을 서로 인정해 준 상태에서, 모두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믿음만
가진다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찍이 1920년에 모였던 "교회연맹"의 제의는 다
음과 같았다.
1. 기독교 교회들 간에 전도를 중지하며, 비기독교 민족들을 향한 기독교 선교를 위하여 기독교 교회
들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킨다.
2. 기독교 교회들 간의 도움과 상호 사랑을 이룬다.
3. 기독교 원칙들을 수립하고 또 이러한 원칙들에 역행하는 모든 체제에 반대하는 협력을 이루기 위
하여 교회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룬다.
.....
7. 우호적 정신으로 신앙과 직제상의 차이점들을 검토한다.
만일 그들이 신앙과 직제상의 차이점들을 "우호적 정신"으로 극복하지 않는다면, 결코 교회 연합을 이
룰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차적인 정신은 "타협"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 교
회들 간에 전도를 중지한다."는 법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
회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 의결에 반대를 표명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된
교회에게는 이교도들이나 카톨릭 교도들이나 "기독교도"들이나 모두가 전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절에 다니든지 교회에 다니든지 누구나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는 교회들 간의 타협이 중요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마저도
달리하는 교회들 상호간에도 전도가 금해진다. 대신 "비기독교 민족들을 향한 선교"가 제시되는데, 이
들에게 있어서 선교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 구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음"을 전해
전쟁과 기아와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1991년에 호주의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 더 분명해졌다. 이 총회의 주제는 "성령"이
었는데, 그들에 따르면 성령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분이셨다. (그들은 사도행전 3:21 '하늘은 실로 만
물이 회복될 때까지 그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니"를 잘못 해석했는데,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만물
이 회복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이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오셔서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
상을 심판하신다.)
그들은 창세기 1:2에서 "성령께서 창조의 세계 위에 운행하셨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는 창조의 세계를 사랑해야 되고, 정의로워야 하며, 문맹인과 교육받지 못한 자와, 가난한 사람과 피
난민, 이민자, 버림받은 자, 고독한 자들을 도와 주고, 기아도 없애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위
해 싸워야 하며, 우리 모두가 "연합"하여 이 일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목적은 교회의 일치,
세상의 일치 그리고 창조의 세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나라의 정현경 교수라는 사람은 이 총회에 등장하여 "초혼제"를 드렸
다. "오라! 애굽인 하갈의 영이여! 당신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해서 착취당
하고 버림받은 흑인 여성입니다... 오라! 잔 다크의 영혼과 중세기에 화형으로 살해된 무당들의 영이
여!... 오라! 토착민의 영이여! 식민지 시대와 위대한 기독교 선교시대에 죽어간 영혼들이여!... 오라!
인간의 금전욕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흙, 공기, 물의 영들이여!... 오라! 십자가상에서 고문당
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우리 형제이신 해방자 예수의 영이시여! 분열과, 맘몬(돈의 신)과, 여성과 어
린이의 무시와, 유색 인종과 장애자에 대한 경멸과, 지구의 환경살해 등, 이 모든 악령이 예수를 십자
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이 "사제"는 말했다.
따라서 성령의 오심은 인간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즉 모든 피조된 세계를 구원하시
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 총회의 주제였다. 물론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지
만, 결국 그들은 정 교수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 총회 이후로 환경신학이 전세계를 휩쓸었던 것
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모든 피조세계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
은 로마서 8장을 잘못 해석하는 실수를 범한다. 로마서 8:22에는 모든 창조물이 신음하고 있는 모습
이 나오지만, 그들이 이 신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
에 천년왕국을 세우시는 것뿐이다.)
모든 세계, 모든 종교의 하나됨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이 운동이 철저히 카톨릭적이라는 것이다. 초기에는 카
톨릭이 참여하지 않다가, 외형적으로는 1961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요한 바오로 23세) 이후
에야 서서히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운동은 철저히 카톨릭적이었다.
이 운동이 동방 정교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정교회와 카톨릭은 외형적으로
는 대립하는 종교 단체지만,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다. 일단 성례전에서 일치한다. 그들은 빵
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실제적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그 자리
에 임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제7차 총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성만찬) 성령 안에서의 사귐
이요, 그리스도의 제사요, 감사요, 영원한 기도이다. 우리는 이 성만찬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을 경험한다. 따라서 그의 백성인 우리는 이 성만찬 안에서 우리의 성령 초대의 기도로써 성령이 이
떡과 즙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화체(化體)시켜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떡과 즙을 받
으면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인간인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
는 장막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하나님 형상이 새로워지고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
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가 된다..."
카톨릭이 주도하는 이 협의회는 더 이상 "교회일치운동"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자유주의나 민중신학
의 개념을 넘어서, 종교다원주의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그 총회에 개신교 목사, 카톨
릭 신부, 정교회 주교, 불교의 중, 라마교의 중들이 참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못된다.
이러한 운동이 20세기 후반에 두드러진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알아 챌 수 있는 또 하나의 움직임은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뉴에이지 운동도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
서양의 화합과, 각 종교들의 영들을 수용하는 가운데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문명세계에 다가왔는데,
이 운동 역시 모든 세계, 모든 종교의 하나됨을 목표로 한다. 국가들이 연합하고, 기독교의 종파들이
연합하고, 각종 종파들이 연합한다.
그런데 한 가지 배제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이다. 앞에서 제시했던,
1920년에 모였던 "교회 연맹"의 제의 중 세 번째는 "기독교 원칙들을 수립하고 또 이러한 원칙들에 역
행하는 모든 체제에 반대하는 협력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
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반대되고 역행하는 모든 요
소는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 "거룩한" 연합의 행렬에 누가 감히 반대를 한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래도 믿는 사람들은 항상 그들 눈에 가시가 되어 왔다.
어떤 보수주의자들도 문제되지 않는다. 어떤 정통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도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성
경대로 믿는 "분리주의자들"만이 그들의 운동에 있어 방해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연합하여 에큐메니칼 조직을 결성하게 되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제거
당할 것이다. 그들의 연합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될 것이고, 그러면 마치 중세 때 로마 카톨릭에 의
해 박해받았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뉴에이지 운동에도 모든 종교와 교파들이
참여할 것이지만, 오직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들만이 그 운동을 반대할 것이다. 이 뉴에이지 운동의
목표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세계 평화"이다. 그렇게 되면 적그리스도가 자연스
럽게 보좌를 차지하게 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은 적어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라는 것
이다. 하지만 그 그리스도가 어떤 그리스도인가?
그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그들이 그토록 외치는 '한 목자에
한 양떼"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목자는 "우상 목자"인 적그리스도요, 그들은 적그리스
도 아래서 한 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라오디케아 시대 마지막에 살고 있다. 미혹의 영은 항상 우리를 노려왔지만, 지금처럼 강
하게 노렸던 적은 없었다. 머지 않아 적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는 세계 정부와 또 세계 교회
가 등장할 것이다. 그들과 연합하지 않는 자들은 철저히 버림받을 것이며, 국가와 교회가 결탁한 가운
데 모든 일에 철저히 제재를 받을 것이다.
교회 연합 운동은 처음부터 국가 연합과 맞물려 돌아갔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
은 오직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힘일 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
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들이게 하리라"(마 13:30).
따라서 아무리 모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들의 살 궁리를 모색할지라도, 결국 그들의 연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불사름당하기 위해 모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이 급히 진
행될수록 더욱 깨어 있으라.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요한복음
10:16이다. "또 나에게 이 양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그들도 데려와야 하리니, 그들
도 나의 음성을 듣게 되리라. 그리하여 한 양떼에 한 목자만 있으리라." 이것은 1927년의 로잔 회의를
평가하면서 게르마노스 대주교가 교회의 일치를 희망하며 인용한 구절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모든 교회는 한 우리에 들어 있어야 하며, 한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모든 교회는 한 몸이고 머리이신 그리스도 한 분만을 모셔야 한다.
얼마나 "성경적인" 발상인가? 하지만 이 운동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한 목자"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상 목자"(스카랴서 11:17)인 적그리스도이며, 머리이신 그리스
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 연맹의 물결
에큐메니칼 운동은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발원하기 시작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 때
가 영적으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가 펼쳐지는 때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
불어 "국제연맹"이 탄생하였고, 이때 세상은 연합이라는 물결로 나아갔다. 이 물결을 타고 교회 안에
서도 서로 간에 세워진 담을 넘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가기 시작했다.
1919년 동방 교회(정교회)를 중심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에큐메니칼 총주교 교구가 "교회성회"의 이
름으로 모였을 때, 그들은 각 교회에 초청장을 보내어 "교회연맹"(League of Churches)을 구성하고
자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동기는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그들은 세상의 나라들도 국제연맹으로 연합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교회 역시 연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바야흐로 세상은 분열과 대립을 그치고 평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은 화해를 했고, 연
합을 했다. 마치 세계대전이라는 "대환란"이 끝나고 천년왕국이라도 온 것 같았다. 따라서 정교회나
카톨릭이나 성공회, 아르메니아 교회 등이 하나로 연합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
다.
물론 당시에는 이 운동을 많은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카톨릭도 아직 본격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화합의 물결은 잠시일 뿐, 곧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교회들의 연합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에큐메니칼주의자들에게 있어 이 전쟁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시련이었을 뿐
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46년에 임시위원회가 제네바의 성 삐에르 성당에서 에큐메니칼 예배를 드렸
을 때 베르그라파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서로서로 교
류하던 그 어떤 때보다 더 친밀하게 서로서로 함께 살아왔습니다... 전쟁 동안에 그리스도는 우리에
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기독교인들이여, 너희는 하나다.'... 결국 전쟁은 그들을 더 하
나되게 했으며, 전쟁이 끝나자 독일 교회가 이 운동에 가담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층 활성화
되어, 1948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암스텔담에서 공식적으
로 출범하게 되었다.
타협과 사회복음
그들은 교파들의 교리적인 차이들을 서로 인정해 준 상태에서, 모두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믿음만
가진다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찍이 1920년에 모였던 "교회연맹"의 제의는 다
음과 같았다.
1. 기독교 교회들 간에 전도를 중지하며, 비기독교 민족들을 향한 기독교 선교를 위하여 기독교 교회
들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킨다.
2. 기독교 교회들 간의 도움과 상호 사랑을 이룬다.
3. 기독교 원칙들을 수립하고 또 이러한 원칙들에 역행하는 모든 체제에 반대하는 협력을 이루기 위
하여 교회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룬다.
.....
7. 우호적 정신으로 신앙과 직제상의 차이점들을 검토한다.
만일 그들이 신앙과 직제상의 차이점들을 "우호적 정신"으로 극복하지 않는다면, 결코 교회 연합을 이
룰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차적인 정신은 "타협"이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 교
회들 간에 전도를 중지한다."는 법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
회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 의결에 반대를 표명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된
교회에게는 이교도들이나 카톨릭 교도들이나 "기독교도"들이나 모두가 전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절에 다니든지 교회에 다니든지 누구나 전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는 교회들 간의 타협이 중요하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마저도
달리하는 교회들 상호간에도 전도가 금해진다. 대신 "비기독교 민족들을 향한 선교"가 제시되는데, 이
들에게 있어서 선교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해 구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음"을 전해
전쟁과 기아와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1991년에 호주의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총회에서 더 분명해졌다. 이 총회의 주제는 "성령"이
었는데, 그들에 따르면 성령은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분이셨다. (그들은 사도행전 3:21 '하늘은 실로 만
물이 회복될 때까지 그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니"를 잘못 해석했는데,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만물
이 회복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이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오셔서 믿는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
상을 심판하신다.)
그들은 창세기 1:2에서 "성령께서 창조의 세계 위에 운행하셨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는 창조의 세계를 사랑해야 되고, 정의로워야 하며, 문맹인과 교육받지 못한 자와, 가난한 사람과 피
난민, 이민자, 버림받은 자, 고독한 자들을 도와 주고, 기아도 없애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위
해 싸워야 하며, 우리 모두가 "연합"하여 이 일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목적은 교회의 일치,
세상의 일치 그리고 창조의 세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나라의 정현경 교수라는 사람은 이 총회에 등장하여 "초혼제"를 드렸
다. "오라! 애굽인 하갈의 영이여! 당신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해서 착취당
하고 버림받은 흑인 여성입니다... 오라! 잔 다크의 영혼과 중세기에 화형으로 살해된 무당들의 영이
여!... 오라! 토착민의 영이여! 식민지 시대와 위대한 기독교 선교시대에 죽어간 영혼들이여!... 오라!
인간의 금전욕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흙, 공기, 물의 영들이여!... 오라! 십자가상에서 고문당
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우리 형제이신 해방자 예수의 영이시여! 분열과, 맘몬(돈의 신)과, 여성과 어
린이의 무시와, 유색 인종과 장애자에 대한 경멸과, 지구의 환경살해 등, 이 모든 악령이 예수를 십자
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이 "사제"는 말했다.
따라서 성령의 오심은 인간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즉 모든 피조된 세계를 구원하시
기 위함이라는 것이 이 총회의 주제였다. 물론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지
만, 결국 그들은 정 교수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 총회 이후로 환경신학이 전세계를 휩쓸었던 것
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모든 피조세계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
은 로마서 8장을 잘못 해석하는 실수를 범한다. 로마서 8:22에는 모든 창조물이 신음하고 있는 모습
이 나오지만, 그들이 이 신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
에 천년왕국을 세우시는 것뿐이다.)
모든 세계, 모든 종교의 하나됨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이 운동이 철저히 카톨릭적이라는 것이다. 초기에는 카
톨릭이 참여하지 않다가, 외형적으로는 1961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요한 바오로 23세) 이후
에야 서서히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운동은 철저히 카톨릭적이었다.
이 운동이 동방 정교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정교회와 카톨릭은 외형적으로
는 대립하는 종교 단체지만,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다. 일단 성례전에서 일치한다. 그들은 빵
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실제적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 그리스도가 그 자리
에 임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제7차 총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성만찬) 성령 안에서의 사귐
이요, 그리스도의 제사요, 감사요, 영원한 기도이다. 우리는 이 성만찬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을 경험한다. 따라서 그의 백성인 우리는 이 성만찬 안에서 우리의 성령 초대의 기도로써 성령이 이
떡과 즙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화체(化體)시켜 주실 것을 간구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떡과 즙을 받
으면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인간인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
는 장막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하나님 형상이 새로워지고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삼위
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가 된다..."
카톨릭이 주도하는 이 협의회는 더 이상 "교회일치운동"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자유주의나 민중신학
의 개념을 넘어서, 종교다원주의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그 총회에 개신교 목사, 카톨
릭 신부, 정교회 주교, 불교의 중, 라마교의 중들이 참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못된다.
이러한 운동이 20세기 후반에 두드러진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알아 챌 수 있는 또 하나의 움직임은
바로 "뉴에이지 운동"이다. 뉴에이지 운동도 비슷한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
서양의 화합과, 각 종교들의 영들을 수용하는 가운데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문명세계에 다가왔는데,
이 운동 역시 모든 세계, 모든 종교의 하나됨을 목표로 한다. 국가들이 연합하고, 기독교의 종파들이
연합하고, 각종 종파들이 연합한다.
그런데 한 가지 배제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이다. 앞에서 제시했던,
1920년에 모였던 "교회 연맹"의 제의 중 세 번째는 "기독교 원칙들을 수립하고 또 이러한 원칙들에 역
행하는 모든 체제에 반대하는 협력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
들 간의 연합과 협력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반대되고 역행하는 모든 요
소는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이 "거룩한" 연합의 행렬에 누가 감히 반대를 한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오직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래도 믿는 사람들은 항상 그들 눈에 가시가 되어 왔다.
어떤 보수주의자들도 문제되지 않는다. 어떤 정통주의자나 근본주의자들도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성
경대로 믿는 "분리주의자들"만이 그들의 운동에 있어 방해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교회가 연합하여 에큐메니칼 조직을 결성하게 되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제거
당할 것이다. 그들의 연합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될 것이고, 그러면 마치 중세 때 로마 카톨릭에 의
해 박해받았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뉴에이지 운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뉴에이지 운동에도 모든 종교와 교파들이
참여할 것이지만, 오직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들만이 그 운동을 반대할 것이다. 이 뉴에이지 운동의
목표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세계 평화"이다. 그렇게 되면 적그리스도가 자연스
럽게 보좌를 차지하게 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은 적어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라는 것
이다. 하지만 그 그리스도가 어떤 그리스도인가?
그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그들이 그토록 외치는 '한 목자에
한 양떼"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 목자는 "우상 목자"인 적그리스도요, 그들은 적그리스
도 아래서 한 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라오디케아 시대 마지막에 살고 있다. 미혹의 영은 항상 우리를 노려왔지만, 지금처럼 강
하게 노렸던 적은 없었다. 머지 않아 적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는 세계 정부와 또 세계 교회
가 등장할 것이다. 그들과 연합하지 않는 자들은 철저히 버림받을 것이며, 국가와 교회가 결탁한 가운
데 모든 일에 철저히 제재를 받을 것이다.
교회 연합 운동은 처음부터 국가 연합과 맞물려 돌아갔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
은 오직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힘일 뿐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
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들이게 하리라"(마 13:30).
따라서 아무리 모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들의 살 궁리를 모색할지라도, 결국 그들의 연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불사름당하기 위해 모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이 급히 진
행될수록 더욱 깨어 있으라.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2008.08.02 16:08:36
말씀의 진리안에서 일치 연합 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기구적 연합, 외형적 연합은 그리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런면에서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이 성공회든 감리교든 장로교든 성결교든 침례교이든 다 하나라고 일치 연합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진리안에서의 연합이 아닌 정치적, 기구적 연합이라면 반대합니다. 그래서 에큐메니컬을 반대하는 윗글에는 찬성하지만, 세대주의적으로 교회의 시대를 계산하는 세대주의에는 반대합니다. 계시록의 일곱교회는 일곱세대가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과 책망을 받는 일곱교회이며 지금도 일곱교회가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들이 현대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일곱교회가 곧 일곱세대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말 밤 우리 주님도 드셨던 담근주라도 드시면서 .., 이 빗나가버린 거대담론 대신 영접하신 주님의 취기로 친우들과 소통하심이 어떠실런지...